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
저녁이 되어 어둠이 찾아드니
바다는 더 한층 거세게 파도쳤다
바닷가에 앉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춤을 바라보며
내 가슴은 바다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때 그대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아름다운 모습, 그대의 모습은
내 주위에서 맴돌고 어디에서나 나를 부른다.
세찬 바람 속에서도,
거친 파도 속에서도,
내 가슴의 한숨 속에서도,
어디에서나...
어디에서나...
나는 가느다란 갈대를 꺾어 모래 위에 썼다.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지만 심술궂은 파도가
이 달콤한 고백 위를 덮쳐가며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약한 갈대여, 먼지처럼 흩어지는 모래여,
사라지는 파도여, 난 이제 너희를 믿지 않으리!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내 마음은 더욱 날뛴다.
이제, 나 저 노르웨이의 숲에서
가장 크고 푸른 전나무를 찾아
그 뿌리 채 뽑아
저 에트나의 불타오르는
새빨간 분화구에 담갔다가
그 불이 붙은 거대한 붓으로
나 저 어두운 하늘을 바탕 삼아 쓰겠노라.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이렇게 하면 저녁마다 하늘에는 영겁의 필적이 타올라
뒤에 오는 후손들은 모두 즐거운 소리를 지르며
하늘에 쓰인 말을 읽으리라.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이네가 거대한 붓을 담갔던 에트나의 화산이 폭발했다.
용암이 끓어오르는 에트나의 사진을 보니하이네가 고백한 사랑의 말이 과연 영원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거대한 붓으로 쓴 사랑의 말은 아직도 하늘에 있는지,나는 못 찾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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