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권을 썼지만 필생의 역작은 아직.."
100번째 책 '태양은..' 낸 장석주 시인
매일 책 두권 작파하는 독서광
노장부터 멜빌·톨스토이까지
15인의 선각자 이야기 담아
출판사 대표로 승승장구하다
'즐거운 사라' 금서시비로 투옥
"존재의 쇄신이 '청년' 비결"
"사실 99번째인지, 101번째인지 정확하진 않아요. 고려원판 첫 시집 '햇빛 사냥'이 1979년이었으니…벌써 40년이 흘렀네요."
산문집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현암사 펴냄)를 출간한 그를 지난달 30일 서울 서교동 현암사에서 만났다. 스무 살에 등단했으나 세상에 처소가 없어 배고팠고, 1979년 신춘문예 시·평론 2관왕에 이어 청하출판사 대표로 승승장구하다 검경의 금서 시비로 투옥되는 굴곡진 행로에서 그가 끝내 붙들었던 선각자 15인의 이야기다. "암중모색 중인 세대에게 등대 같은 책이길 빈다"며 장 시인이 입을 열자 노장(老莊)부터 붓다, 카프카와 칼로, 허먼 멜빌과 톨스토이가 탁자를 둘러싸더니 한 권의 우주가 펼쳐졌다.
"난바다의 조각배 같은 삶을 비추던 등대들이죠. 노장은 백 번쯤 읽었어요. 파란 끝에 출판업을 접고 안성으로 내려가니 '막막한 시골에 팽개쳐졌다'는 절망감이 곧 분노로 돌변하더군요. 이대로면 내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덕경'부터 읽으며 적대감을 씻어냈습니다. 책이 제게는 탕약(湯藥)이었죠."
천재 시인 랭보는 불행과 비참의 교과서였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불가능을 꿈꾸던 리얼리스트, 소설 '모비딕'은 수치와 오욕의 페르소나였다. 절박함으로 쓴 문장은 삶을 치유하고 세상과 화해할 유전자를 독자에게 건넨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 몽상의 두 질문을 던졌다. 시공간을 초월해 만나고픈 현인은 누구인가. 던지고픈 질문은 무엇인가. 지체 없이 돌아온 답은 이랬다.
"한 명만 꼽아야 한다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꼽겠어요. 문명을 등지고 고독과 대면했으니까요. 소로에게 묻고 싶어요. 홀로 숲속에서 지내며 고독의 압박이 너무 커진 순간은 없었는지. 범인(凡人)의 지복을 거부한 삶이 아쉽거나 회한이 남지는 않았는지. 제가 제게 묻는 질문이군요."
100권의 책이 허무한 종이 쪼가리는 아닐지언정, 역설적으로 그가 평생을 통틀어 남기고픈 '단 한 권의 책'을 아직 쓰지 못했다는 방증은 아닐까. 역설의 삶을 꼬집어 도발해 봤다.
"네, 질문 많이 받아요. 대표작을 꼽아 달라고요. 그럴 때마다 대답하죠. 아직 쓰여지지 않은 '그 작품'이 대표작이라고요. 모든 책은 하나의 목적지로 가는 도정이고 '최후의 한 권'을 쓰려는 마음은 늘 있어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처럼 시, 서사, 철학을 단권으로 녹인 책이에요. 구체적인 형상은 그려지지 않아요. 제목이요? 내심 품은 제목은 '피안(彼岸)의 노래'입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안성의 거처 수졸재(守拙齋)에 3만권, 파주 집에 7000권을 쌓아둘 만큼 책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장 시인만의 독서법은 없을까. 그는 "기억으로부터의 자유"라고 답했다. "머리와 마음에 뭔가를 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는 장 시인은 "지루한 부분은 건너뛰며 리듬을 타라. 굳이 마음에 새기려 하지 않을 때 독서의 자유가 온다"고 털어놨다.
사실, 그는 아직 아물지 않은 어떤 아픔을 지나는 중이다. 고 마광수 교수가 1992년 음란문서 유포 혐의로 구속됐을 당시 '즐거운 사라'의 출판사 대표였던 그도 함께 수갑을 찼다. 생은 뒤엉켜버렸다. 25년이 지난 작년 9월, 카페에서 마 교수의 벼락같은 비보를 접했다. 아픈 기억을 꺼내기 꺼려져 '이제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시대인가'를 넌지시 묻자, 오랫동안 고개를 저었다.
"표현의 자유와 외설이 충돌하지 않는 시대는 오지 않았어요. 새로운 형태의 금기와 그걸 뚫으려는 지점은 지금도 있죠. 과거엔 이데올로기 문제였다면 지금 작가들은 전혀 다른 자기 검열을 펼칩니다. 상상력을 억압하는 건 지금이 소수자를 겨냥한 '분노의 시대'이기 때문이죠. 무의식적인 검열에서 도망쳐 자유를 지향하는 문학의 시대를 꿈꿉니다."
신체 나이론 중년을 한참 지났어도, 장 시인은 책으로 생명을 얻는다. 독자든 작가든, 청년은 언제 노년이 될까. 책의 미로에서 그는 답을 찾았을까.
"인간의 순진성과 약동하는 힘을 잃을 때, 무한히 심각해져 웃음마저 잃어버릴 때, 세계와 환경과의 투쟁에서 힘을 잃고 순응할 때 세속화의 세례를 받고 어른이 돼버립니다. 늙는다는 건 낡아가는 거죠. 존재의 쇄신과 약동의 길에서 낙오되지 않았으므로, 아직 전 젊지요. 머리 희끗한 청년, 그렇지 않나요?"
[김유태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장석주의 시와 산문, 학술서를 좋아한다.
건필하시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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