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글 무단인용' 신춘문예 당선작 표절인가 아닌가[오피니언] 문학표절에 대한 기준정립이 필요하다 |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인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를 두고 표절 논란이 일고 있다. 인기 과학 블로거 ‘고든’의 글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제목은 완전히 일치하며 내용도 30%가량이 원문을 차용했다. 출처를 밝히지 않고 별다른 가공 없이 그대로 활용한 것. 하지만 주최측은 이를 표절로 판단하지 않았다. 논란이 일자 심사위원들은 “문학 작품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인용한 창작품이다. 남의 글을 빌려와서 자기 글로 소화시킨 차운시(次韻詩) 같은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미진한 대신 참신성이나 발전 가능성은 더 높게 보였다. 심사위원들은 숙고의 과정을 거쳐 신춘문예 본래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참신성을 더 높이 평가하기로 하였다. 이 시는 질량이나 중력, 기체 등 자연과학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를 어색하지 않게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요약하면 경쟁작에 비해 시적 완성도는 아쉽지만 자연과학 용어를 잘 활용해서 참신하다는 게 되겠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당선자는 바로 그 대목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심사에서 강점으로 인정받은 대목이 자신의 오리지널이 아니란 소리. “눈에 띄는 발군의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 아래 최종심이 치러졌음을 감안할 때 에센스가 타인의 것임이 미리 공지됐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과학적 사실을 인용했다는 대목에도 따져볼 지점이 다분하다. 고든의 블로그를 둘러보면 과학적 사실을 교과서적, 기술적으로 설명한 콘텐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저런 과학 내용을 나름의 시선과 필치로 풀어낸 내용으로 가득하다. 분명 과학 콘텐츠인데 문학에 기대하는 지점이 은근히 배어 있다. 그의 블로그를 구독하는 2만5000여 명은 바로 여기에 매료된 것 아닐까? 당선자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해서 나는 당선자가 가져온 여러 문장을 과학적 사실의 단순한 기술로 보지 않는다. 그 안에 오리지널리티가 있기에 문제 삼을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만약 당선자가 그 내용을 녹이고 변주해서 자신의 문장으로 풀어내거나 사전에 출처를 밝혔다면 문제 될 게 없겠으나 그러지 않았다. 작품의 30%에 달하는 분량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당선자가 악의를 가지고 그런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표절, 인용 등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악의를 가지고 훔칠 때에는 티 나지 않게 교묘하게 고치고 비트는 게 보통이다. 한데 이번 건은 노골적일 정도로 순진했다. 인기 블로거의 글을 제목, 내용 모두 수정 없이 쓴 걸로 보아 숨길 의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는 용인된다고 판단한 모양. 그러나 2019년의 글, 콘텐츠 생태계에서 이는 표절로 분류될 측면이 다분하다. 표절에 대한 기준 없어, 버티면 그만 문학에서 표절은 뜨거우면서도 애매한 주제다. 누군가를 헐뜯으며 한바탕 화제를 끌기엔 좋으나 막상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기란 어렵다. 돌이켜보면 한창 떠들썩했던 표절 논란 대부분이 흐지부지 잊혔다. 우연의 일치라며 잡아떼거나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나 엄연히 내 창작물’이라는 태도로 버티면 그걸로 끝이다. 문학 속성상 표절 여부를 명확히 판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거 표절!’이라고 결론 내릴 주체도 없다. 서로 비방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업계 분위기도 한몫하며 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마저 크지 않다. 대중과 언론이 바라는 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주제일 뿐 건전한 문학 담론이 아니다. 그러니 그냥 버티면 된다. 그나마 신춘문예는 주최측이 명확한 경연이기에 사후에 표절을 적발해 당선을 취소한 전례가 몇 차례 있다. 2013년 광주일보 시 부문에선 기성 작가의 작품을 교묘하게 변주한 걸 사후에 적발해 취소한 바 있고, 2003년 동아일보 문학평론 부문에선 “전체적인 논지는 새롭지만 부분적으로 인용을 밝히지 않았다”는 사유로 취소했다. 전자는 의도를 가지고 훔친 것이고, 후자는 실수로 출처 명기를 누락한 것이다. 이번 논란은 아무래도 후자에 가깝다. 반면 등단해서 왕성히 활동하는 기성 작가의 경우는 어영부영 넘어간 때가 많다. 등단 과정은 프로가 지망생을 심사하는 구도가 되어 부담이 덜하지만 등단 이후는 아니다. 표절 여부를 논하기 위해선 프로끼리 날선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는데 다들 그를 꺼린다. 시간이 지나면 마치 없었던 일인 양 대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도리어 문제 제기하는 이를 유난한 부적응자 취급하기 일쑤. 그러다 보니 표절에 대한 기준 자체를 마련하지 못했다. 어떤 행위가 표절인지, 어디까지 용인되며 어디부터 문제시될 수 있는지, 타인의 콘텐츠를 모티브 삼거나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이번에 논란에 선 당선자가 문예창작과 재학생임을 감안하면 그에 대한 교육조차 부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상이 열심히 진보하며 이에 대한 기준을 점차 내면화하는 동안 문학은 발맞추지 못한 것이다. 문학 외엔 죄다 잡문? 아울러 언급하고 싶은 것은 문학 외의 다른 글을 ‘잡문’이라고 부르며 낮춰 보는 행태다. 당장 나부터 ‘이제 잡문 그만 쓰고 소설에 매진하라’는 말을 몇 차례나 들었다. 지난달엔 「문학의 몰락, 잡서의 득세」라는 제목의 기사까지 뜰 만큼 이런 심리는 문학계에 만연해 있다. 문학과 다른 글 사이에 위계를 두는 것이다. 오만한 태도다. 그동안 불거진 표절 논란을 살펴보면 블로그에서 아이디어나 모티브를 얻은 경우가 제법 된다. 고매한 문인이 보기엔 죄다 잡문일 수 있겠으나 실제론 동등한 지위를 갖는 글이다. 당연히 저작권도 법으로 인정된다. 이번에 당선자가 차용한 고든의 블로그 좌측 하단을 보면 '저작자 명시 필수, 영리적 사용 불가' 둘을 지키는 선에서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다고 공지돼 있다. 당선자는 둘을 모두 어긴 셈이다. 수많은 작가와 지망생이 이를 무시한다. 문학 작품을 베끼면 표절임을 알기에 주의하지만 다른 종류의 글을 참고할 때엔 그렇지 않다. 그나마 단행본, 신문 기사 등을 활용할 때에는 눈치껏 출처를 명기하지만 블로그, 게시판 포스트 등은 다르게 대할 때가 잦다. 그 또한 누군가가 공들여 쓴 저작물이고 법적 권리를 가짐에도 낮춰 보는 것이다. 잡문 취급하는 심리 때문인 듯한데 자성해야 할 대목이다.
문학도 시대를 반영하며 진보해야 정리하자. 이번 건을 두고 표절이냐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답하겠다. 응당 지켜야 할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의를 가지고 훔친 것이냐고 물으면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고 답하겠다. 나름의 오리지널리티가 있고 방법 또한 너무 순진했다. 하지만 그것이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경연에서는 무엇보다 공정성이 우선시돼야 마땅하다. 등단이 우리 문학 풍토에서 가지는 의미를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딱하다, 가능성 있다 등의 이유로 묵인하는 건 공정하지도 않고 그다지 문학적이지도 않다. 물론 이는 나 개인의 견해일 뿐이다. 정반대 시선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테고 당연히 존중한다. 하여 표절이라고 확언하지 않겠다. 그저 이것 하나만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문학 표절에 대한 기준을 정립해서 공유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그러지 않으면 이와 같은 논란이 계속 반복될 게 빤하다. 잠깐 시끄럽다가 흐지부지 넘어가는 꼴을 언제까지 더 봐야 하나? 혹자는 이야기한다. 문학, 특히 시에도 그런 기준을 엄격하게 들이대면 세상이 너무 팍팍해지지 않겠냐고. 동의하지 않는다. 문학 또한 우리 사회의 일부이기에 함께 준수해야 할 지점은 존중하고 지키는 게 옳다. 그래야 시대를 반영하며 발맞춰 진보할 수 있다. 현재로선 문학 홀로 시대에 뒤처져 고립됐다고 생각하는 게 비단 나뿐일까? 필자 홍형진은 작가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소설보다 다른 분야 글쓰기에 치중해왔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등에 칼럼을 연재했으며 한때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홍형진 contact@newstof.com |
결국 세계일보 2019년 신춘문예 시 부문은 당선이 취소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문제 제기도 있었지만 심사위원은 문제가 없다고 단정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끝날 문제가 아닌 것이 시를 보면 과연 표절인지 아닌지 시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저것이 표절이 아니면 과연 뭐가 표절이란 말인지..
시를 쓴 사람이 젊고 학생이고, 재능이 보인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용인하자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그 신문사에 투고하고 기다렸다 쓴 잔을 마신 수많은 투고자들은 쉽게 용서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전부 희망의 씨앗 하나를 품고 매진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남의 글을 도용하여 당선이 된다면, 또 그게 용인된다면 이제 정말 문학은 끝인 거다.
안그래도 기존의 시인들이나 소설가들의 암묵적인 표절행태도 구역질나는 판이다.
참신하다, 창의적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등등의 단어는 참 어려운 말인 동시에 참담한 고난의 길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문학인들 중 과연 누가 표절이란 단어에서 자유로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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