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정치의 이혼" 사회학자 바우만의 통찰
[오마이뉴스 글:안희경, 편집:김준수]
지난 9일(현지 시간)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무릎이 꺾였다. 나는 그의 제자도 사회학자도 아닌, 그저 한 명의 독자로 그의 책을 탐독했을 뿐이지만, 인터뷰를 위해 마주했던 두 번의 만남이 너무도 진했기에 복받침이 일었다.
▲ 지그문트 바우만 |
ⓒ 안선영 |
바우만의 언어는 마른 호흡과 담배 연기에 거미 같은 손짓이 더해져 순식간에 봉분을 이루다 언덕으로 그리고 산이 되어 일어났다. 파이프 담배를 빨아 뱃속 바닥까지 훑고 나서 토해내는 그의 언어는 단어와 단어 사이 침묵까지 글이 되어 세상 속에 작동하는 힘을 볼 깊은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가 문명을 구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파국의 기운이 증가하고 있다는 암묵적인 인정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위협 말이죠. 지금 이 문명이 엄청나게 위태롭다는 전제. 하지만 저는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는 현실이니까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바로 '인터레그넘(interregnum, 최고지도자 부재기간)'입니다. 궐위의 시간!"
3년 전 그의 해석은 오늘 우리의 모습도 비춰낸다. 광화문 광장을 거니는 발걸음들이 품는, 이 열망이 만들 변화에 대한 불안 역시 거대한 궐위 속에 존재하는 시대의 불안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21세기 오늘의 시간에 활동하는 옛 방식은 매우 빨리 노화되어 더 이상 적절하게 작동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활동 방식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불안은 안개처럼 개인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고 했다. 어디서부터 달려왔는지는 알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하는 시간 말이다. 그는 이 불안의 배경을 지난 반세기 동안 진행되어온 자본의 세계화에서 실타래 끄트머리를 잡아당겼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유발되었는데, 해결은 개인이 알아서 자구책을 찾도록 기대받고 있는 세상, 사회가 생산한 질곡을 개인이 책임지는 시대입니다."
도시와 농촌의 온갖 문제는 보이지 않는 저편 힘의 중심에서 뻗어 나오는데, 답은 개인이 알아서 헤쳐나가야 하는 현실이다. 결국 우리는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라는 읊조림과 다그침으로 스스로를 몰아갈 수밖에 없는 허덕거림 속으로 밀려든다.
바우만은 '권력과 정치의 이혼'이 개인을 무기력하게 한다고 지적했고, '이를 해결하자'는 과제를 던져주었다. 그에게 물었다. 대체 권력은 무엇이냐고.
"권력은 일이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힘이 있다면 욕망하는 대로 만들 수 있죠. 만약에 힘이 있다면요."
그에게 다시 '정치'란 무엇인지 물었다.
"정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능력이죠. 40~50년 전만 해도 국가적 차원에서 정치와 권력은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인터레그넘이라 부르는 요즘은 권력이 지구 전체로 작동합니다.
금융, 무역이 세계화됐고, 거기에 무기 교역과 테러리즘까지도 세계화됐습니다. 모든 종류의 권력이 국가가 조절하는 영역 밖에 거주하게 된 거죠. 세계화된 권력은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어느 지역에서 원하는 대로 명령할 수 없게 된다면 그 권력은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겁니다. 그럼 자본도 떠나고 일자리도 사라지고, 산업도 폐허가 되겠죠. 국경 너머에서 뻗어오는 권력, 정치는 이 권력과 이혼한 상태입니다."
"오늘날의 불행,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을 투항하는 데서 온다"
우리는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힘이 어떻게 작동될지 모호한 불확실성 속에 있다. 오늘 한국의 사태를 예견할 수 있었다면, 과연 51%의 개인은 '그때 그 선택'을 했을까. 바우만은 지금 무엇이 일어나는지 우리가 알거나 적어도 이론이라도 알 수 있다면 변화를 독려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매우 불쾌한 상태라고.
이런 불확실성 속에 있기에 우리는 안전을 바란다. 가난한 다수가 부와 권력을 거머쥔 소수에게 자신의 한 표마저 내주는 것 또한 안전이 위태롭기 때문이지 않을까. 바우만은 안전과 자유가 지배하는 오랜 인간의 삶을 꺼내 들며, 우리 각자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했다.
"인류는 항상 같은 문제로 아파합니다. 하나는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안전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필요한데 결코 자유와 충분한 안전은 함께 주어지지 않죠. 150년 전 우리는 지역 공동체 속에서 살다 갔습니다. 지금의 페이스북처럼 자유로운 네트워크와 달리 매우 주의 깊은 관찰을 받아야 하고 구속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안전했죠.
네트워크는 다릅니다. 하나는 접속이고 다른 하나는 단절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죠. 하지만 안전은 없습니다. 우리는 늘 뭔가를 얻으면 뭔가를 잃어왔어요. 안전과 자유 사이에는 갈등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불행은 사람들이 무제한의 자유를 구하고 싶어서 자신들이 가진 엄청난 안전을 투항시키는 데서 오고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 속에서 자본은 자유로운 이동이 만들 풍요를 선전하며 규제 해체를 감행해 왔다. 결국 우리들 현실 속 안전장치들이 풀어지고 만 것이다. 거대한 권력과 정치의 세계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터 속, 생활 속에서도 자유와 안전은 매 순간 파급을 저울질해봐야 하는 가치일 것이다. 조직 속 안전에 기대어 개인의 이성과 존엄을 일으키지 않았기에 처참히 무너진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도 그중 하나일 것이며, 투자라는 기대 속에서 던져지는 개인의 욕망 또한 투항된 안전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두 번에 걸친 바우만과의 대화는 그 몰입의 깊이가 여느 지성과의 대담보다 깊었다. 단 한 순간도 그의 형형한 눈빛엔 사그라짐도 흔들림도 일지 않았다. 그렁한 그의 숨결에 담겨 나오는 단어들은 격정을 누른 엄정한 선택으로 밀도감이 높았다. 한평생을 살아오며 느낀 소회를 전하면서도 감정은 일렁이지 않았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라던 바우만
"인생의 조건은 고질적으로 양면적입니다. 인생의 만년에 와서야 도달한 결론이 있는데,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그것은 똑바로 뻗은 직선이 아니었습니다. 젊어서 상상할 때 진보란 얽히고설킨 장애 없이 똑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행진이라고 여겼습니다. 구부러진 비틀림 없이 말이죠. 그러나 실제 진보는 추의 운동 같습니다."
바우만은 역사의 진행은 '추의 운동'이라고 했다. 앞으로 나아간 만큼 그 반동의 힘을 받아 뒤로 밀렸다 다시 추동하여 나아가는 진자의 운동 말이다. 3년 전 그의 말은 오늘도 나의 머릿속에서 맴맴 돌고 있다. 그 반복의 관성을 바꿔내는 힘은 무엇일까? 영원히 밀고 밀리는 지난한 과정… 아직 풀지 못한 그의 상징이지만, 다만 진자는 방향을 서서히 바꾸며 회전하기에 인류는 평화의 트랙을 놓아가며 발전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희망을 키워본다.
무언가 선명한 길을 제시해주길 갈망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바우만 선생은 대담이 끝나고 방을 나오는 나를 문간에 세워두고 한마디 더 기운을 모아 전했다. 지면을 통해 함께할 수많은 열망에 대한 사랑이었고, 혹여 자신의 말에 걸려 스스로의 생각으로 나아가지 못할 어리석음에 대한 염려였을 것이다.
"우리는 권력과 정치를 재혼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행동으로 다시 심어내고 재생하고 뒤바꿔내는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못난 이데올로기를 대치하는 아름다운 이데올로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월가를 점령하라), 아랍의 봄 등 사람들은 이미 시작하고 있어요. 기존의 정치 정당들이 하는 일에 환멸을 느끼며,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실험이죠. 나는 기존 방식에서는 대안적 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믿습니다. 사람들은 계속 찾아 나설 것이고, 그 답은 세상에 나올 거라고요.
나는 당신 세대가 그 길을 이루도록 모든 행운을 전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대안은 어딘가에서 당신이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창조해야 합니다. 기회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거니까요. 나는 그저 사회학자일 뿐입니다. 어떻게 살라고 조언해주는 카운셀러가 아니에요. 우리의 삶에 어떤 선택 상황이 놓여 있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88세 바우만이 들려준 해석들, 그리고 89세 바우만이 내게 보여준 사랑을 통한 삶의 공식들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있을 것이다. 비록 91세로 사회학자 바우만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비춰낸 세상의 흐름은 선한 의지를 이어가려는 이들의 선택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나리라 믿는다.
감히 지그문트 바우만을 추모하는 글을 쓰기에는 부족한 필자이지만, 그가 내어준 귀한 시간과 마음에 대해 무엇으로라도 가시는 길 정성을 전하고파 쓰게 됐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뒷모습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집필을 이어가던 성성한 학자로 내게 남아있다.
지그문트 바우만 |
지그문트 바우만(Zigmunt Bauman, 1925~2017년)은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 명예 교수이다.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 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1954년부터 바르샤바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1968년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 당시 국적을 박탈당하여 조국 폴란드를 떠났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가르치다 시온주의의 공격성과 팔레스타인의 참상에 절망을 느낀 그는 영국으로 이주해 1971년부터 은퇴 전까지 리즈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1992년에 사회학 및 사회과학 부문에서 유럽 아말피상을, 1998년 아도르노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유럽의 지성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스투리아스상을 수상했다. 1989년 <근대성과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The Holocaust)>를 출간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포스트모더니티와 소비사회 관련 책들을 꾸준히 발표 했다. 2000년대에는 현대사회의 '유동성(액체성)'과 인간의 조건을 분석하는 '리퀴드 모더니티(Liquid Modernity, 유동하는 근대)'시리즈 <리퀴드 모더니티(Liquid Modernity)>(2000), <리퀴드 러브(Liquid Love)>(2003),<리퀴드 라이프(Liquid Life)>(2005), <리퀴드 피어(Liquid Fear)> (2006), <리퀴드 타임스(Liquid Times)>(2007)로 대중으로부터도 폭넓은 주목을 받았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안희경 시민기자는 재미 저널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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