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분 (秋 分)
김정희
충성 받지 못한 자,
해바라기 밭에 가 보라.
쏟아지는 햇살 온 몸으로 버텨내며, 잎사귀는 말라비틀어 진 채,
오직 동으로만 경례하는 그들이 있다.
해가 서쪽으로만 진다고 소리치는 자들,
어둠을 등에 짊어지고 무릎을 굽힌 자들,
그들은 해바라기, 저 군장 갖추고 도열하는 가을의 동쪽으로 가 보라.
그들의 해는 동쪽에서 뜨고,
그들의 해는 다시 동쪽으로 진다.
가을의 어깨를 부수며, 새들이 해를 쪼아 먹고 있다.
가을의 몸뚱이를 반으로 베어버리며, 새들이 해의 얼굴 귀퉁이 조금 남기는 동안,
빼어 든 칼을 칼집에 꽂지 못하고, 해바라기,
그들은 서서 죽었다.
충직한 이들은 서서 죽었다.
여름이 다 가도록 그들의 충성을 잊어버린 자,
산 위에서, 바다 위에서, 이름 다지기 위해 절개를 내팽개친 자,
그들은 가자.
가을밭에서 지친 어깨 곧추세우고,
저, 온 여름을 머리에 인 채, 동쪽으로 동쪽으로만 내닫는
해바라기,
그들이 사열하는 연병장에
끓어오르는 비겁을 밟으며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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