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unflower
  • sunflower
스크랩

박해현의 문학산책 스크랩

by 키미~ 2011. 3. 17.

박해현의 문학산책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후배 작가들에게 밥상 차려주기를 좋아했다. 박경리는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세워 신작을 쓰려는 작가들에게 집필실을 제공했다. 그는 직접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만든 반찬을 후배들 밥상에 올렸다. 보통 한 달 넘게 토지문화관에 머문 작가들은 팔순이 넘은 대작가가 엄마처럼 차려준 밥상을 송구스럽게 받다 보니, 핑핑 놀지 못하고 단편 한 편이라도 탈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박경리가 세상을 떴을 때 수많은 후배 작가들은 모친상을 당한 심정이었다. 박경리는 '토지' 1부를 쓸 때 유방암 수술을 받아 가슴 하나를 잘라낸 채 붕대를 감고서 원고지를 메웠다. 토지문화관을 자주 찾았던 작가 은희경은 박경리를 가리켜 "한쪽 젖이 없는 어머니"라고 했다. "선생님은 종양수술로 이미 한쪽 가슴이 없었지만 두 가슴을 다 가진 여자보다 더 사랑이 넘치는 분이었다."

지난달 22일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역시 후배 작가들에겐 한없이 다정한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박완서 선생님은 내 어머니와 동갑"이라고 한 소설가 성석제를 비롯해 박완서 문학을 읽으며 습작 시절을 보낸 후배 문인들은 그의 글에서 인간과 사회를 웅숭깊게 그려내는 따뜻한 '엄마 손맛'을 느꼈다고 했다. 박완서는 한국문학의 대모(代母)라고 불렸다.

박경리와 박완서 모두 작가 노릇을 하면서 후배들을 잘 먹이려는 엄마 노릇도 겸했다. 인간의 삶을 기성 시각과는 다르게 보는 글쟁이끼리 모여도 엄마 이미지는 항상 밥상과 연결되는 존재의 짐을 덜지 못하는가 보다. 박경리가 곧고 카랑카랑한 여장부 엄마였다면, 박완서는 수줍은 소녀를 마음속에 간직한 자상한 엄마였다.

환경운동가였던 박경리는 밥상에 오른 '화학약품' 같은 음식을 먹는 손자들을 안쓰럽게 여기는 시를 쓰기도 했다. 평론가들은 그의 문학적 뿌리가 자연과 생명을 끌어안는 모성 신화에 있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반면에 박완서가 후배 작가들 가슴속에 심은 엄마의 초상은 신화적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이었다. 전통 농경사회의 엄마가 아니라 도시 중산층의 엄마 스타일이었다. 자식들을 낳고 기르느라 삶을 희생하다 보니 자식 세대와 소통하기 어려운 옛날 엄마도 아니었다. 박완서는 후배 작가들 앞에서 구식(舊式) 엄마의 말뚝을 뽑으려고 했다. 그는 평소 "한 작가가 한물갔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그 작가의 언어가 한물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소설가 정이현이 회상하는 박완서는 젊은이들을 만나 조용히 새 이야깃거리를 찾는 '영원한 현역 작가'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까마득한 후배의 말을 경청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깨닫는다. 아, 선생님은 지금 자료수집 중이신 거구나."

젊은 세대의 말에 늘 귀를 기울였던 박완서였지만, 그 세대 앞에서 주눅 들지는 않았다. 일흔여섯에 새 책을 내면서 그는 "고령화사회에 대한 공포 분위기 때문에 아직 건재하다는 것이 송구스럽다"면서도 "이 나이는 거저먹은 나이가 아니다"고 외쳤다. 그는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됐다"며 문학의 엄마 노릇을 버리지 않았다.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보여줬듯이, 우리 사회에선 여성 작가를 향해 사회를 위로하고 배려하는 엄마 노릇을 해달라는 독자층이 적지 않다. 박경리와 박완서에 대한 평가 역시 그런 모성 숭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2000년대 여성 작가들은 '여성과 모성을 동일시한 적이 없다'라며 엄마 노릇을 거부한다. 근대 이후 한국 문학에선 여자를 어머니, 아내, 누이로 등장시키면서 위로받으려고 하고, 그 범주에 들지 않는 여자는 마녀 혹은 요부로 낙인찍었다는 것이다. 이젠 '여성'문학이 아니라 '문학'만 있다는 얘기다. 여성문학은 무조건 페미니즘으로 해석하지 말라며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고 선언하는 작가도 많아졌다. 게다가 요즘 남성 소설이 더 여성적인 경우도 많고, 남녀 경계를 넘어선 중성(中性)의 인간형도 자주 등장한다.

박경리에 이어 박완서도 문학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사회적으로 엄마 노릇하던 여성문학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세대를 달리해서 모성을 다룬 문학이야 새롭게 나올 것이다. 하지만 옛날 엄마의 손맛이 담긴 문학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여성이 엄마 노릇하기 힘든 현실 때문에 저출산 문제를 앓고 있는 사회가 문학을 향해 모성을 요구할 순 없다. 여성에게 작가 노릇, 엄마 노릇을 모두 요구하던 시대가 문학사적으론 사라지고 있다. 박완서 타계 이후 그가 남긴 책들을 찾는 독자들이 늘어났다. 엄마 노릇하던 문학이 마지막으로 차려준 밥상 앞에서 독자들이 허겁지겁 숟가락을 놀리는 듯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