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마인드 5~6월호 /어머니를 저 언덕으로 보내며
글, 공광규
어머니의 몸이 가벼워지기 까지
칠십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한 삽도 안 되는 뼛가루를 만드는데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으니 지루했을 것이다
한줌은 아버지 산소 주변에 던지고
한줌은 텃밭 감나무 아래 묻고
한줌은 갈대가 많은 냇물에 띄웠다
골목에 쌓인 흰 눈처럼 사라진 뼛가루
어머니는 죽어서도 아버지 옆에 가기 싫다고 했는데
월산과 청태산 사이를 넘어가는 해가 보고 있어서
미안했다
죽은 자의 소원도 못 들어 주다니
묵은 밭 억새가 울면서
동네를 지나는 고압선이
고압으로 울면서 산을 넘어가고 있다.
얼마 전 저 언덕으로 보낸 어머니를 생각하다가 「미안했다」라는 시를 써봤습니다. 남편의 가부장적 폭력과 자식들 문제로 고생했던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은 평온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보며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는 맹자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장남인 저는 치러낼 장례 절차를 생각하느라 슬픔에 빠져들지도 않고 이것저것 챙기면서 꼭 냉철한 사무원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상객을 맞으면서도 슬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눈물도 나지 않던 내가 운 것은 어머니의 시골 친구들이 버스 한 대를 전세 내어 올라와 빈소를 눈물바다로 만들었을 때였습니다.
허리가 굽고 검버섯이 나고 손이 곱은 어머니의 시골 친구들이 바닥에 앉아 허리를 구기고 엎어지고 손으로 바닥을 치며 얼굴에 살주름을 만들며 우는 노인들의 진실된 울음소리는 슬픔의 바다였고 죽은 친구에 대한 예의 같았습니다.
장례 셋째 날 오전에 어머니 사체는 화장장에서 2시간이나 탔습니다. 타고 남은 흰 뼈가 금속 화장대 위에 흰 눈처럼 쌓여있었습니다. 인부는 골목에 내린 눈을 쓰레받기에 쓸어 담듯이 뼛조각을 쓸어 담았습니다. 파쇄기에 부서진 뼈를 오동나무 상자에 담아 들고 나오는데 남은 온기가 어머니의 체온처럼 손에 옮겨왔습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사용하던 옷가지와 물건, 나와 동생과 아이들이 입었던 상복들을 벗어 청소부가 지정하는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사람도 이런 옷가지처럼 물건들처럼 사용하고 나면 버려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슬퍼졌습니다.
서울의 작은 포교원에 어머니 영정을 모시고, 뼛가루를 안고 고향으로 향하면서 어머니의 육신을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아팠습니다. 다른 인연도 헤어질 때 이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 인연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가 질 무렵에 고향에 도착하여 돈돌배기에 있는 아버지 무덤에 소주 한 컵과 포를 놓고 절을 한 다음 뼛가루를 산소 주변에 뿌렸습니다. 마침 바람이 불어서 뼛가루는 구름처럼 공중에서 떠다니다가 멀리 사라졌습니다. 묵은 밭에 가득한 마른 억새가 흐느껴 울었습니다. 동네를 지나는 고압선도 고압으로 울었습니다.
텃밭 감나무 아래에도 뼛가루 한 줌을 묻었습니다. 어머니는 감나무의 물관을 타고 다니며 새순이 되고 나뭇잎이 되고 떫은 감이되고 붉은 감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까치가 와서 감을 쪼아 먹고 이 나무 저 나무 이산 저산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것입니다. 자유로운 떠돔은 어머니가 바라던 것이었지요.
그리고 나머지 뼛가루는 앞 냇물에 뿌렸습니다. 무거운 뼛조각은 물 아래로 떨어졌고, 가벼운 것은 물 위에 떠갔으며, 더 가벼운 것은 연기처럼 날아서 갈대숲으로 사라졌습니다. 어머니는 물결을 따라서 강으로 바다로 갈 것입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세상 구경하고 싶다는 게 어머니의 바람이었습니다.
냇둑에 분골 상자와 보자기를 태우고 집에 돌아오면서, 아버지 산소 주변에 던진 뼛가루가 마음이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는 죽어서도 아버지 옆으로 가기 싫다며 당신을 화장하여 밝고 맑은 양지와 멀리 볼 수 있는 곳에 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나와 큰 여동생과 비구니 스님이 된 고종 사촌과 아들은 사랑방에 장작불을 때고 누워 인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인연 가운데 사람을 만나는 인연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에 모두 동의를 하였습니다. 죽어서도 아버지 곁으로 가기 싫다는 어머니의 인연도 그렇지만, 결혼에 실패한 두 여동생에서부터 고종 사촌들의 실패한 결혼을 이야기하며 한숨을 푹푹 쉬기도 하다가 웃기도 하다가 슬퍼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을 먹는데, 재당숙은 집안에 사람이 잘못 들어오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짐승이나 같으면 팔기라도 할 텐데 사람은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재당숙의 큰아들도 두 번 결혼을 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염주 네 개를 챙겼습니다. 어머니가 손자 대학 첫 등록금을 하겠다고 모으기 시작했다는 크고 무거운 돼지저금통은 아들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저녁에 아들과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면서 스님이 주고 간 『원각경』 「보안보살장」을 읽었습니다.
부처님은 보안 보살에게 항상 이런 생각을 하라고 합니다. 지금 내 이 몸뚱이는 흙, 물, 불, 바람이 화합하여 된 것이다. 터럭 이 손톱 발톱 살갗 근육 뼈 골수 때 빛깔들은 다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침 거품 담 눈물 정기 대소변은 다 물로 돌아갈 것이며, 더운 기운은 불로 돌아갈 것이고, 움직이는 것은 바람으로 돌아갈 것이다. 흙 물 불 바람이 흩어지면 이제 이 허망한 몸뚱이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나는 마침내 이 세상에서 허망하게 사라진 어머니와 이 허망한 내 몸뚱이를 생각하다가 마음이 편하여졌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나의 친정어머니 생각에 너무 공감하며 읽었다.
그렇다. 인간의 몸뚱이는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이 화합하여 된 것이다.
그래서 떠나신 친정어머니의 편안한 안식을 불안해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도 그러리라,
그렇게 떠나리라,
그 죽음이 편안하기를, 그리하여 미소로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치악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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