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설 (大 雪)
김 정 희
눈이 옴팡지게 쏟아지는 날.
생솔 넣어 눈 매운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쪼글한 얼굴을 노골노골 녹이던 치매 걸린 동배 영감.
뾰족 구두 신고 나들이 가는 작은 마누라 보더니,
부지깽이 치켜들고 새 옷 입은 등짝을 후려갈기네.
펄펄 날던 젊은 날에 뒷방 신세 된 큰 마나님이
초년고생 함께 한 영감 불쌍해 기저귀 수발 하시던 차,
영감 죽기 전엔 한 푼도 못 준다고, 쫓아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알라고,
삿대질하며 악을 써댄 어제 일을 기억하는지,
동배 영감 눈초리가 꼬구장해지고, 사나운 입매로 달겨드시네.
감나무 꼭대기 하나 남은 얼은 홍시 쿡쿡대고 찔러보던 까마귀가
이쪽 말 저쪽 말 다 듣더니 온 동네에 소문내러 잽싸게 날아가고,
퍼질러 앉아 쥐어짜며 울어쌓는 작은 아낙 뽀글 파마한 머리위에,
속절없이 눈이 와서 마음이 배부른 날.
동배 영감 욕 들어 세 끼 안 먹어도 배부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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