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영어로 읽은 독자들이 어리둥절한 이유는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지난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한 이후 데버러 스미스의 영어 번역에 대한 지적은 수차례 제기됐다. 한국어의 주어생략을 엉뚱하게 옮기거나 아예 빼먹은 부분이 여럿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미스 번역의 문제들은 대체로 번역가의 재량과 선택의 영역으로 간주됐다. 스미스가 사실상 새로운 작품을 썼다는 평도 나왔지만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 차원에서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영어권 독자들에게 잘 읽히면 좋은 것 아니냐는 취지다.
김번 한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최근 스미스가 "원작은 물론 영어권 독자도 배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학술지 영미문학연구에 실은 논문 ''채식주의자'와 The Vegetarian: 원작과 번역의 경계'에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인터넷서점 아마존의 후기에서 독자의 43%가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내가 뭔가를 놓친 것인가 아니면 저자가 책임을 방기한 것인가', '인물 중에 누군가가 구원의 길을 찾았는지 잘 모르겠다', '이야기가 중간을 지나면서 스스로의 두서없는 흐름에 갇혀버린 것 같다' 등 실망스럽다는 평이 나왔다.
김 교수는 스미스가 네 명의 주요 인물, 즉 영혜 부부와 인혜 부부 사이의 역학관계를 잘못 파악했다고 지적한다. 두 부부의 엇갈리는 욕망과 갈등이 소설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만큼 소설 전체의 이해도를 가늠할 수 있는 문제다.
스미스는 영혜 남편이 부인을 간호하는 처형 인혜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인혜를 처남으로 착각한다. 영어판 독자로서는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처형에 대한 제부의 은밀한 욕망을 알 길이 없다. 비디오아티스트인 영혜의 형부가 촬영하는 장면에선 형부가 전 남편으로 둔갑한다. 앞서 아내를 떠났던 남편이 아무런 설명 없이 돌아온 것이다.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지는" 영혜에 대한 형부의 경이로움은 사라지고 만다고 김 교수는 꼬집었다.
김 교수는 "역자의 오역이 일정한 편향성을 띤다"면서 인혜의 남편, 즉 영혜의 형부를 역자가 부정적으로 그린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스미스는 형부와 영혜의 비디오 작업에서 '그로테스크한'이라는 표현을 'obscene'(외설적인)으로 옮겼다. 작가는 맞춤한 한국어 낱말을 찾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문학·예술에서 특정한 양식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전문용어를 택했을 텐데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굳이 다른 단어를 쓴 것이다.
김 교수는 "'그로테스크'는 영혜가 자신의 몸을 통해 격렬하게 제기하고 형부가 가장과 예술가로서 자신의 파멸을 무릅쓰면서까지 추구하는 바를 가리키기 위해 저자가 숙고하여 선택한 낱말"이라며 "'그로테스크'를 '외설'로 바꾼 것은 영혜와 형부가 절망적 몸부림을 통해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해 준열하게 제기한 문제를 전면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인물들 관계를 왜곡하고 단순화한 폐해가 누적된 결과 마지막 3부에선 번역이 "파행적인 양상으로 귀결된다"고 김 교수는 주장한다. 스미스가 자의적으로 삭제한 부분은 1부에서 세 군데, 2부에서 열한 군데인데 3부에선 무려 서른세 군데로 늘어난다. 영어권 독자들의 불만이 중반부 이후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김 교수는 "자국화 전략을 운위하려면 원작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역자는 원작을 설보고 설익은 이해 아래 자국화의 길로 질주했다"며 "역자의 한국어 이해력이 이 번역을 감당하기에는 태부족이라는 점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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