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산책하는 치악산 상원사 올라가는 도로 옆에
굴뚝이 밖으로 참하게 나와 있는 이쁜 집이 하나 있다.
누가 사나 했더니 할머니 한 분이 사시더라.
그런데 이 할머니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털모자를 쓰시고,
옷은 분홍색 내복만 입고 내도록 일만 하시는지라,
어느 날은 집 뒤의 천평은 넘어 보이는 밭에 옥수수 홀로 심으시고,
어떤 날은 집 앞의 넓은 돌밭을 콩 심으시고,
내 볼 때마다 안쓰러워 인사라도 할라치면,
듣는 둥 마는 둥 귓둥으로 흘리시고,
식사는 하시고 일 하시냐고 물으면 한 숟가락 먹었다 그러시고.
저번 주에 산에 가는데 그 집 굴뚝에서 하루종일 연기가 나길래,
손님이 오셨구나 했지.
그러고 며칠 지나서 산책하면서 보니
자식으로 보이는 남정네 몇이서 상복을 입고 있네.
할머니 돌아가셨어요? 물으니 그렇다고 하고,
아니,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셨네. 물어도 옳게 대답을 안하더라구.
그런데 어제 성당가서 그 동네 사시는 마리아 할머니께 들으니
그 할머니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네..
내가 하도 놀라서 재차로 확인했어.
그 전날 자신이 입던 옷, 필요없는 물건 다 태우고,
그날 저녁에 약 드셨다고..
며칠전에 자식들이 연세도 많으시고 아프다고 병원 들락거리시고,
자식들은 시내에 있어 자주 들러지도 못하고 하니,
누가 모실건가로 회의가 있었대.
그 날 저녁에 무언가 결심을 하셨나 봐.
참 기가 찬다.
남은 자식들 심정도 괴롭겠지만 스스로 약 드시는 할머니 심정이 어떻겠냐??
그 마음을 생각하니 어제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어.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안 늙을 거 같은 착각을 하고 살지만
스무살 애들이 보면 우리는 이제 중년에도 못 끼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 불과한데,
늘 젊을 것 처럼 많은 욕심을 부리고 있다.
대단한 목표를 갖고 살아 가는 것도 좋고,
돈을 열심히 벌어서 자식들에게 남겨 주는 것도 좋지만,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인생,
뭐 그렇게 긴 거 아니다.
작년 사진이다. 올해나 작년이나 봄은 비슷한 모습으로 오네..
다들 잘 있어라.
치악산에서.
'중얼중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이 오는 치악산, 산책 가실래요? (0) | 2009.05.25 |
---|---|
아프리카 가젤이야기 (0) | 2009.03.19 |
공자 가라사대~ (0) | 2009.03.11 |
당신은 무례합니까? (0) | 2009.03.04 |
화원에서 산 꽃 (0) | 2009.02.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