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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갑 칼럼, 문학의 배고픔 덜어줘야 한다.

키미~ 2010. 10. 2. 09:13

중앙일보 칼럼
'문학의 배고픔' 덜어줘야 한다

--------------------------------------------------------------------------------황/ 원/ 갑/(소설가)

온 나라를 함성으로 가득 메우던 독일 월드컵이 막을 내리면서 방송 3사의 이성을 잃은 동시중계도 끝났다. 방송 3사는 월드컵 중계방송에 총 445억원의 귀중한 외화를 사용했다고 한다. 전파도 국민의 재산이고 국력이다. 비싼 외화를 들여 주최국 방송국들도 하지 않은 동시중계를 감행한 우리 방송사들의 강심장이 놀랍다. 월드컵에 쏟던 열정의 100분의 1만이라도 이 땅의 소외된 문인들의 비명과 신음에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우리나라 문인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글만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문인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극소수다. 올해 6월 말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문인은 7800여 명. 부문별로 보면 시인이 가장 많은 3500명이고, 이어서 수필가 2000명, 아동문학가 800명, 소설가 700명, 시조시인 600명, 평론가 150명, 희곡작가 120명, 번역가 40명 등이다. 문인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문인도 많다. 하지만 이처럼 '등록된' 문인 7800명 가운데 원고료.인지세 수입만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운 좋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사람, 돈 버는 부모나 남편을 둔 일부 문인을 제외하면 나머지 절대다수는 작품을 팔기보다 다른 일거리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지원이 충분한가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친정부적 시민단체와 운동선수 등에게 돌아가는 금전적.제도적 혜택에 비하면 문인들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한 지원이 있다고 하나 그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것도 이른바 '시대정신'과 코드가 맞는 일부 문인단체와 그 회원들에게 선별적으로 특혜를 베푼다는 비난의 소리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월간.계간으로 발행되는 문학잡지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제법 이름깨나 알려졌다는 문학지는 '잘 팔리는 작가', 그것도 주로 젊은 여성작가들 위주로 문호를 개방하는 비문화적.상업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이런 잡지는 원고료를 200자 원고지 1장당 1만원 정도는 주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문인단체의 대표인 한국문인협회가 발행하는 월간문학의 원고료는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문협은 원고료를 등단 1년부터 10년까지 신인, 11년부터 40년까지 중견, 41년 이상은 원로로 삼등분해 지급한다. 시.시조.동시 등 운문의 경우 신인은 편당 2만원, 중견은 3만원, 원로는 4만원을 준다. 소설과 희곡 등은 신인이 편당 12만원, 중견 18만원, 원로 24만원이다. 등단한 지 40년이 넘은 원로 소설가가 70장짜리 단편소설을 한 편 써서 월간문학에 실리면 24만원의 '거금'을 받는 것이다!

소설가단체의 대표인 한국소설가협회의 사정도 별 차이가 없다. 이 협회에서 펴내는 '한국소설'의 원고료는 신인이건 원로건 구분없이 무조건 편당 20만원이다. 그나마도 몇 해 걸러 작품발표 기회가 생긴 것이 이 모양이다.

문학은, 예술은 배부른 사람들이 할 일 없어 취미삼아 하는 놀이가 아니다.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부닥쳐야 하는 고행과 같다. 문화도 국가적 자산이다. 소설가와 시인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문예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정부와 대기업, 국민의 더 많은 관심과 성원과 배려가 있기를 바란다.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