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가리
김정희
먼 바다에서 돌아와 빈 땅의 숨결을 추녀 끝에 말리는 나의 아버지.
아침이면 끝나는 그가 사는 나라의 하루는,
반나절 접으면 해가 지고, 산 그림자가 끝나는 들판 저 끝에서 저녁이 온다.
높다란 지게에 햇빛을 짊어지고,
장작 빠개지는 결 따라 심장을 쿵쾅거리며 도끼질 하는 아버지,
그의 김 올라오는 어깨에 남은 오후가 잠이 들고,
아침만 있는 그의 나라엔 해가 지고, 겨울이 오고,
먼 길에 나서 돌아오지 않는 세월에게 마지막 편지를 부치는 눈 오는 산길에 서서,
그는 잠시 지게위의 햇살을 내려놓는다.
나는 안다. 그의 하루는,
해가 지는 산골 마을,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저 아침가리의 계곡에 묻은 것인 줄.
산길을 내려오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발을 내딛을 때마다 빛나는 오후를 산꼭대기에 남겨두고 온다는 것을.
오후를 기다리는 마을, 햇살을 부르기엔 너무 오래 된 그 아침가리에
힘센 전나무들이 무거운 눈(雪)을 이고, 언제나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태양을 향해 힘껏 팔을 펼치고,
햇살이 빛나는 강원도의 그 곳엔 아침에만 갈아야 하는 밭이 있고,
밭 갈기가 끝날 때까지 햇빛은 밭둑에 철퍼덕 앉아 기다리고,
저녁이 산에서 내려오기 전에
해를 짊어진 아버지가 오후보다 먼저 집으로 온다.
* 아침가리-해가 있는 나절에 밭을 간다는 뜻으로 아침 조, 밭갈 경, 을 써서 조경동이라고 한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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