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속고 살았어
박 세현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
30년 만에 소집된 얼굴들을 만나니 그 낯짝 속에
근대사의 주름이 옹기종기 박혀있다
좀이 먹은 제몫의 세월 한 접시씩 받아놓고
다들 무거운 침묵에 접어들었다
화물차기사, 보험설계사, 동사무소 직원, 카센터 주인, 죽은 놈
만만찮은 인생실력들이지만 자본의 변두리에서
잡역부 노릇하다 한생을 철거하기에
지장이 없이 없는 배역 하나씩 떠맡고 있다
찻집은 문을 닫았고 바다도 묵언에 든 시간
뒷걸음치듯 몇몇은 강문에서 경포대까지
반생을 몇걸음으로 요약하며 걸었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던 간밤의
풍경들이 또한 피안처럼 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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