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절정에 빠져 있다가 천상의 희열을 맛보는 경지에 도달했다. 모든 것들이 살아 일어나듯이 내 영혼에 말을 건넸다." '적과 흑'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본 그림에 압도된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의 책 '나폴리와 피렌체: 밀라노에서 레조까지의 여행'에도 산타 크로체를 나서는 순간에 대해 설명돼 있다. 그는 "성당을 나서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었다.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걷는 동안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고 썼다. 그의 이런 증상은 한 달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스탕달의 이 같은 고백 이후 예술 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 증상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부르게 됐다. 불후의 예술품을 보고 압도돼 느끼는 황홀경이 바로 스탕달 신드롬이다. 이탈리아의 심리학자 그라지엘라 마제리니가 처음 이 용어를 썼다.
이렇게 스탕달이라는 이름은 그가 쓴 작품들만큼이나 스탕달 신드롬을 얘기할 때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스탕달은 산타 크로체에서 어떤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록하지 않았다. 스탕달 신드롬의 원인이 된 작품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나온 이유다.
그는 본명은 마리 앙리 벨, 스탕달은 필명이었다. 178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군 생활을 하다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이탈리아로 건너갔다고 한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를 찾은 때는 1817년이었다. 1294년 세워진 산타 크로체는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 활동한 화가 지오토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돼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지오토의 벽화를 보고 스탕달이 감동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산타 크로체에서는 18세기에 벽화들을 회칠로 덮어 버렸다고 한다. 회칠을 벗겨내고 벽화를 복원하기 시작한 시기는 1841년부터라고 전해지고 있다. 스탕달이 산타 크로체를 방문했던 1817년은 지오토의 벽화가 회칠로 덮여 있었던 때인 셈이다.
또 다른 설은 스탕달이 바로크 시대의 화가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를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는 것이다. 이 설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베아트리체 첸지라는 실재 인물의 이야기와 맞물려 널리 퍼졌다. 16세기에 살았던 귀족의 딸 베아트리체 첸치는 미모로 숱한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지만, 자신을 성폭행한 친아버지를 살해하고 결국 어린 나이에 처형된다. 귀도 레니의 그림에는 사형장에 끌려가기 전 처연한 표정으로 화가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설도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많다.
어떤 작품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예술에 대한 경외감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스탕달은 1842년3월23일거리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뇌졸중에 시달렸던 그는 묘비명에 쓸 말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그는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고 그의 인생을 간명하게 표현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스탕달의 줄리앙 소렐이 가진 분노와 열정과 억압에의 분출이 그 시절 내게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