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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벗어난 한국소설(펌)

by 키미~ 2018. 5. 22.

"우리에겐 전 세계가 원고지" 한국 벗어난 한국소설 봇물


[경향신문] ㆍ다국적 문화소비 시대…문단의 새 트렌드로 ‘탈한국’ 주목
ㆍ포르투갈 화산섬의 미국인 화산학자, 지구 밖 행성에 사는 리…
ㆍ배경도 한국 밖, 등장인물도 외국인에서 외계인까지 각양각색
ㆍ“세계관 확장 따른 보편성 확대”에 “한국적 상황 외면” 지적도

최근 출간된 정용준(37)의 장편소설 <프롬 토니오>(문학동네)의 주인공은 미국인 화산학자와 일본인 지진학자다. 배경은 포르투갈의 화산섬이다. 바닷속 유토피아를 설계한 환상문학이다. 인간 존재와 사랑, 그리움을 성찰한 작품이다.

지난 4월 나온 강태식(46)의 <리의 별>(은행나무)은 과학소설(SF) 장르로 지구 밖 행성에 사는 ‘리’와 지구인 간 소통을 다뤘다. 미국, 스페인, 일본 등 다국적 인물이 등장한다. 여러 국적 인물이 등장하는 건 지난 2월 출간된 김솔(45)의 <마카로니 프로젝트>(문학동네)도 마찬가지다. 다국적 무기 기업의 이탈리아 피렌체 공장에서 벌어진 노동자 해고 프로젝트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면서 유럽 여러 국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 한국을 벗어난 한국소설

한국을 벗어난 한국소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앞서 언급한 소설처럼 배경을 해외 어느 장소로 택하고, 등장인물도 외국인으로 설정한다. 한국인이 나와도 외국인과의 관계를 조명한다. 2017년 발표작 손보미(38)의 <디어 랄프 로렌>(문학동네)에서 미국 유학생 종수는 패션 디자이너 랄프 로렌의 생애를 추적하는데, 그 과정에서 종수가 만난 이들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같은 해 출간한 김희선(46)의 <무한의 책>(현대문학)은 경기도 용인과 미국 트루데 두 공간을 배경으로 한국인과 외국인을 다수 등장시킨다. 최은영(34)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문학동네·2016)에 수록된 단편들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교류(‘쇼코의 미소’),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교류(‘씬짜오, 씬짜오’)를 다뤘다.

소설 주제와 형식 측면에서 전혀 다른 작품들이지만, 이 소설들은 한국소설의 ‘신경향’을 보여준다. 한국과 한국인을 벗어난 소설의 등장은 2000년대 들어 두드러진 현상이다. 당시 재중동포, 고려인 후손, 재일동포가 쓴 작품들, 흔히 디아스포라 문학이라 불린 작품이 많이 나왔다. 문학평론가인 오창은 중앙대 교수는 “2010년대 들어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해외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내부자로서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해외를 배경으로 삼는 작품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동네의 이상술 국내문학팀장은 “문학동네 신인상 심사 때도 최근 응모작에서 해외를 배경으로 외국인이 등장한 소설이 늘었다는 평이 있었다”며 “젊은 세대들의 경험을 반영한 것 같다는 취지로 해석됐는데, 근래 발표작들을 보면서 그럴 법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 작가 세계관의 확장

해외여행이나 해외이주는 일상의 일이 됐다. 취업이나 결혼으로 국경을 넘어서는 사례도 많아졌다. 세대 구분 없이 나타난 현상인데, 젊은 작가들의 세계관은 더 적극 호응한다.

왼쪽부터 소설가 백수린·정용준·손보미·강태식

문단에서는 백수린(36)의 등장을 주목했다. 백수린의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거짓말 연습’은 프랑스에서 언어·사회적으로 소통 불능의 상황에 빠진 여성이 어떻게 외부와 관계를 맺어가는지를 그려냈다. 그의 또 다른 단편 ‘폴링 인 폴’(2011)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여성 주인공이 재미교포 폴을 사랑하는 이야기다. ‘언어’(말)에 관해 천착한 이 작품을 두고 김윤식 문학평론가가 “다국적 시대의 삶이라면 소설은 이를 선취해야 하는 법”이라며 호평했다. <디어 랄프 로렌>은 지난해 대산문학상 수상작이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다국적 소비문화의 영향 아래 자기 인식의 언어를 배운 젊은 세대가 한국인과 같은 동일성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서사적 상상의 발랄함으로 표현한 점”을 평가했다.

황종연 동국대 국문과 교수는 “한국인의 문화 소비는 다국적으로, 특히 미국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 공동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작가들이 작품 안 문화 코드로 과거 이순신과 춘향이를 불러냈다면 이젠 스티브 잡스를 끌어오거나 디즈니랜드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정용준은 <프롬 토니오>에서 생텍쥐페리를 작품 인물로 소화했고, 손보미는 메릴린 먼로의 이야기를 <디어 랄프 로렌> 첫 부분에 실었다. 황 교수는 “외국을 배경으로 할 때 이국적 정서, 취향 등 문화적 기호들이 소설을 쓰는 데도 여러 효과를 낸다”고 했다.

정용준은 “<프롬 토니오>에 생텍쥐페리라는 실존 인물이 등장하다보니 한국적 상황과 맞지 않았다. 말 그대로 소설적 의지, 이야기의 필요에 의해서 다국적 인물을 만들고 배경도 포르투갈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지역의 기후나 풍습 등을 알아보는 수고가 뒤따르지만 그것은 어느 소설 창작 과정에도 필요한 것”이라면서 “작품이 동화처럼 읽히기 바랐던 마음이 컸고 독자도 자유롭게 봐줬으면 했기 때문에 (이국적 설정이) 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너무 한국 이야기가 없나’라는 생각을 스스로도 했는데, 경험은 때로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적 상황이 아니라서 글쓰기에 자유로웠다”고 말했다.

■ 보편적 물음 속 한국 탐구

이런 소설들을 두고 여러 비판도 나온다. “한국적 상황과 특수성에 대해 무관심하다” “번역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쓴다” “외국소설을 흉내 낸 작품이다” 등이다. 한국을 벗어난 소설들은 인간사회, 인간관계에 관한 보편적 질문들을 던진다. 언어 장벽에서 오는 소통 문제,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비롯한 감정 문제 등이다. 이국적 설정은 소설의 극적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거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카로니 프로젝트> 작가 김솔은 “독자들에게 등장인물과의 정서적 거리감을 두게 하고 싶었고, (소설의 이야기가) 한국을 포함한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강(48)의 <흰>(난다)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쓰인 소설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에서 작가는 영감을 얻는다. <디어 랄프 로렌>에선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와 얽힌 인물이 등장하고, 최은영의 ‘씬짜오, 씬짜오’에선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창은 교수는 “작가들은 이미 (전쟁, 학살, 독재 등) 근대적 폭력성을 내재한 사회에서 태어났다. 그것(폭력성)이 각 나라의 특수성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 폭력의 결과들은 보편성을 띠기도 한다. 공통 관심에서 나온 이국적인 글들은 결국 한국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당연히 젊은 작가들이라면 시도해야 한다.

나이가 들고, 고루해지면 상상력이 사라지고, 보편타당한 이야기에 침잠하게 되기 마련이다.

소재도, 주제도 세계를 향해 달려가야만 한다.

젊은이들이 달려가는 이 세계를 향한 시선을 한국에만 묶어두려는 아집

집어치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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