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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김태형

by 키미~ 2012. 1. 31.

 

 

 

  김태형

 

 

 

다 저문 석양 앞에 겨우 무릎을 대고 앉아 있다

내가 갈 수 없는 저곳에서

저녁별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갈색 염소와 카자흐 사내의 눈빛을 닮은 양들이

작고 둥근 똥을 싸며 밤하늘을 지나간다

은하수가 저렇게 흘러간다

종일 물 한 모금만으로도 배고프지 않았는데

밤새 저 순한 가축들을 따라서

초원의 풀들을 모조리 뜯어먹고 싶다

내 텅 빈 눈빛마저 뿌리째 뜯어먹고 싶다

짐승의 썩은 내장처럼

찢어져 나뒹구는 타이어 조각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모르는 녹슨 쇠붙이와

돌조각과 모래와 마른 풀과

그리고 또 천천히 제 무거운 몸을 끌며 지나가다 비를 내리는

지친 구름 한 덩어리가 있다

지평선에 반쯤 걸쳐 있는 흐린 별자리가 있다

나는 염소자리

느릿느릿 풀을 뜯고 지나간 자리에

이제 막 새로 생긴 검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곳에서 보이지 않던 별자리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별과 별 사이를 읽을 수 없어도

지평선에서 지평선으로 건너갈 수 없어도

이 별 아래에서 나는 결코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현대시》201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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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 1970년 서울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로큰롤 헤븐』『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코끼리 주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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