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중
김정희
주둥이 풀칠 힘들면 꽃도 욕심 못 내나며,
핏대 세우고 빗장 걸은 지 삼년하고 열흘 째,
달빛에 서성이는 곰보네 치맛자락도 못 봤다고,
백중 날 아침에 장정들이 문을 열었다.
기역자로 기와 얹은 오동나무 집 마당에
달랑달랑 꽈리가 소복이 달려 있고, 분하고 분한 분꽃도 피었더니,
씨앗 한 톨 부주 못한 면구스런 아낙네들,
이레 전에 죽어 냄새 풀풀 풍기는 과부 곰보네 몸뚱이 씻기고 염하여,
상사화 밑에 토닥토닥 묻었다.
서낭당 명부전에 이름 올려놓고, 오동나무 칭칭 감은 박주가리 밧줄 삼아
백중 한 밤중 하늘 문 열릴 적에, 질 좋고 덕 쌓은 혼백 슬쩍 묻어가려던 총각 구신들이
곰보네 꽃밭으로 우르르 몰려와, 꽃 잔치에 먹고 취해 소란 피우다
새벽 닭 울어 하늘 문 닫힌 줄 몰랐더니,
꽃 마당 꽃 대문 빗장 풀어 놓은
오동나무 서 있는 곰보네 기와 집.
꽃보다 구신이 더 많다.
* 백중 - 음력, 7월 15일 백종(百種)·중원(中元)·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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