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신춘문예 작품에 대한 소고
유창섭 시인. 월간모던포엠 편집주간
신춘문예 작품을 일별하여 보는 일은 하나의 설렘이며,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현대시의 시적 흐름이나 앞으로의 시적 흐름을 견주어 보는 하나의 척도로서의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그 속에는 지적 번득임과 새로움이 있기도 하고 새로운 실험적 정신이 보이기도 하여, 어느 한 시점 한자리에서 그러한 경향을 한꺼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렇기도 하다.
신춘문예가 우리 시단의 경향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경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의 형식미를 만들어가는 데에 크건 작건 영향을 주게 된다는 데에는 이의를 달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신춘문예를 지향하는 시인들을 지도하는 신춘문예 주도적 시인들의 견해가 다소 편향되어 있다거나 시적 소재를 다루는 경향이 서로 비슷비슷하여 특별히 ‘신춘문예 형식’이라는 ‘투套’가 유행하게 되었다거나, 신춘문예에 적합한 소재가 따로 있어서 그런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혐의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조차 인정할 만큼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번에도 ‘구름’이라든지, ‘구두’, 또는 ‘골목’과도 같은 해묵은 숙소재가 당선작의 일부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은 옥의 티로 보인다.
과거부터 익숙하게 접한 ‘숙소재’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형식이나 동인 활동 등의 결과로 얻어지는 이미지의 모방이나 표절 등의 혐의를 받기 쉬울 뿐만 아니라 베끼기 등의 혐의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선하는 것을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중앙 일간지의 신춘문예에 집착하던 것이 중심을 이루었는데, 이제는 지방 일간지에서도 어지간하면 신춘문예 제도를 두어 가히 신춘문예 전성시대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예전에 서울을 중심으로 한 유명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꿈이었던 시대에서 지방대학에로의 진학이 하나의 대세로 굳어가는 것과도 비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신춘문예 제도에 발길이 잦아지고 응모하는 작품의 수 또한 적지 않아 우리 문단에 새로운 문인고시제도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나 기대 또한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코드로부터 새로이 돌출한 성격이 짙다.
그에 따라 비슷비슷한 이미지나 표절, 또는 이미지 베끼기 현상과도 같은 과도한 착란 현상이 상당 부분 개입될 여지나 혐의가 있다---영남일보 심사평에도 언급되어 있음---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되돌아보면 2012년은 문학적 변화가 크게 드러나지 않은 평범한 한 해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시문학에서도 매우 평범하고 서정적인 내용이나 형태가 전반적인 경향이었고, 개인사적인 고백적 언술이나 관심 등이 주로 표출된 한해였다고 생각된다.
정치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끌었던 “정의justice"의 관점에서만 와글거리는 성향을 보였고, 시인들은 그러한 사회현상을 담아내는 데에는 침묵했다.
침묵이란 “묵시적 동조“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기 내면에만 눈길을 주는 시들이 양산되었고, 새로움을 포장한 표현 기교들이 범속적 대세를 이루는 시적 환경이 조성된 같다.
이러한 잠정적인 “정중동靜中動”속에서는 앞으로 분출되려는 커다란 에너지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3년 신춘문예에서는 다소 그 침묵적 성향이 무너지고 새로움이 나타나게 될 것인지 변화를 기대하였다.
2013년 벽두에 발표된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당선 작품 “시 부문”(26편 발췌)의 내용을 탐색해 보면, 전반적으로 강한 서정성과 뒤집어 보기에 의한 사물의 형상 뒤편을 응시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형상화시키려는 노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1. 2013년 신춘문예 작품에 나타난 시적 성향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된다는 것은 한 시대의 단절이 아니라 이어지는 연장선상에서의 변화를 견주어 볼 수 있는 하나의 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초에 발표되는 신춘문예 작품의 흐름을 살펴보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으며, 거기에는 전년에 비해 어떤 새로운 변화의 덕목들이 등장하게 된다. 변화란 모두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좋든 궂든 변화란 한 시대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특히 각 신춘문예 작품의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들의 견해는 우리 현대시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시 창작에서 유념할 가치가 있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 준다.
그렇다면, 시인들은 자신이 창작하는 시에서 어떠한 면을 강조하면서 시적 정서를 통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길을 찾아내는 것일까? 그러한 여러 가지 정황을 이해하고 전정성을 획득하여 자기만이 가지는 독창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이러한 기회에 나타나거나 추구하는 가치를 생각해 보면서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는 일도 또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내용이나 경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장황한 서술 시대의 등장
시가 짧은 글이라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언어의 경제성은 시의 요체이다.
그런데 현대시에서는 압축 또는 감춤의 구조에서 풀어냄의 구조로 이행하면서 생긴 부작용의 하나가 ‘장황함’이다.
현대시에서 풀어냄은 단순한 ‘장황함’이 아니라 시대적 필요---인터넷의 발달로 속도가 중시되는 시대에 감동을 빠르게 전이시키려는 의도---에 의해 그 내면적 정서들을 세분화하여 그 각각의 분화된 감정들을 표현해냄으로써 독자들이 쉽게 감동으로 몰입하게 하려는 의도적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형식들이 일반화되면서 혹자는 전에 비해 함축미가 떨어지고, 압축된 정서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일견 맞는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에 없던 다양한 정서가 밖으로 넘쳐나서 감정을 쉽게 전달하여 감동에 이르는 길로 인도하게 된다는 면에서는 장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시인들이 우려하는 상투성(=익숙함)에서 쉽게 해방될 수 있다는 점도 장황함을 부채질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현대시에는 함축미가 부족하다고 폄하 하는 선배 시인들의 주장은 그다지 합리적인 주장이 아니다. 짧은 형식의 시에 익숙한 시대에는 그 감정의 절제 수준에 따라 문장이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일에 길들여져 습관화되었으므로 형식면에서도 함축미를 가진 형태로 보였을 수 있지만 현대에는 각각의 이미지를 분화시켜 그 개별적 섬세한 이미지에 정서적 의미를 부가시키고 있어 함축미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과거에도 시 행을 길게 쓰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은 그러한 주장에 눈길을 주지 않고 지속적으로 그들의 시적 표현의 자유를 누려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러한 편견들을 걷어내고 이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시의 형식의 장점을 살려내고 단점을 과거의 함축미로 보완함으로써 이 시대의 시적 발전을 도모하는 방법이나 형식을 창안해 내고 그 부족한 내면을 보완하여 가는 길이 시인들이 하여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2) 산문시 형식의 퇴조
성급하게 판단하기에는 다소 이르지만 이런 관점에서 본 금년도의 신춘문예 작품의 커다란 변화의 모습을 수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던 형식적 운율적 산문화의 경향이 보편화되면서 시행이 길어지고, 산문시가 가지는 내적 운율에 기대어 시를 창작하고 형식적 의미를 강화해 나가는 추세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그런 경향 때문인지 2000년대 중반까지 유행의 대세를 이루었던 산문시의 형식은 점차 퇴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까지나 산문시로 볼 수 있는 시의 형식은 여기에서 살펴보는 26개 신춘문예 당선 시 중, 단 4편이 산문시의 형식을 빌리고 있을 뿐, 산문적 틀에 기대어 쓴 자유시 형식이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물론 시의 행가름이나 운율의 흐름을 평서문과 같은 음보율에 기대게 되었다든지 하는 의도된 형식의 채택은 시가 산문의 경계면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섬을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시에서 각 행의 길이가 길어지고 행의 수도 상당히 많아져 간다는 특징을 보인다.
3) 창조적 경험의 공유
새로운 시적 실험이나 창의적인 이미지의 변용과도 같은 창조적 시 창작 행위가 한 시점에 의미 있는 공간에서 집중 조명을 받아 새로움의 장에 나타나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경험을 공유하는 일로서 바람직한 시적 세계의 확장이며, 개별적으로는 그런 기회를 가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문학지 전반에서 펼쳐보이는 작품의 발표 공간에서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기는 하지만 그렇게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탐색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운 것이므로 ‘신춘문예’라는 공간이 바로 그 역할의 중심에 서게 되는 일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일이 시적 발전에 커다란 반향을 주어 선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당선작의 모델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놓고 시의 형태와 창작방법과 사유를 그 틀에 억지로 맞추려는 듯한 태도가 여러 작품에서 보였기 때문이며, 어떤 작품들은 같은 사람이 쓴 것처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깨뜨리고 시 쓰기를 즐기면서 자유로워져야 남들과는 다른 개성도 나오고 새로움도 나올 수 있다. 창작은 이래야 한다는 경직된 태도는 시 쓰기를 괴롭게 만들고 나아가 호기심과 상상력까지 고사시킬 수 있다. (경인일보/최동호.김기택)”는 지적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본심에 올라온 수십 편의 시들은 그 내부에서 서로가 서로를 카피한 혐의가 있다. 원본은 사라지고 카피 본들의 베껴 쓰기가 다반사로 이루어진 세간의 형편과 다르지 않다. 수사와 기교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은 위안이지만, 카피의 스펙트럼이 광범위하기에 이번 심사는 곤혹스러운 체험이다.
본심의 작품들은 대체로 비슷한 감각의 폴더를 공유했다. 어떤 책의 감동이 블로그를 통해 흔적처럼 남겨지고, 이후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은 앞선 사람의 블로그를 거치면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
음악도 영화도 같은 폴더라는 소비패턴을 반복한다. 그것은 또한 감각에서조차 트렌드를 생산한다. 즉, 문화의 접점이 개별적이지 않다는 비효율성을 생산한다. 문학의 본질이 사유의 진보와 확장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필사적으로 개별이자 개성적이어야 한다. 숭고미가 있다면 추악한 아름다움이라는 대구(對句)의 필연성이 문학의 범주다. (영남일보 / 심사위원 ; 이하, 송재학 시인)“라는 ----심사평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4) 익숙함으로부터의 탈피
2000년대에 들어서서 자주 강조되어온 “낯설게 하기”의 인식이 중요한 시적 요소로 받아들여진 이래 새로운 표현주의 도래와 함께 과거의 “상투성(=끌리셰cliche)"에서 벗어나 이제는 ”익숙한 서정을 찾기 힘든 대신에 낯선 감각과 의도된 착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흐름은 주목“(동아일보)할 만했으나, ”투고된 작품들은 아직도 시가 개인적인 고백의 양식이라고 생각하거나 낭만적인 감정의 표출 정도로 생각하는 구태의연한 시들이 많았다. 또한,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한 작품들도 대체적으로 발상 자체가 보편적이거나 산문적인 경향“(무등일보)이 보였으며, 그런 가운데서도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보게 하는 경험을 선사해준 좋은 시들도 많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언어적 세련미나 시적 완결성보다는 시적 치열성과 참신성을 중요하게 생각”(무등일보)하여 사소한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시를 발견하는 시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을 밝혔다.
익숙함으로부터의 탈출은 자칫 언어의 유희를 불러올 개연성도 적지 않다.
현란한 표현의 기교를 무기로 익숙한 정서를 뒤집어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해 내려는 시인들의 사고와 창의적 노력은 정서적 촉발과 상상력의 공간을 넓혀 다양하게 반응하는 감동에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지만, 시 속에서 맞물리는 의미의 유기적 연결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공연한 언어의 유희에 그칠 수도 있다는 약점을 노출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의 창조적 상상력 속에는 매우 잘 직조 된 관념과 심상이 잘 접목될 수 있도록 치열하게 성찰하여 탄탄한 개성이 장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시란 삶과 현실에 대한 성찰과 열정의 산물이므로 시적 치열성이 없이는 좋은 시가 나올 수 없는 법이다.
5) 시창작 화두로서 “창조적 사고”의 강조
심사위원들의 심사 기준을 제시함에 있어 응모 작품을 보는 심사위원들의 바람의 하나를 축약하여 들려주는 화두話頭로서 “통념을 깨는 상징을 찾아라, 감각의 명증성을 보여라, 생명의 도약에 공감하라, 세계의 찰나를 경이로써 보여주라. 좋은 시의 덕목으로 꼽을만한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껍질을 깨라! 도약하는 힘을 보여라!
사물의 새로움과 내면의 고매함을 융합하며 붉은 보석이 밖으로 터져 나온다.(발레리, 「석류들」) 상상력은 늘 그렇게 독자를 익숙한 것들에 대한 놀라운 개안(開眼)으로 이끈다.“(동아일보)는 말은 현대시를 창작하는 시인들에게 매우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창조적 메시지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견해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기본기는 갖췄으나, 그 ‘너머’에 이르도록 끌고 가거나 들어올리는 힘을 내재한 시편을 찾아내기란 꽤나 지난한 일”이었으며, “그러한 추동력이란 삶을 바라보는 서정적 진정성의 관점에서는 물론이려니와 언어 자체가 직조해내는 미묘한 ‘아우라’를 통해서도 발현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매일신문)는 지적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2. 신춘문예 당선 시와 심사평 발췌 내용
매년 연초이면 관심이 집중되는 문학행사로서 “신춘문예제도”만한 제도가 있을까?
이러한 문학제도에는 음과 양이 동시에 존재한다.
신춘문예 예찬론도 있고, 무용론도 있다.
이미 이 제도를 가장 먼저 실시한 일본에서조차 이 제도를 폐지한지도 30여 년이 되어간다고 들린다. 이제 이 제도를 80여 년에 걸쳐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는 말이다.
“현재의 신춘문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①신춘문예 제도는 뚜렷한 미덕을 갖고 있는 신인선발 제도이므로 전통을 이어나가자는 주장, ②신춘문예 제도의 의미를 존중하기는 하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 ③신춘문예 제도는 현재 시점에서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
신춘문예 제도가 한국적 문학제도의 자랑할 만한 전통으로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엄격하면서도 보수적인 제도가 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접근통로를 상대적으로 제약하면서 문학에 대한 신비화의 기능을 수행하는 임의적인 기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적어도 외형적인 이미지만을 고려하자면 신춘문예는 조선조의 과거제도를 연상시키며, 사법고시를 포함한 국가고시가 뿜어내는 미묘한 신분상승의 아우라마저 거느리고 있다.”(“신춘문예 제도의 성립과 현재적 의의”<이명원/문학평론가>에서 인용)는 평가는 음미할 만하다.
그리고 신춘문예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보이는데 그것은 “심사의 불공정성에 관한 것이다. 담당 기자들의 말에 의하면, 예심보다 본심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예심위원들이 작품의 일부만을 보고 감으로 뽑지만, 좋은 작품이 예심에서 탈락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그들은 믿을 수 있으나, 본심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심사위원의 고령을 들었다. 젊은 세대의 시를 심사하기엔 원로 문인은 적합하지 않으니, 본심 위원의 연령을 낮추어 선정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본심을 없애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신춘문예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민병기(창원대 교수)<신춘문예를 말한다>에서 인용)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신춘문예의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이른바 ‘신춘문예용’이라는 천편일률적 작풍을 조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 문학을 얇고 좁게 만들 가능성이 있으며,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보면 그게 그것 같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작품들이 허다하여 신춘문예가 일종의 ‘틀’에 갇혀 있다”(한겨레 신문; 최재봉 기자)는 주장도 매우 설득력을 가진다.
이러한 다양한 의견들도 있는 제도이지만 우리 문학을 발전시키는 다른 측면도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면 보다는, 어차피 어느 한 시점에 거대한 흐름이 조성되지 않는 한 상당기간 앞으로도 이 제도는 우리 문학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어 그 속에서 새로운 발전적 요소를 접목시키는 것이 현재로서는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당선작품이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는 매우 상대적인 것이다. 평가 내용은 어느 정도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게 되겠지만 그 작품을 심사하는 심사위원의 전문성이나 소양과 같은 기본적인 자질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이다. 그러므로 당선작품은 심사위원들에게 위임된 권능에 의한 최선의 선택에 의한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신춘문예 당선작품에 대한 개별적인 감상과 평가는 이미 심사위원들의 견해가 요약되어 있으므로 세세한 내용적 분석이나 평가는 제외한다.
따라서 신춘문예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내 각 일간지에서 발표한 신춘문예 당선 시와 그에 대한 심사평을 요점만 간추려 그 내용을 일별하여 보기로 한다.
여기에 인용된 당선 시는 신춘문예 작품의 전부가 아니다. 그 일부에 해당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작품을 인용한다면 그 대표성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이라고 판단하여 26개 신문사의 작품들을 간추려 보았음을 밝혀 둔다.
2013강원일보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 / 정선희
눈동자를 자주 쳐다보는 사람은 언젠가 떠나게 되어있지
눈동자는 또 다른 눈동자를 부추기지
검은 눈동자 흰 눈동자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
하늘에 있는 구름이 눈동자 속으로 흘러들면
그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지
구름이 풀린 사람을 본 적 있니? 흰구름이
검은 구름을 침범한 걸 본 적 있니?
그는 눈동자에 발목을 잡힌 사람,
그의 눈동자는 지금 여기를 보지 않고
언제나 저 멀리 허공을 보고 있지
오래전 김시습이 그랬고 임제와 김삿갓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세상에 없는 길을 찾고 있지
구름처럼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고 있지
만약 저들 중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당신도 벌써 구름이 선택한 사람,
만약 스튜어디어스나 등반가를 꿈꾼다면
당신은 벌써 구름에 중독된 사람
사람 마음이 열두 번도 더 바뀌는 것도
구름 때문이야
마음을 붙잡고 싶다면
눈동자를 매달아 두는 게 좋을 거야
쉿! 저기 저 구름
조심해!
[심사평] 참신한 상상력과 현대적 언어감각 놀라워
당선작으로 선정한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은 흔한 소재인 `구름'을 참신한 상상력과 현대적인 언어 감각으로 새로운 시의 가능성이 돋보였다. 시의 생명인 리듬감도 잘 살려낸 것은 물론 개성적 발상이 놀랍고, 아이러니와 위트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다만, 시의 마무리가 다소 가벼운 느낌을 준다. /이승훈 한양대명예교수·이영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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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수박 / 진서윤
수박밭에는 여물지 않은 태양들이 숨어있었다.
햇빛 줄기가 연결된 곳엔 푸르스름한 심장이 떠있고 폭염이 몰려들고 있었다.
양말 목 풀린 실밥처럼
몸이 헐 것 같은 날
거꾸로 자라는 덩굴의 비린 향이 꼼지락거렸다.
직선의 나이에 곡선의 통증이 붉다
모래밭 이랑마다 층층이 쌓이는 바람말이를 먹었다
누군가 손등으로 통통 두드려보고 갔다
그때 문득, 통증에 씨앗이 생겼다.
세상의 모든 음(音)은 보이지 않는 발자국처럼 익어가고 서리라는 말을 들으면 붉은 당도(糖度)가 끈적거렸다.
달의 필라멘트가 끊어진 밤
고양이가 지나갈 때마다 감지 등(燈)이 켜지고
닿기만 해도 탁! 터질 준비가 되어 있는 만월(滿月)
수박 속에는 검은 별들이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푸른 굴절무늬로 온몸을 묶어 놓은 여름, 허벅지 아래로 붉은 씨앗 한 점(點) 떨어졌다.
이후 모든 웃음을
손으로 가리는 버릇이 생겼다.
들판 너머 여름이 이불 홑청 끝자락처럼 가벼워졌다
마르지도 젖지도 않은 이파리를 허리에 감고
수박들이 붉은 속셈으로 익어간다.
◇1960년 함안 출생 ◇창신대 문예창작과 졸업 ◇제6회 세관문예전 시 부문 최우수 ◇2007년 경남여성백일장 장원 ◇2010·2011년 공무원문예대전 시 부문 동상
[심사평]
당선작 ‘수박’은 이미지의 참신함이 돋보였다. 수박의 성장을 인간의 삶에 비유해 삶의 여러 단면을 성찰하고, 무엇보다 그 시적 전개마다 놀라운 언어감각이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수박밭’과 ‘밤하늘’의 연계성을 지상의 어둠과 우주의 비밀로 해석해 감각적인 언어로 잘 꿰매고 있어 발상의 신선함을 샀는데, 이러한 점은 투고한 다른 작품들에도 고루 나타나고 있어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그에 합당한 언어 감각과 형상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심사위원 김경복·유홍준·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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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
소금쟁이, 날아오르다 / 최정희
그녀가 오늘 한쪽 유방을 들어냈어 무거워진 한쪽이 사면처럼 기울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어 기울기를 가진다는 건 양팔저울 한쪽에 슬픔을 더하거나 덜어내는 것
가끔 또는 자주 비가 내렸어 그녀의 눈 속에 살고 있는 소금쟁이는 언제나 눈물의 표면을 단단히 움켜쥐었어 그렁그렁한 표면장력, 그 힘으로 소금쟁이는 침몰하지도 날아오르지도 못했어
오늘 그녀는 기울기를 가졌어 x축과 y축 사이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가슴에서 눈물이 호수처럼 출렁였어 그녀는 비로소 너무 오래 울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어 남은 한쪽의 젖꼭지가 짓무를 때까지 오늘 울기로 했어
소금쟁이가 떠났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
[심사평] 생애의 비의가 배어있는 사랑스러운 작품
깊은 생각 없이 그냥 유행의 물살을 타고 있거나 또 현란하게 변해가는 시대의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하고 고색창연한 시의 습관에 무심코 젖어있지는 않은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당선작으로 뽑힌 〈소금쟁이, 날아오르다〉는 아주 세밀하게 직조된 ‘작품’이다. 도드라지거나 으스대지 않으면서 나직한 어조로 세계와 통화하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다. 참신한 시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시 속의 ‘그녀’는 지금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영혼 속에는 표면장력을 잡아주는 소금쟁이 한 마리가 늘 있는 법이다. 곰곰 읽어볼수록 우리들 생애의 비의가 함초롬히 배어있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심사위원 오탁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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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떠도는 지붕 / 장유정
바람으로 벽을 세운다.
해와 달을 훈제하는 뾰족한 꼭대기에는 바람의 뚜껑이 있다.
날씨 사이에 계절이 끼여 있는 벌판에
조립식 숨구멍을 튼다.
이것을 바람의 집이라 부르고 싶었다.
예각이 없는 벽,
구겨진 바람을 펴 문을 만든다.
환기창으로 들어 온 햇살은 시침만 있는 시간이 되고
불의 씨앗을 들여놓으면 집이 된다.
집에서 흔들리는 것은 연기뿐이라는 듯
발굽이 있는 흰 연기들이 꾸물꾸물 날아오른다.
한 그루 귀한 자작나무, 벌판의 한 가운데 서서 시계로 운영되고 있다 푸른 지붕은 바람의 소관이다. 반짝거리는 나무의 초침이 다 날아가도 재깍재깍 부속품들만 돈다. 흐린 날에는 시간도 쉰다.
빈집을 알리는 표시가 열려 있다
정착하는 곳마다 그 곳의 시간은 따로 있다
자작나무에 붙은 시간이 다 떨어지면 지붕을 걷고
게르! 하고 부를 때마다 게으른 잠이 눈에 든다.
바삭거리는 시간들이 날아간다.
집은 버리고 벽만 둘둘 말아 트럭에 싣는다.
떠도는 것은 지붕뿐이다.
[심사평] "보이지 않는것 읽어내는 힘 돋보여"
장유정의 '떠도는 지붕'은 이런 우려를 어느 정도 덜어준 수작이어서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쉽게 의견이 일치하였다. 유목민의 천막집인 게르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보이는 것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관찰력이 돋보인다.
게르의 잠재적인 구성 요소인 바람과 시간과 불의 운동을 역동적으로 묘사한 솜씨도 볼 만하다. 하늘과 바람으로 숨 쉬고 자연의 움직임을 읽으며 떠도는 유목민의 자유와 야생의 정신을 집이라는 시공간의 형식으로 구현한 시적 인식도 탄탄하고 믿음직하다. /최동호·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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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춘문예 우수상/가작
구두 / 강지혜
'구두'
고단 했던 시간
훌훌 털어 버리고
밤 내린 신발장
아버지의 구두도 잠이 들었다
바람 불어
흙먼지 일던 길을 걸었지
내일은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또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코끝에 햇살 내려와
밝게 빛나게 될 날은
언제일까
멀어도
바람 속
꿈을 안고 걷는 이 시간
언젠가는 꼭
비단길이 펼쳐지겠지
빛바랜 구두
닳은 굽 모서리
먼 꿈을 꾸며
달빛 한 자락 끌어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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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한 각도 / 손호경(가작)
관솔 몇 점으로 술잔을 만든다
그 잔에 향기를 가득 채우면 그가 나를 차지할 것이다
먼저 톱을 켜서 곁가지를 자른 다음 용각무늬가 새겨진 몸을 열어놓는다
빗물로 몸을 닦고 바람으로 머리를 빗던 한 생이
압축된 곡선을 고담하게 품고 있다
끌 머리를 토닥이며 흑반점 하나를 도려내자 메아리가 퍼렇게 울려 퍼진다
그늘이 엷은 바람을 일으키자
그 몸에 우주를 그리듯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숨을 멈춘 채 굳은 살점을 파들어간다
날 선 끌을 튕겨내다가 제 무늬를 가무리며 끌을 물고 늘어진다
어느 누가 제 몸을 호락호락 내어줄까
정중한 각도로 손잡이를 고쳐 잡고 청정한 마음으로 살점을 들어낸다
구멍이 깊어질수록 관솔은 유순해지고 한 생애를 묵언으로 간직해온 감로정의 향기가 무늬의 간극 마다 흘러나온다
두 손 위로 올라앉은 술잔
울창한 솔밭 한 채가 그 안에 담겨있다
[심사평]
가작으로 뽑힌 <정중한 각도>는 함께 출품한 작품들이 골고루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시적 훈련이 되어 있는 분임을 말해준다. 산문처럼 늘어지지 않는 시적 긴장도를 갖춘다면 더욱 좋은 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우수상에 뽑힌 <구두>는 슬프고 단아하고 아름답다. 강렬하지 않으면서도 울림이 있고 특히나 다른 분들의 작품과 달리 희망을 버리지 않아 좋았다. 시적 분발을 기대하게 되는 까닭이다. /- 이희주 시인, 이순원 소설가, 채원배 머니투데이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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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녹번동 / 이해존
1
햇살은 오래전부터 내 몸을 기어다녔다 문 걸어 잠근 며칠, 산이 가까워 지네가 나온다고 집주인이 약을 치고 갔다 씽크대 구멍도 막아 놓았다 네모를 그려 놓은 곳에 약 냄새 진동하는 방문이 있다 타오르는 동심원을 통과하는 차력사처럼 냄새의 불똥을 넘는다 어둠 속의 지네 한 마리, 조정 경기처럼 방바닥을 저어간다 오늘은 평일인데 나는 百足으로도 밖을 나서지 않는다
2
산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 희끗한 뼈마디를 드러낸 절개지, 자귀나무는 뿌리로 낭떠러지를 버틴다 앞발이 잘리고도 언제 다시 발톱을 세울지 몰라 사람들이 그물로 가둬 놓았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곪아가는지 파헤쳐진 흙점에서 벌레가 기어나온다 바람이 신음소리 뱉어낼 때마다 마른 피 같은 황토가 쏟아져 내린다 무릎 꺾인 사자처럼 그물 찢으며 포효한다
3
저마다 지붕을 내다 넌다 한때 담수의 흔적을 기억하는 산속의 염전, 소금꽃을 피운다 옷가지와 이불이 만장처럼 펄럭이며 한때 이곳이 물바다였음을 알린다 흘러내리지 못한 빗줄기를 받아내는 그릇들,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방안에 고인 물을 양동이로 퍼낼 때 땀방울이 빗물에 섞였다 오랫동안 산속에 갇혀 있던 바다가 제 흔적을 짜디짠 결정으로 남긴다 장마 끝 폭염이다 살리나스*처럼 계단을 이룬 집들을 지나 더 올라서면 산봉우리다 계단 끝에 내다 넌 내 몸 위로 햇살이 기어다닌다
* 페루 고산의 계단식 염전.
[심사평] “시는 자신을 비워줄 때 조금씩 다가오는것”
‘녹번동’ 외 4편을 응모한 이해존의 시는 그간의 적공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어 당선작으로 합의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을 구조(構造)하고 있는 안과 밖의 경계에 대해 사유와 감각을 적절하게 가로지르며 생의 경험이 곧 시의 경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다른 무엇보다도 신뢰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시는 시여야 한다는 기원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조차 모른다면 시는 언제 찾아올 것인가? /문학평론가 황현산·시인 박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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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섬, 이유 / 김유경
이 섬에선 사람이 죽으면 바람에 묻는다
그건 섬의 풍토병 같은 내력이어서 여자는
바다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비의 아이를
박주가리 씨앗처럼 품은 채 바람에 묻혔다
은행나무가 여자의 무덤이며 묘비명이었다
남은 여자들이 제 주검을 보듯
길게 울다 돌아갔다, 섬에서 여자가 죽으면
살아서 뜨겁고 애달팠던 곳이 먼저 젖는다
바람은 젖어 있는 것부터 시나브로 말린다
소금에 간이 밴 깊이를 모두 말려
눈물의 뿌리가 마른 우물처럼 바닥을 드러내면
영혼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람의 법이다
하루 두 번 물마루 끝이 어물어물 붉어지고
꼭 쥐고 있던 바람의 손아귀가 스르르 풀리면
섬은 귀를 열고 듣는다,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돌아오지 않는 아비들의 빈 배가 웅웅 우는 소리를
죽은 여자는 그 소리에 기대어 바람 몰래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 뭉텅뭉텅 사라지는 몸에서
눈동자는 빛을 잃고, 머리칼은 제멋대로 자라나온다
아이를 품은 움 같이 보드라운 궁륭, 그 곳에선
바다 밑바닥에서만 나는 해초 내음이 나날이 짙어졌다
마침내 바람이 여자를 온전히 데려갈 때
죽은 여자는 아이를 은행나무 잎 속에 묻어두고
떠난다, 홀로 누워 있었던 자리에
노란 은행잎이 수북수북 쌓인다, 가을 한 철 내내
바람의 장례가 제 열매 다 익도록 잎을 물들이지 않는
은행나무의 사랑 같은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바람이 먼 바다 부표를 향해 치솟아 올라 길을 잡고
여자의 푸른빛 인광은 그리운 바다를 향해
따뜻하게 흘러간다, 아이는 그 바다 어디쯤에서
돌아오지 못한 제 아비를 그대로 빼닮았지만
섬도 바람도 그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 약력 1985년 경남 창원 출생. 부산대 사범대학 졸업. 경남대 교육대학원 재학. 현재 경남신문 문화부 기자.
[심사평]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삶의 구체성 속에서 길어올리는 김유경의 시는 시상을 끌고 가는 기량에 있어서나 시어를 낯설게 만드는 방식에서 단연 돋보였다. 넘치는 수사의 욕망에 절제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으나 서사를 내장한 이미지들의 날렵함이 그 흠을 오히려 더 빛나게 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의 고른 수준도 신뢰감을 주었고, 무엇보다 시 너머에 대한 지향을 통해 고정된 형식을 뒤흔드는 신인다운 패기가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장고 끝에 김유경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았다. 이 새로운 시인이 시 장르만의 특장을 고집스럽게 파고들어 가면서도 그 너머를 사유할 수 있는 무서운 신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허만하, 최영철, 손택수(이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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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삼거리 점방 / 김승필
감실감실 화랑 성냥 양초 넣고
시오리 길 전봇대 돌아 발쪽발쪽 막걸리 주전자 딱지 쫀득이 파리채 넣고
귀신같이 동네 사람 죽은 걸 척척 알아맞힌 칠복이 아재 담상담상 검정 고무신 허리띠 넣고
머리빡 기계독 오른 동네 아이 밀어 넣고
오다마 삼양라면 박카스 크라운산도 브라보콘 농심새우깡 크라운 조리퐁 뽀빠이 맛동산 회똑회똑 넣고
넙죽넙죽 상둣도가 지나갈 때 눈 한번 꿈적하고
무뚝뚝이 아버지 악다구니 밀어 넣고
알금알금 파리똥 범벅 밀레 만종 액자 춘길 아재 이발소 면도 거품 집어넣고
쑥부쟁이 구절초 애기똥풀 쇠비름 고들빼기 똘똘 말아넣고
후루룩후루룩 뚝딱 마시면 배부르겠다.
김승필
▲1968년 신안 출생 ▲전주대 국어국문과 졸업, 목포대 국어국문학 석사 ▲광주 정광고 교사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공저), 국어 선생님의 시배달(공저)
[심사평] “토속적 사투리 신명 돋운다”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이 응모되었지만, 나는 김승필씨의 ‘삼거리 점방’ 외 세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우선, 말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능숙하게 이어지는 가락에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절하게 배치하며 정겨운 그림을 그려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토속적 사투리가 구수하게 녹아들어 신명을 돋운다.
그러나 김씨의 작품들은 토속적이기만 하지 않다. 그 안에는 강렬한 메시지가 숨어있다. 사라진 정다운 것들, 변방으로 밀린 타자의 경험. ‘친구’에서 죽은 매미의 말라버린 눈구녁에 대한 두 개의 해석이 충돌한다.
김정란 ▲서울 출생 ▲197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2000년 소월시문학상 대상 ▲상지대 교수
[심사평] “잘 익어 맛있는 동치미 같았다”
늦게 씨를 뿌리기는 했지만 텃밭에서 자란 무가 제법 통통하게 자랐다. 뽑아놓은 무를 쓱쓱 씻어서 한입 베어 무니 입안에서 퍼지는 아삭거리는 소리는 소리대로 귀가 즐겁지만 그 맛도 참 달다.
한나절 소금 간을 해놓고 물을 부었다. 오늘 아침 항아리 뚜껑을 열고 맛을 보았다. 아직 함께 넣은 마늘, 생강이며 대파 등의 양념 맛이나 무엇보다 붉은 갓 빛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아서 조금 더 시간을 기다려야겠지만 짜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안심을 했다.
김승필의 ‘삼거리 점방’은 잘 익어 맛있는 동치미와 같았다. 언어를 다루는 그 맛이 아삭아삭 거리며 그 안에 곰삭은 젓갈 맛이 감돌았다.
박남준 ▲영광 출생 ▲1984년 시 ‘할메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로 등단 ▲제13회 천상병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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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2012
구름사촌 / 조규남
내 발도 하늘을 문질러본 기억이 있다
나무이파리처럼 시원하게 흔들리며
하늘에 발자국을 찍어본 일이 있다
바람이 건들대며 쓰다듬고 지나가면
구름도 덩달아 내 발을 슬쩍 신어보고 도망가던 자국이 자꾸 간지럽다
운동장 놀이기구에 몸을 기대고 물구나무섰을 때
아무리 참으려 해도 거꾸로 몰린 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쿵,
내려왔던 하늘이 되돌아가버리자
또 다시 땅을 딛고 온몸 받히며 살아가는 내 발
지금도 이파리가 되었던 짧은 시간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누워 뒹굴면서도 무심히 하늘을 더듬어보고 걸어 다닐 때도
발꿈치를 들어올리며 바람 느끼고 싶어 들썩인다
대낮에도 통로가 보이지 않아 눈물을 찔끔 훔치는 일도
최초의 천둥인 듯 크릉크릉 부르짖는 버릇도
내 속에 흐르는 구름의 피가 농간을 부리기 때문
발이 간지러운 가로수가 몸을 비튼다
아무리 걸어도 굳은살 한 점 박히지 않은
부드러운 초록 발,
수많은 발바닥 활짝 펴 하늘을 닦는다
죽어서도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싶은 발
[심사평] “발상의 신선함에 의견일치”
이 시는 먼저 발상의 신선함이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후반부로 가면서 인간의 시선을 나무라는 자연의 시선으로 확장시키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시라는 게 세상을 뒤집어 볼 줄 아는 힘을 내장한 양식이라면 이 시야말로 물구나무서서 세상 바라보기를 시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응모한 <옴마댁>의 ‘눈망울로 길의 태엽 감았다 풀기를 반복’한다는 빛나는 구절도 신인으로서의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사족 하나. 최종 심사 대상 작품의 표절 여부를 검증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했던 씁쓸함! / - 심사위원=이문재<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안도현<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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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가난한 오늘 / 이병국
검지손가락 첫마디가 잘려나갔지만 아프진 않았다. 다만 그곳에서 자란 꽃나무가 무거워 허리를 펼 수 없었다. 사방에 흩어 놓은 햇볕에 머리가 헐었다. 바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은 여전히 형태를 지니지 못했다.
발등 위로 그들의 그림자가 지나간다. 망막에 맺힌 먼 길로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허리를 펴지 못한다. 두 다리는 여백이 힘겹다.
연필로 그린 햇볕이 달력 같은 얼굴로 피어 있다. 뒤통수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양손 가득 길을 쥔 네가 흩날린다. 뒷걸음치는 그림자가 꽃나무를 삼킨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꽃이 떨어진다.
[심사평]
.「가난한 오늘」을 두 시간이 훌쩍 넘는 고심 끝에 골랐다. 신체 말단이 잘리고 헐고 바랜 자는 상처 받은 자이고, 그 상처는 가난의 흔적일 것이다. 일체 엄살이 없다. 아픔을 과시하는 헤풂을 절제하고 가난에 형상을 부여하는 힘은 정신의 야무짐에서 나온다. 싯구와 싯구 사이에 여백이 그 시적 물증이다. 수사가 덜 화사하고 주제가 소박했지만 아픔과 미망에 대한 표현의 간결함에서 사물에 감응하는 시인의 정직과 내핍의 염결성을 느꼈고, 그것에 깊이 공감했다. 이 시인의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게 분명하다. 지금보다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가난한 오늘」을 당선작으로 뽑는 우리를 설레게 한다. / (장석주.장석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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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일보
고로쇠 옆구리 / 김정애
뚫어야만 다스려지는 상처가 있다
뭉툭한 옆구리에 핏물을 가두고
거친 호흡으로 살아가던 나무가
잎사귀의 언어로 조용히 말을 걸어올 때
꿈의 밑동에서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세상에 저문 울음들을 끌어안고
복수腹水를 다스리는
노모의 시간
살갗 밑으로 가는 뿌리가 자라나고
산을 들어 올릴 듯 무거워진 몸으로
때론,
내 것의 체취도 조금은 빼내고 살자며 옆구리를 들춘다
콸콸콸 쏟아내는 물속에는
어머니의 깊은 한숨과 불면의 시간들이 우러나 있고
혈관을 따라 울려 퍼지는 피의 음악이 스며 있어
꿀떡 삼킬 순간을 놓치고 숲에 안겨본다
바람을 휘저으며 폭포를 향해 뻗어가던 기상과
쇳물을 다스리는 철의 여인 같던 고집이
명치 한복판을 뚫고 뼈의 무늬로 흐르고 있다
우글거리는 잎사귀를 향하여
응달을 다스리고 있다.
[심사평]
마지막으로 '고로쇠 옆구리'는 고로쇠 나무를 '세상에 저문 울음을 끌어안고' 살아온 어머니의 삶에 비유한 작품으로 자신의 삶의 주변에서부터 우러나온 경험을 형상화하는 시적 능력이 뛰어났다. 평이한 시어로 삶에 대한 깊이을 들어내는 깊은 안목을 가지고 있으나 마지막 부분에서 긴장이 좀 풀린 감이 있었다.
이 세 작품을 갖고 숙고한 결과 최종적으로 김정애의 '고로쇠 옆구리'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구조의 완결성 면에서 다소 부족한 점은 있지만 함께 응모한 '섬진강을 굽다'와 '꽃잎을 번역하다'에서 보여준 뛰어난 언어감각과 사물과 삶에 대한 이면을 성찰하고 탐색하는 태도가 녹록하지 않음을 높이 평가하기로 했다. / 김경윤 시인·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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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적도 / 조율
옥탑방 평상에 앉아 수박에 칼을 찔러 넣는다
수박의 적도 부근쯤이다 지구본으로 따진다면
한 중앙에 위치한 에콰도르의 어느 도시 정도가 되겠지
이곳은 뜨거운 열대우림, 곰팡이가 타잔처럼 천장을
오르는 옥탑방, 생각한다, 왜 나에게는 선글라스를 끼고
일광욕을 즐기는, 그런 적도가 지나가지 않는가?
눅눅한 근로계약서에 손가락을 빌려줄 때마다
낮은 태양이 양철지붕 위로 더 무겁게 녹아 내려붙는다
가로줄이 많은, 빈칸이 많은, 적도가 많은
주름진 종이 속에는 엷은 비늘이 숨어 있다
적도를 벗어난 열대어의 서글픈 눈망울이 끔뻑인다
온통 경력자들만의 구인광고 박스, 열대성 기후 속에서
적도는 옆구리 뜨거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구의 허리춤을 적도가 점점 조이고, 조여 오면
이거 벨트에 구멍을 하나 더 뚫어야 하나?
난간에 서서 입안에서 우물거리던 수박씨를 뱉는다
내가 맞히지 못한 뒤통수들은 달동네에 엉킨 오르막길을
왜 이렇게 가뿐히 풀어내는가? 수박씨 속에도 적도가
있다던데 그곳은 영영 바람 한 점 없단 말인가?
이천 원짜리 금간 수박에서, 무너진 신발장
경첩과 경첩 사이에서, 경력과 초보사이에서 도려낸 적도,
언제나 남은 절반은 절반을 닮아간다
바지랑대를 세워 하늘을 갈라본 적도,
구름을 베어본 적도, 적도 부근에 가본 적도 없지만
바람 잘 날만 있는 이곳은 언제나 바싹 말라가는 무풍지대,
[심사평]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 녹아들어
누군가 혼신을 드러낸 작품에 대하여, 타인이 전혀 다른 주관적 잣대로 평가하는 일은 조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작품을 읽기 전에 작품 속의 사람을 읽어야 하며, 그가 겪은 체험의 변용을 진지하게 탐색해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이러한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그 책임을 가능한 한 무겁게 지기 위해, 그리하여 그 결과를 즐겁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종심은 '안정적인 작품을 가려낼 것인가, 불안정한 작품을 한 번 믿어볼 것인가'라는 두 가지 화두의 팽팽한 갈등 속에 이뤄졌다.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고른 작품은 조율의 '적도'이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불안정한 작품'의 경우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중 가장 불안정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산뜻한 교차와 조화, 그 속에 투영된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가 시의 불안정함을 상쇄해 주었다.
불필요한 사족, 남발되는 의문사는 물론, 행구분도 그리 전략적이거나 타당성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눅눅한 근로계약서와 달동네를 읽어내는 그의 '옥탑방 평상의 꿈'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의 시는 가볍다. 그러나 단지 가볍지만은 않다. 차별화된 가벼움을 그의 장점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규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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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탑 / 최길하
탑은 탑보다
탑 그림자가 더 좋다
그림자도 그냥 그림자가 아니라
물고기떼 집이 돼주는 물 속 그림자가 더 좋다
물 속 그림자도
뭉게구름 몇 장 데리고 노는
늙으신 탑이 더 좋다
아침마다 마당을 쓸어놓고
등불같은 까치밥 쳐다보는
우리 종손같은 탑이 더 좋다
[심사평] “번잡 벗어도 ‘결핍’은 없었다”
‘탑’은 번잡을 다 벗어나 있다. 그렇다고 결핍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단호하고 단정하다. 참 경지가 엿보인다. 다만 이것과 다른 작품의 수준에 차이가 나서 이것이 의외적이다. ‘노도서신’은 서포 김만중을 통한 강개가 절절한 궁중언사가 묘미를 더한다. 유장하다. ‘둠벙에게 물어봐’는 고향에서의 유년체험이 성숙한 의식에 대해서 근본에의 환원을 일깨운다. 시다운 시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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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오늘의 의상 / 정지우
성당의 느티나무 그늘이 무더위에 끌리고 있다
팔랑거리는 양떼들을 데리고
계절 속으로 입성하려면 가벼운 체위는 가리고 고딕의 시대를 지나야 한다
폭염은 언덕에 한낮으로 누워 있다
구름의 미사포를 쓰고 그늘을 숙이던 오후는 초록의 전례를 들려주더니
밀빵을 혀에 얹고 한동안 입들이 닫혀 있을 것이다
종탑에는 귀머거리 새가
종소리를 둥지로 삼아 살고 있다
회색을 입고 묵상에 잠긴 성전엔 돌기둥을 돌던 저녁의 의복이 걸쳐져 있다
미사의 요일엔 검은 머리카락을 버리고 히브리어를 닮은 숟가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의 드레스코드는 디저트가 없는
주일 맛 나는 테이블
중세의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창문
귀가 잘려진 무늬에선
단풍잎 맛이 나는 오래된 말들이 달그락거린다
촛대처럼 나무가 자꾸 떨어뜨리는 중얼거림들
대신 읊고 가는 가을 울음소리가 스르르 바닥에 끌린다
계단이나 혹은 의자로 배치되어 있는 한 철을
나는 양치기 소년으로 지나고 있다
[심사평] 풍성한 비유로 우리 시대의 삶에 화두 제시
결국 당선작으로 결정된 ‘오늘의 의상’은 풍성한 비유를 통해 오늘 우리 시대의 삶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특정한 모임에 예의상 입고 가는 의상을 일컬어 ‘드레스 코드’라고 할 때 오늘 우리의 삶에도 특정한 의상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사랑의 의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신뢰가 갔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종교적 은유성을 지니고 있으나 결코 종교성에 함락돼 있지 않다는 점이 또한 큰 장점이었다. 함께 투고한 ‘향신료 상인’이나 ‘발소리를 포장하는 법’ 등도 시인으로서의 앞날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앞으로 한국시단의 발전을 위해 자기만의 개성이 두드러진 시를 쓰는 시인으로 성장해주길 바란다./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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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쇼펜하우어 필경사 / 김지명
안개 낀 풍경이 나를 점령 한다
가능한 이성을 다해 착해지려한다
배수진을 친 곳에 야생 골짜기라고 쓴다
가시덤불 속에 붉은 볕이 흩어져 있다
산양이 혀를 거두어 절벽을 오른다
숨을 모은 안개가 물방울 탄환을 쏜다
적막을 디딘 새들만이 소음을 경청한다
저녁 숲이 방언을 흘려보낸다
무릎 꿇은 개가 마른 뼈를 깨물어댄다
절벽 한 쪽이 절개되고
창자 같은 도랑이 넓어진다
사마귀 날개가 짙어진다
산봉우리 몇 개가 북쪽으로 옮겨간다
초록에서 트림 냄새가 난다
밤마다 낮은 거래 되고
낮이 초록을 흥정하는 동안
멀리 안광이 흔들린다
흘레붙은 개가 신음을 흘린다
당신이 자서전에서 외출하고 있다
◇ 약력 ; 1960년 서울 출생 /논리논술 강사
[심사평] 해마다 시 쓰기 열정 많아 향후 발전 가능성에 무게
고심 끝에 ‘당선작 없음’까지 고려되었으나, 해마다 시 쓰기의 열정을 불태운 투고자들의 고뇌와 절망을 감안하여 향후의 발전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쇼펜하우어 필경사’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쇼펜하우어 필경사’ 역시 수사적 완성도의 미흡함을 드러내고 있으나 앞으로 각고의 정진을 통해 문체를 획득하게 된다면, 오히려 이런 약점을 자신만의 시학을 구축하는 장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특유의 힘 있는 시적 언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심사위원 본심: 엄원태`조용미(시인), 예심: 안상학`김이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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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네팔상회 / 정와연
분절된 말들이 이 골목의 모국어다
춥고 높은 발음들이 산을 내려온 듯 어눌하고
까무잡잡하게 탄 말들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는 골목을 만들고
늙은 소처럼 어슬렁거리는 휴일이 있다
먼 곳의 일을 동경했을까
가끔은 무명지 잘린 송금이 있었다
창문 없는 공장의 몇 달이 고지대의 공기로 가득 찬다
마음이 어둑해지면 찾는 네팔상회
기웃거리는 한국어는 이국의 말 같다
달밧과 향신료가 듬뿍 배인 커리와 아짜르
손에도 엄격한 계급이 있어 왼손은 얼씬도 못하는 밥상
그러나 흐르는 물속을 따라가 보면
다가가서 슬쩍 씻겨주는 손
그쪽에는 설산을 돌아 나온 강의 기류가 있다
날개를 달고 긴 숫자들이 고산을 넘어간다
몇 개의 봉우리가 창문을 두드린다
질긴 노동이 차가운 맨손에서 목장갑으로 낡아갔다
세상에는 분명 돌아가는 날짜가 있다는 것에 경배,
히말라야줄기를 잡아끄는 골목의 밤은
왁자지껄 하거나 까무잡잡하다
네팔 말을 몰라 그냥 네팔상회라 부르는 곳
알고 보면 그 집 주인은 네팔 사람이 아니다
돌아갈 날짜가 간절한 사람들은 함부로
부유하는 주소에서
주인으로 지내지 않는다
정와연(본명 정길례)/1947년 전남 화순 출생.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세상의 관절염 어루만지는 숙련된 직녀"
당선작으로 합의에 이른 '네팔상회'는 영리한 작품이다. 관계의 관절염을 앓는 시대를 인식하는 깊이와 언어를 직조하는 내공,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시작점을 찍는 노련함은 유려하게 흘러 과장되지 않게 세상의 관절염을 어루만지는 숙련된 직녀로서 심사위원들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었다. 그 영리함에는 안전을 보장해 주는 기존의 직조법을 거듭 재탐색할 것이라는 자세도 포함해 주기로 한다. / 심사위원 오탁번·강은교·조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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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이끼의 시간 / 김준현
우물 위로 귀 몇 개가 떠다닌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 느린 허공이 담겨 있다 나는
내 빈 얼굴을 바라본다 눈을 감거나
뜨거나, 닫아놓은 창이다
녹슨 현악기의 뼈를 꺾어 왔다 우물이 입을 벌리고
벽에는 수염이 거뭇하다 사춘기라면
젖은 눈으로
기타의 냄새 나는 구멍을 더듬는, 장마철이다
손가락 몇 개로 높아지는 빗소리를 누른다 저 먼 곳에서
핏줄이 서는 그의 목젖, 거친
수염을 민다
드러나는 싹이여, 자라지 마라
벌레들이 털 많은 다리로 밤에서
새벽까지 더듬어 오른다
나는 잠든 그의 뒷주머니에
시린 손을 숨긴다 부드럽고 가장 어두운
비닐봉지 안에 차가운 달걀 몇 개를 담아
바람에 밀려가는 주소를 찾는다
귀들이 다 가라앉은 물에도
소름이 돋는 중이다
[심사평] ‘따로 없는 詩 쓰는 법’ 모험에 박수를
미성년의 실존적 내면을 다룬 ‘이끼의 시간’은 우물, 검은 비밀봉지, 현악기(기타) 등으로 변주를 거듭하는 은유와 신경증적인 감각들로 이미지와 이미지, 의미와 의미 사이의 연결고리가 불안으로 술렁였다. 동봉한 작품들 또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불안은 그 무엇도 결정되지 않는 혼돈 속에서 돋아나는 새로운 가능성의 감각과 열기로 꽉 차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완숙한 포도주의 맛과 아직 미숙하긴 하되 미래를 잠재한 떫은 포도주의 맛 사이에서 장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따로 없는 법’을 찾아나선 자의 모험에 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심사위원 정끝별, 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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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히말라야시다 / 신은숙
나무는 그늘 속에 블랙홀을 숨기고 있지
수백 겹 나이테를 걸친 히말라야시다 한 그루
육중한 그늘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갉아먹고 있다
흰 눈 쌓인 히말라야 갈망이라도 하듯 거대한 화살표
세월 지날수록 짙어가는 초록은 시간을 삼킨 블랙홀의 아가리다
빨아들이는 건 순식간인지도 모르지, 그 속으로
구름다리 건너던 갈래머리 아이도 사라지고
수다 떨던 소녀들도 치마 주름 속으로 사라지고
유모차 끌던 아기엄마도 사라지고
반짝이던 날들의 만국기, 교장 선생님의 긴 훈화도 사라지고
삭은 거미줄 어스름 골목 지나올 때
아무리 걸어도 생은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지 못할 때
부싯돌 꺼내듯 히말라야시다 그 이름 나직이 불러본다
멀어도 가깝고 으스러져도 사라지지 않는 그늘이 바람 막는 병풍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해마다 굵어지고 짙어지는 저 아가리들
쿡쿡 찌르고 찌르면 외계서 온 모스부호처럼 떠돌다 가는 것들
멍든 하늘을 떠받들고 선 나무의 들숨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삼켜지지 않는 그늘 속엔 되새떼 무리들
그림자 하나씩 물고 석양 저편으로 날아오른다
[2013 세계일보] 심사평
신선한 상상력·미학적 논리 통해 세계 재해석
예심을 거쳐 올라온 스물여섯 분의 작품을 놓고 심사숙의한 끝에 두 심사위원은 이의 없이 신은숙의 ‘히말라야시다’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구조적 완결성과 언어적 진솔성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시인이 한 특별한 사물의 인식에서 촉발된 신선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의 미학적 논리를 통해 이 세계를 새롭게 재해석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이 세계란 하나의 큰 학교이며 삶은 그곳에서 이수해야 하는 일종의 학습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학습은 학교 운동장 한 켠에 말 없이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는 ‘히말라야시다’의 존재론적 의미와 같은 것이 되지 않고서는 일상성을 탈피할 수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 생의 진정한 완성이란 히말라야시다의 나뭇가지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되새 떼의 비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세영. 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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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말(馬) / 정와연
수선집 사내의 어깨에 말의 문신이 매어져 있다
길길이 날뛰던 방향 쪽으로 고삐를 묶어둔 듯
말 한 마리 매여 있다
팔뚝에 힘을 줄 때마다
아직도 말의 뒷발이 온 몸을 뛰어다닌다
고삐를 풀고 나갈 곳을 찾고 있다는 듯 연신 땀을 흘린다
저 날리는 갈기를, 콧김을, 이빨 드러내는
투레질을 굵은 팔뚝에 가둬두고 있다는 것을
저 사내 알기나 할까
어쩌면 질풍노도의 시절에 스스로 마구간을 짓고
지독한 결심으로 고삐를 매어두었을지도 모른다
말은 복종하는 발굽과 항거하는 발굽이 다르다
앞발을 굽힐 때 뒷발은 더 빡세게 버티는 법이다
어느 뒷골목의 시간들을 붙잡아
사내의 안쪽을 향하게 단단히 묶었으나
꿈틀거리는 역마살이란 언제까지 갇혀 있을 발굽이 아니다
비좁은 마방에서 수년 째 구두를 깁는 일이
자못 수상하기까지 하다
닳고 닳은 뒤축을 깁는 일과
말의 박차를 박는 일에 우연(偶然)이 있다면 그것은 다 길의 파본이다
발굽을 갈아 끼울 때마다 사내는
박차고 나가려는 팔뚝의 불뚝한 말을 오래 쓰다듬듯 주무른다
이제야 말 한 마리를 다룰 줄 안다는 듯
말과 주인이 따로 없다는 듯이
[심사평] “명쾌한 논리와 탁월한 언어감각 자신만의 ‘감각의 통점’ 짚어내”
.정와연씨의 ‘말’은 다소간 독보적이다. 게다가 명쾌한 논리성과 우월한 언어 감각에 기대고 있다. 당선작 ‘말’은 구두수선공의 어깨 문신에 주목한 작품이다.
문신 속의 말(馬)은 수선공의 내면과 수작하면서 수선공이라는 개별적 삶의 문어체를 획득한다. “닳고 닳은 뒤축을 깁는 일”과 “말의 박차를 박는 일에 우연이 있다”는 두 갈래 상상력을 길의 파본이라 파악하는 삶의 성찰성에 우리는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그의 다른 작품 ‘의태 계절’과 ‘샌들의 감정’에서도 독특한 감각이 드러난다. 그 두 작품은 ‘말’보다 더 풍요로운 문학 생태를 드러낸다.
신춘문예 당선이 일희일비가 아니라 행복한 감정이 되려면, 오랜 훗날에도 진정성을 유지하는 시인이어야 할 것이다./이하석,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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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2012
위풍당당 분필氏 / 정경희
강의실에 상주하는 분필씨는요
평소엔 친절함 속에 뿔을 감추고 있지만
앉기 거부하거나 행동지침을 어기면
밑줄 좍좍 그어가며 날 길들이려 하죠
동강동강 제 몸 관절 부러뜨리며
어김없이 날카로운 뿔을 꺼내 위협해 와요
나는 뿔이 무서워 의자에 몸 구겨 넣고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순한 양이 되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분필씨 생각대로 답하고
분필씨 습관대로 따라 행동하죠
가끔 경직되고 고루한 생각에
내 뿔 꺼내 맞서볼까 생각도 하지만요
그의 뿔은 워낙 완고해
내 같은 여린 뿔로는 감히 어림 없다나요?
그래서 나만의 대항 법을 터득했는데요
강의 내용 자장가 삼아
잠 계단에 비스듬히 앉아 있거나
창 밖 딴 세상 꿈꾸면서 그 뿔 숫제 무시해보죠
그러다가 뿔을 타고 밖으로 나가
강 건너고 구름 따라 달리기도 하고
발걸음 멈추고 비행기 접어 날리기도 해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뿔을 먼저 달아준 건 나인지도 모르겠어요
지적이고 당당한 그 뿔이 멋스러워
스스로 닮아가려 애쓰는 건지도
쉿, 분필씨 다시 뿔을 꺼내고 있어요 세상이 갑자기 긴장하네요
[심사평] 기성세대 권위 상징 '뿔' 기발해
시는 이것이다, 라는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있다는 점, 적절한 대화의 삽입으로 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점도 좋게 보았다. 그런 장점들이 이 사람이 응모한 시편에 지나치게 많이 구사되고 있는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선작으로 고른 '위풍당당 분필씨'는 기성세대의 권위를 '뿔'로 설정한 상징적 장치가 매우 기발하다.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자의 난감함을 이처럼 능숙하게 표현하는 일은 범상치 않다.
게다가 함께 응모한 시들이 모두 만만치 않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좋은 시를 당선작으로 뽑을 수 있어 즐거웠다. 부디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빛나는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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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그 여자, 마네킹 / 강봉덕
때론, 패션도 종교가 된다
묵언수행 하는 그 여자
침묵으로 한 종파를 완성시킨다
그 종파의 교리는 계절을 앞질러 가는 것
한 계절 똑같은 웃음이나 빛깔
표정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계절에 이르기 전
그 여자의 설법은 고요하고 은밀하다
이 거리에 들어온 사람들은 주술에 걸리듯
그 여자의 짝퉁이 되기 시작한다
포교는 항상 중심에서 변방으로 퍼진다
짧은 치마처럼 간단명료한 표정
미끈한 팔다리로 사람들을 전염시키며
파격적인 노출도 교리가 된다
패션이 변할 때 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표정을 만들며 순종적으로 바뀐다
경기불황이 몰려오면
그녀는 더 화려하고 빠르게 변신한다
사라진 추종자를 다시 불러들인다는 것은
침침한 눈으로 바늘귀에 실 꿰듯 힘겨운 일이지만
손바닥 뒤집듯 가벼울 수 있다는 듯
투명한 벽 앞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그 여자, 화려한 변신을 시작한다
나를 버린 사람들이 몰려든다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 할 때까지
[심사평] 세상을 대하는 폭이 넓고 진솔하여
마지막까지 손에 들린 작품은 ‘안녕, 살구’와 ‘그 여자, 마네킹’ 이었다. ‘안녕, 살구’외 3편을 낸 강봉덕의 작품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솜씨가 퍽 발랄하고 거침없었다. 조금만 더 숙련된다면 다음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하여 ‘그 여자, 마네킹’ 외 ‘짧은 휴식을 위한 변명’과 ‘홀쭉한 등’의 3작품을 낸 강봉덕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쾌히 뽑는다. / 송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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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검은 줄 / 김정경
파업이 길어지고 있었다
주머니엔 말린 꽃잎 같은 지폐 몇 장
만지작거릴수록 얇아졌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여니
방바닥에 검은 줄 하나 그어져 있다
특수고용자로 분류된 나는
노동조합이 철야 농성 중인 회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출입문 위에
붉은 글씨로 쓴 부적들 나부끼고
제 이름 외치며 뛰쳐나온 노란 팬지꽃
화단 위에 삐뚤빼뚤 구호를 받아 적었다
나무 기둥의 몸을 열고 나온 날개미들,
좁은 방에 검은 줄 늘려가고 있다
문 걸어 잠그고
쓰다 남은 살충제 쏟아 붓는다
혼자서 살겠다고
혼자만 살아보겠다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던 자기소개서
개미들이 따라가며 밑줄을 긋는다
고쳐 쓰다만 자기소개서 위의 검은 줄이 흩어진다
[심사평] "파업현장 현실 인식·시적 긴장감 돋보여"
.'검은 줄'은 '파업이 길어지고 있었다//주머니엔 말린 꽃잎 같은 지폐 몇장/만지작거릴수록 얇아졌다'로 시작되는 시의 첫머리처럼 우리 시대의 아픈 '파업 현장'을 다루고 있는 작품인데, 기왕의 사실주의 시들의 상투적인 표현을 벗어나 현실을 다루면서도 시적 주체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숙고 끝에 우리는 언어의 날카로움이 살아있는 '닭' 대신 오늘의 사회 현실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검은 줄'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에 합의했다. / 박성우, 유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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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손톱 깎는 날 / 김재현
우주는 뒷덜미만이 환하다, 기상청은 흐림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쏟아지는 빛 속에는
태양이 아닌, 몇 억 광년쯤 떨어진 곳의 소식도 있을 것이다
입가에 묻은 크림 자국처럼 구름은 흩어져 있다
기상청은 거짓, 오늘
나는 천 원짜리 손톱깎이 하나를 살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내 손톱은 단단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나의 바깥이었다
어릴 적부터 손톱에 관해선
그것을 잘라내는 법만을 배웠다
화초를 몸처럼 기르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지만
나는 손톱에 물을 주거나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일 따위에 대해선 상상할 수 없었다
결국 그것은 문제아거나 모범생이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과 같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모범이었으며 문제였을 뿐
그러므로 손톱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나 또한 그것의 바깥에 불과하다
오늘, 우주의 뒷덜미가 내내 환하다
당신은 매니큐어로 손톱을 덮으려 하고 나는 손톱을 깎는다
우리는 예의를 위해 버리고, 욕망을 위해 남기지만
동시에 손가락 위에 두껍게 자라는 것들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알 수 없다
다만 휴지 속으로 던져둔 손톱들과, 날씨
그리고 나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
버려진 손톱들은 언제나 희미하게 웃고 있다
[심사평] 삶의 구체성을 통한 사유 그것을 언어화하는 능력 돋보여
. 최근 한국시에서 자주 지적되는 산문화, 언어 낭비, 소통의 문제도 비교적 잘 극복해 가고 있었다.
삶의 구체성을 통한 사유, 그것을 언어화하는 능력과 밀도를 주목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 또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신뢰를 보탰다. 뱀처럼 섬뜩한 이미지의 ‘아야와스키의 시간’, 태어날 것들을 위해 스스로를 앓아 주렁주렁 매달린 ‘몰식자(沒食子)’에서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보았다. 하지만 미개척지를 향한 탐색과 언어 실험자로서의 패기가 지나쳐서 억지스러운 조어가 이물(異物)처럼 박혀 있는 것이 다소 눈에 거슬렸다. 시란 사물과 사유를 언어로 갈고 닦아 가장 명징하게 본질을 드러내는 생명체이다. 삶의 타성과 시류와 진부에로의 수압을 잘 견뎌내어 부디 좋은 시인으로 훨훨 날아오르기를 바란다. /시: 문정희 조정권(본심)/김수이 문태준 김민정(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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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가을문예2012.12
고양이눈 성운 / 나온 동희
우주의 등고점들이 연결되고
연결되어 퐁퐁다알리아 만발한
손바닥을 본다
손바닥을 바라보는 일은
단 하나의 슬픔을 응시 하는 것
TV속의 한 아이가 오디션의 심사평에
갓 구운 빵처럼 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의 왼손은 시리얼을 들추어 보다가
허풍스러운 그 중 하나를 놓치는 순간이다
어제 사랑스러운 루루가 죽었다
한 장의 종이에도 기록되지 않을 무성한 슬픔이 허공에 빛나고
오늘 아침엔 가판대에서
일회용 잡지를 집듯 간단히
그것을 잘라버렸다
그러므로 내일 아침부턴 슬픔이 없을 것이다
이것들의 근성은 처음부터 슬픔이 아니었을 것
문은 닫아야만 나타나는 낡은 방 내부의
야광들은 한때 나의 위로였으나
손가락 사이로 흘러
지금은 창문들이 별 몇 송이를 내어놓고 저녁이 되는 시간
내 손바닥 중심에는
다알리아 붉은 색을 밀어내면서
날 응시하는 루루가 살고 있다
* 고양이눈 성운 : 용자리에 있는 행성상 성운
[심사평]
.비점은 ‘고양이눈 성운’에 찍혔다. 이 작품은 ‘고양이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일상의 체험’이 ‘고양이눈 성운’- 3천광년 너머에서 사라지면서 마지막 짧은 광채를 내뿜고 있는 천체-이라는 ‘우주적 존재/사건’으로 연결된 작품이다.
응모작들 뿐 아니라 최근 우리 시들이 미세한 감각이나 관념, 익숙한 서정의 좁은 세계에 갇혀있는 현상을 상기할 때, 이처럼 스케일이 큰 상상력은 귀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또 평범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일상성의 중첩은 미묘한 정서의 울림 속에 시적 입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 심사위원: 이수명 이홍섭 전동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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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문학상2012.9(13회)
삼만 광년을 풋사과의 속도로 / 황은주
아삭, 창문을 여는 한 그루 사과나무 기척
사방四方이 없어 부푸는 둥근 것들은 동쪽부터 빨갛게 물들어간다
과수원 중천으로 핑그르르
누군가 붉은 전구를 돌려 끄고 있다
당분간은 철조망의 계절
어두워진 빨강, 눈 밖에 난 검은 여름이
여름 내내 흔들리다 간 곳에
흔들린 맛들이 떨어져 있다
집 한 채를 허무는 공사가 한창이고
유독 허공의 맛을 즐기는 것들의 입맛에는 어지러운 인이 박혀 있다
죽은 옹이는 사과의 말을 듣는 귀
지난가을 찢어진 가지가 있고 그건 방향의 편애
북향에도 쓸모없는 편애가 한창이다
비스듬한 접목의 자리
망종 무렵이 기울어져 있어 씨 뿌리는 철
서로 모르는 계절이 어슬렁거리는 과수원
바람을 가득 가두어놓고 있는 철조망
사과는 지금 황경 75도
윗목이 따뜻해졌는지 기울어진 사과나무들
이 밤, 철모르는 그믐달은
풋사과처럼 삼만 광년을 달릴지도 모른다
◆ 황은주=1966년 강원도 홍천 출생, 상명대 불어교육과 졸업, 현재 수원 동부학원 강사
[심사평] 발랄한 상상력, 풋풋한 사유 오랜 시적 내공을 느꼈다
황은주씨의 시들은 시적 수련의 내공을 감지하기에 충분했다. ‘활’에서 ‘동지를 돌아온 달의 북쪽을 끝점으로 정했다’라는 힘찬 첫 구절은 이어지는 느른한 감상주의의 물타기로 인해 그 매혹이 반감되고 만다. 내심 당선작으로 꼽았던 ‘활’을 제치고 ‘삼만 광년을 풋사과의 속도로’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죽은 옹이는 사과의 말을 듣는 귀/ 지난가을 찢어진 가지가 있고 그건 방향의 편애/ 북향에도 쓸모없는 편애가 한창이다’ 같은 구절에서 그 수일함은 도드라진다. 미숙함이 없지 않고 오장육부를 뒤흔들 만한 놀라운 개성은 아니지만, 사유의 풋풋함과 상상력의 발랄함은 황씨의 미래 가능성에 신뢰를 갖게 한다. ......... ◆ 본심 심사위원=장석남·장석주(대표 집필 장석주) ◆ 예심 심사위원=권혁웅·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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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쏘가리, 호랑이 / 이정훈
나는 가끔 생각한다
범들이 강물 속에 살고 있는 거라고
범이 되고 싶었던 큰아버지는 얼룩얼룩한 가죽에 쇠촉 자국만 남아
집으로 돌아오진 못하고 병창[i] 아래 엎드려 있는 거라고
할애비는 밤마다 마당귀를 단단히 여몄다
아버지는 굴속 같은 고라댕이[ii]가 싫다고 산등강으로만 쏘다니다
생각나면 손가락만 하나씩 잘라먹고 날 뱉어냈다
우두둑, 소리에 앞 병창 귀퉁이가 와지끈 무너져 내렸고
손가락 세 개를 깨물어 먹고서야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밟고 다니던 병창 아래서 작살을 간다
바위너덜마다 사슴 떼가 몰려나와 청태를 뜯고
멧돼지, 곰이 덜걱덜걱 나뭇등걸 파헤치는 소리
내가 작살을 움켜쥐어 물속 산맥을 타넘으면
덩굴무늬 우수리 범이 가장 연한 물살을 꼬리에 말아 따라오고
내가 들판을 걸어가면
구름무늬 조선표범이 가장 깊은 바람을 부레에 감춰 끝없이 달려가고
수염이 났었을라나 큰아버지는,
덤불에서 장과를 주워먹고 동굴 속 낙엽잠이 들 때마다
내 송곳니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짐승이 피를 몸에 바를 때마다
나는 하루하루 집을 잊고 아버지를 잊었다
벼락에 부러진 거대한 사스레나무 아래
저 물 밖 인간의 나라를 파묻어 버렸을 때
별과 별 사이 가득한 이끼가 내 눈의 흰창을 지우고
등줄기 가득 가시가 돋아났다 심장이 둘로 갈려져,
아가미 양쪽에서, 퍼덕,
거,리,기,시,작,했,다
산과 산 사이
소沼와 여울, 여울과 沼가 끊일 듯 끊일 듯 흘러간다
좌향坐向 한번 틀지 않고 수 십 대를 버티는 일가붙이들
지붕과 지붕이 툭툭 불거진 저 산 줄기줄기
큰아버지가 살고 할애비가 살고
해 지는 병창 바위처마에 걸터앉으면
언제나 아버지의 없는 손가락, 나는
[i]'절벽'이란 뜻의 강원도 사투리
[ii] '골짜기'란 뜻의 강원도 사투리
[심사평] 독특한 개성의 탄생… 신화적 상상력의 눈부신 질주 보는 듯
'쏘가리, 호랑이'를 비롯해 이정훈의 작품은 요즘 우리 시단에서 보기 힘든 신화적 상상력의 눈부신 질주를 보여준다. 그 상상력은 강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산맥을 치달리는 호랑이로 치환시키는 마법을 가능케 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향토적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시는 마치 이 땅에 산업사회가 도래한 적이 없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언어의 구체성과 밀도를 획득하고 있다. / 황현산 평론가, 황지우 시인, 남진우 평론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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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춘문예 당선 시에 대한 흐름의 고찰
이상에서 읽어 본 신춘문예 당선 시 작품(26개 신문사 27편)의 면면을 살펴보면 시의 형식면에서는 산문시의 형식을 빌린 산문시가 4편으로 1990년 이후 역대 신춘문예 작품 중에서 가장 적은 편수를 기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모두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산문성에 기대어 쓴 시들이 행을 늘이며 시행도 길어지는 현상은 더욱 짙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일이지만 우리 현대시의 흐름 중 두드러진 형식적 특징은 시의 행이 장문화하면서 종전의 운율적 리듬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운율의 한 형태인 3.3조라든지 3.4 또는 3.5조와 같은 운율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 운율들이 장문화된 산문적 음보율 속으로 스며들어 간 것처럼 보이는 형식으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요즘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종전에도 그런 형식을 빌려 시를 쓰는 소수의 시인들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러한 경향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당선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나타난 변화의 요점을 간추려 보기로 한다.
1) 현실참여에 대한 소극적 자세
2000년대 초반에 성행하던 난해한 개별적 시적 실험은 주춤한 상태에 들어가 그 편편이 강한 서정성을 추구하고 있고, 현실 참여적인 시 경향---응모작품 전반에 대한 평가는 아니므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지 몰라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는 적었다.
다만, ”주머니엔 말린 꽃잎 같은 지폐 몇 장/만지작거릴수록 얇아졌다/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노동조합이 철야 농성 중인 회사 안으로/들어갈 수 없었다 출입문 위에/붉은 글씨로 쓴 부적들 나부끼고“와 같은 타자의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는 ‘파업 현장’을 묘사한 “검은 줄”(김정경/전북일보)과 “분절된 말들이 이 골목의 모국어다/춥고 높은 발음들이 산을 내려온 듯 어눌하고/까무잡잡하게 탄 말들”로 묘사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삶’을 묘사한 “네팔 상회”(정와연/부산일보)가 눈길을 끌었다.
2) 시적 실험 정신의 퇴조
시읽기에 공을 들여야 하고 그 이미지를 독자 스스로 조합하여야 하는 실험적 시에 가까운 환상성이 접목되어 이미지를 분화시키는 실험정신이 보이는 시로서는 “쏘가리, 호랑이”(이정훈/한국일보)가 유일하게 돌출되어 보였다.
비교적 해독하기 어려운 자기 담론적인 상징과 비유가 가득히 뒤엉켜 있는 “이끼의 시간”(김준현/서울신문)은 성장기의 미성년 젊은이의 욕망과 불안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읽히는 실존적 불안의 이미지로 채워져 혼돈을 일으켰다.
이제는 시인들 모두가 새로움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 만큼 우리 주변에는 너무 익숙한 이미지들이 난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무와 시인의 눈을 교차시키면서 새끼줄을 꼬듯 이미지를 비틀어 세상을 뒤집어 보는 시선을 내 비친 “구름사촌”(조규남/농민신문)에도 눈길이 멈추었다.
토속어로 생성되는 이미지를 구성한 “삼거리 점방”(김승필/광주일보)은 가게에 진열되었음직한 상품의 이름에 붙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절하게 배합하여 사라진 정다운 것들, 변방으로 밀린 것들에 대한 의미를 일깨우려는 의도를 내장시키고는 있으나 그 이미지들이 튀고 있을 뿐 종합적으로 모아지는 힘은 부족해 보였다. 다시 말하면 그 속에 내장된 정서적 중심의 힘이 약해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시적 실험이라고 볼 수 없을만큼 시의 새로운 해석을 위한 도전은 퇴조를 보인 것 같다는 인상이 짙다.
3) 유사한 이미지의 등장과 흉내 내기의 혐의점
다음으로는 왜 하필이면 신춘문예 작품 중에는 유독 유사한 이미지의 작품들이 당선작이 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인 눈길이다. 여기저기 신춘문예 제도를 이용하여 시 창작을 지도하고 있는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유사한 소재를 유통”시키고 그러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확산시켜 한국시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를 필자는 몇 년에 걸쳐 피력해 온 바 있으나 개선되지 않고 되풀이되어 왔다.)
그 예로 이번에는 지난 십수 년 동안 신춘문예에서 울궈먹은 낯익은 소재로 “구두”와 “구름”같은 소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구두”(강지혜/경제신춘문예)가 등장하고 있으나 이미 발표된 이미지들이 겹쳐지고 있을 뿐 새롭게 보이지 않는 이미지의 조합으로 그 한계를 보였다.
“구름”을 소재로 한시 역시 그러한 이미지들의 결합이나 이미지의 유통에 대한 혐의를 받을 수 있는 소재로 보인다.
이미 2007년에는 “구름에 대한 몇 가지 오해“(김륭/문화일보)가 당선된 적이 있고, 2009년에는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최정아/매일신문), 2010년에는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심명수/부산일보)와 ”구름의 화법“(하기정/영남일보) 두 편이 당선작이 된 적도 있을 만큼 이미 많이 다루어 온 낡은 소재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이나 시 창작 활동에서 ‘유통된 이미지의 결합’을 의심받을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 같다.
이번에도 유사한 소재를 다룬 시가 등장한 것이 있는데 몽골의 유목민 생활을 시화한 내용으로 2011년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김지혜/국제신문)에서 보이는 “바람”의 “게르”라는 이미지가 2013년에 다시 “떠도는 지붕”(장유정/경인일보)로 다시 살아나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 이미지 표절”의 혐의를 피해갈 수 있을까?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까? 그 이유는 당선작을 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의 경우처럼 물론 본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아닌 게 되어 버리는 한계가 있겠지만, 유사한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 표절”에 관한 시비는 오래전 동방문학에서 제시한 이시환 시인.평론가가 조선일보 당선작(2005)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김승해)는 시에 대한 표절 논란---서지월 시인의 “진달래 산천”을 표절한 것 이라는 주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고로 2011년 국제신문의 당선작품으로 몽골의 ‘게르’속 유목민의 삶을 시화한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김지혜)를 올려 둔다.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 김지혜 <국제신문>2011년
들판의 지표면이 자라는 철
유목의 봄, 민들레가 피었다
민들레의 다른 말은 유목
들판을 옮겨 다니다 툭, 터진 꽃씨는
허공을 떠돌다 바람 잠잠한 곳에 천막을 친다
아주 가벼운 것들의 이름이 뭉쳐있는 어느 대代
날아오르는 초록을 단단히 잡고 있는 한 채의 게르
꿈이 잠을 다독거린다.
떠도는 혈통들은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어느 종족의 소통 방식 같은 천막과 작은 구릉의 여우소리를 데려와 아이를 달래는 밤
끓는 수태차의 온기는 어느 후각을 대접하고 있다.
들판의 화로(火爐)다.
노란 한 철을 천천히 태워 흰 꽃대를 만들고 한 몸에서 몇 개의
계절을 섞을 수 있는 경지
지난 가을 날아간 불씨들이
들판 여기저기에서 살아나고 있다.
천막의 종족들은 가끔 빗줄기를 말려 국수를 말아 먹기도 한다.
바닥에 귀 기울이면 땅 속 깊숙이 모래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초원의 목마름이란 자기 소리를 감추는 속성이 있어 깊은 말굽 소리를 받아 낸 자리마다 바람이 귀를 접고 쉰다.
이른 가을 천막을 걷어 어느 허공의 들판으로 날아갈 봄.
4) 겹치기 응모 작품에 대한 문제점
신춘문예제도의 열린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 중 하나였겠지만 “네팔 상회”(부산일보)와 “말馬”(영남일보)이 작자가 정와연으로 발표되고 있는 것은 동일인이 두 곳에 당선되었다는 개연성이 높다.
그리고 “그 여자, 마네킹“(강봉덕/전북도민일보)이 당선작으로 당선되었는데, 이 경우 강봉덕 시인은 이미 2007년에 ”아내의 불면“(강봉덕/창조문학신문)으로 당선된 적이 있는 시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또 다시 다른 시를 가지고 투고 한 것이지만 ”전북도민일보“에 투고하여 당선 시인이 된 것은 아무래도 당선 신문에 대한 예의는 아닌성 싶다.
5) 표현 기교의 확산
과거에도 여러번 지적해 온 경향 중의 하나이지만, 2013년도 신춘문예 당선 시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언어의 실험에 있었다고 할 만큼 언어를 다루는 힘이 크게 돌출한 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이 시대를 관통하여온 “낯설게 하기”의 과제를 털어내기 위한 “익숙함을 탈피”하려는 언어의 성찬과도 같은 펼쳐짐이 보였다.
신춘문예 시 당선작품의 대부분이 그러한 언어적 성찬에 서로 다른 옷을 입고 등장한 패션.쇼fashion-show와도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자칫 언어의 재해석이나 깊은 아우라를 드러내는 일이기 보다 새로운 “낯선 언어”의 부림이나 “재기발랄한 기교”의 경쟁을 부추길 위험도 또한 함께 한다고 생각된다.
시어의 발랄함과 신선함에 경도되어 그 글줄에 매달린 시적 표현---심사위원들이 한 두 군데의 명징한 표현에 매료되어 시에 대한 전체의 구조나 맥락을 놓치게 되는 일---이 마치 전체인양 포장되는 시대가 되어서도 아니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현대시가 보다 더 넓고 깊은 시적 감동을 이끌고 많은 감상자들과 공유하는 교감의 장場으로 나와 감성적 조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를 어떻게 조절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성찰도 또한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개별적 언어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의 분화나 새로움으로 무장된 언어의 표현기교는 시적 감동에 이르는 길로 독자들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어야 할 기술(=기교)이지 시가 가지는 본래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모습들이 투영된 금년도의 신춘문예 작품들은 전년도에 비해 그 성취도가 다소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본다면 아직도 ‘시가 개인적인 고백의 양식이라고 생각하는 구태의연한 시들이 제외된 때문인지 애매모호한 이미지를 구사하던 시들’(무등일보)이 거의 사라졌고, 대신에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시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우리 시단이 소통 부재의 언어유희나 정신분열적 사유의 독백 같은 시들로 오염되고 있으나, 신춘문예작품이 요즘 시가 지향해야 될 이상을 소중하게 지키고 신선하게 형상화하려고 하는 상상력에 대한 믿음, 언어적 소통에 대한 가치 부여, 미학성과 철학성의 적절한 조화 등에 눈길을 주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새롭게 찾은 사물의 성질, 감각의 명증성, 모국어를 최적화할 수 있는 약동(躍動), ‘진탕만탕 생명력의 잔치’(보들레르) 들이 잘 어우러져야 야무진 시‘(중앙문예)라는 지적처럼 반복적으로 진술된 것은 더 이상 새로움을 창조하지 않는다. 이미 상식으로 굳어진 사물에 대한 시선과 상실해버린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삶과 사물에 대한 놀라움과 새로운 눈뜸을 끌어올 수 있을까.
이번에 등장한 당선 작품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서정성에 충실하였으나 새로운 모험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작품들, 그리고 과잉된 일탈로 수사적인 산문투의 시들과 조립은 잘 되었으나 맥이 빠져 시적 울림에 실패한 작품들’(국제신문) 또한 신춘문예작품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암묵적인 기준이 적용된 것 같았다.
일부의 당선작품 중에는 아직도 문장의 문법이 적합하지 않은 설익은 문장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전에 비해 그러한 어법적인 오류는 상당히 개선되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수년째 언급하여 온 심사위원들의 다양화, 또는 오랜 세월 동안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여온 붙박이 심사위원들의 장기 독식 문제 등은 일부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고는 있으나 그 면면은 아직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 시단이 몇 사람들의 개인적인 편협한 시적 형상의 틀에 갇히는 일은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어느 한 기관에서 총괄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므로 ‘신춘문예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각 신문사가 각성하여 결정할 문제이지만, 그러한 의견들이 폭 넓게 개진되어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보다 참신하고 넓은 시의 세계를 열어가게 되기를 기대하여 본다.
몇 년째 서정주의로의 회귀와 강한 서정성의 회복이 내용과 형식적인 면에서 종전과 동일한 서정성을 보인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변화된 서정성이 중심으로 흘러들어와 새로운 기풍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측면이 강하다. 그런 속에서도 아쉽지만 그 속에 침윤되는 실험적 창작 활동도 좀 더 깊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 시대에 신춘문예 작품을 읽어 보는 것은 그들의 시적 성취가 뛰어나고 우수하다는 점을 보고 흉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이러한 문학적 제도 속에서 월간지나 계간지, 또는 그와 유사한 문학적 위상을 가진 문학작품 발표 공간에 그들의 성취가 주는 영향과 시를 창작하는 시인들이 앞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어떻게 구축해 나가는 것이 좋을지를 견주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문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왕에 존재하는 모든 형식 속에서 시인들이 지향해야할 접점을 찾아내고,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해 가면서 문학작품을 향수하는 독자들과의 교감과 사회전반을 지배하는 가치에 대한 반성, 그리고 그에 대한 광정匡定 의식이 발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 사회가 더 밝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며, 그 길로 나아가는 길에서 시에 축적되어 넘치는 정서들이 사회를 정화시키고 서로 상생하는 길을 찾아내면서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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