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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신작, 내 마음의 낯섦

by 키미~ 2017. 11. 9.

이스탄불 빈민가의 고단한 삶과 사랑..오르한 파무크 신작


'내 마음의 낯섦' 출간..터키 현대사와 도시화 과정 생생히 그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고향을 떠나 돈을 벌어보겠다고 도시로 온 이주자들의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산비탈에 판잣집을 짓고 행상이나 막노동으로 아등바등 푼돈을 모아도 결국 빈민가 언저리를 맴돌 뿐이다. 그래도 삶이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무크의 신작 장편소설 '내 마음의 낯섦'(민음사)은 이런 도시 이주자, 빈민들의 삶을 터키의 현대사, 이스탄불의 도시화 역사와 함께 방대한 이야기로 풀어낸 역작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이름 높은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풍부하면서도 정교한 서사와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며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이야기 솜씨,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예리한 시선이 돋보인다.

소설은 이스탄불 거리에서 평생 보자(기장을 발효시켜 만든, 약한 알코올 성분의 터키 전통 음료)를 파는 남자 '메블루트'를 주인공으로 한다. 열두 살 소년 메블루트가 1968년 시골 고향을 떠나 이스탄불로 온 이래 40여 년간 그의 주변과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한 나라의 중심 도시가 거대하게 팽창하고 그 속에서 온갖 부조리가 판치며 갈등이 들끓는 모습은 우리 서울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해서 흥미롭다.

"그 당시 퀼테페처럼 둣테페에도 토지 등기부가 있는 땅이 없었다. 공터에 집을 짓는 사람들은 집 주위에 포플러 나무와 버드나무를 한두 그루 심고 경계를 긋는 벽의 첫 벽돌을 쌓은 후 이장에게 가 돈을 주고 자신들이 이 토지 위에 집을 짓고 나무들을 심었다고 적힌 종이를 받았다. (중략) 아나톨리아에서 일터도 없고 집도 없는 사람들이 매일 도시로 무리 지어 몰려오던 시기에 이장이 준 종이의 가격은 금세 뛰었다." (본문 79쪽)

방대한 서사 가운데서도 핵심 줄거리는 주인공의 인생을 관통하는 사랑 이야기다. 소설의 첫 장은 청년 메블루트가 첫눈에 반한 시골 소녀 '라이하'를 신부로 삼기 위해 부모 허락 없이 데리고 도망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둠 속에서 손을 잡고 트럭에 태운 소녀는 사랑에 빠진 미녀가 아니라 그의 언니다. 사촌 '쉴레이만'이 자신도 반한 미녀 '사미하'를 차지하기 위해 메블루트에게 사미하를 그녀의 언니 이름인 '라이하'로 잘못 알려주는 농간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첫눈에 반한 상대가 아니라 낯선 여자와 얼떨결에 결혼하게 된 메블루트가 불행해질 거라는 예상은 단번에 뒤집어진다. 그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함께하는 삶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역시 도시 빈민층인 그의 삶은 녹록지 않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이스탄불의 거리 수십 킬로를 걸어 다니며 요구르트와 보자를 팔러 다닌 이래 거의 평생 행상을 했다. 그러나 요구르트나 아이스크림 노점은 냉장고 대중화와 대기업의 유통망 확대로 금세 설 자리를 잃고, 병아리콩과 닭고기를 섞은 밥 노점은 구청의 단속으로 실패한다. 가장 오래 하는 것은 보자 장수인데, 그마저도 어느 날 강도의 습격으로 좌절된다.

보자를 파는 일은 이 소설에서 특별하게 그려진다. 술이 금지된 시절 만들어졌다는 보자는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는 현대에 와서는 낡은 시대의 유물이 됐지만, "보오오자아아" 하고 외치는 보자 장수의 구슬픈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시대 변화와 자본주의 심화로 나날이 변모하는 도시의 풍경은 메블루트에게 끊임없이 낯선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보자를 팔며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에게 영혼의 안식처가 된다.

소설은 거대 도시에서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따뜻한 온기를 잃지 않는다.

"메블루트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즐거웠다. 사람들은 행복하고 정직하고 열린 마음을 갖도록 창조된 존재들이다.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오렌지색 불빛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본문 634쪽)

이난아 옮김. 652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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