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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대구, 상희구

by 키미~ 2012. 5. 12.

 

영산못靈仙池 수양버들 (외 2편)

—대구.3

 

   상희구

 

 

 

영산못 하면 수양버들이다

늦봄이면 휘휘 늘어진 수양버들이

정말 가관이었는데

언젠가 황학동 헌책방에서

남인수南仁樹 가요집歌謠集

겉표지에, 월하月下의 버드나무 아래서 두 손을

부여잡은 선남선녀가 지금 막 이별을 하려는지

눈물 꼭 찍는 서툰 그림이 있었는데

그 그림에서 본 휘휘 드리워진

바로 그 수양버들이었었지

 

하루는 연못은커녕 수양버들도

간 곳 없어 근처를 헤매는데

마침 범凡勿 황금동黃金洞을 거쳐

봉산동 향교鳳山洞鄕校 앞을 지나온

4월의 뜨신 바람이 영산못께에 와서는

그만 엿가락처럼 휘휘 늘어져 꼭 그

수양버들인 양 나를 휘감아 버리는 것이었다.

영산못, 그 수양버들!

 

 

————

*영산못 : 대구 남단, 명덕(明德)로터리에서 대구 교대 쪽으로 가다가 왼쪽에 있던 큰 연못. 60년 전쯤에 메워져 지금은 영선시장(靈仙市場)이 들어서 있다. 한문으로 읽으면 영선못이지만 대구지방에서는 영산못으로 부르고 있다. 그 시절 풍광이 매우 뛰어났던 곳이다.

 

 

 

덩더꾸이

—대구.42

 

 

 

우리 마실에는

덩더꾸이가 마이 산다

 

뒷집에는

맨날 알라만 울리는

덩더꾸이 알라 아부지

 

앞집에는 밥 하민서

맨날 밥만 태우는

덩더꾸이 이 집

작은미느리

 

옆집에는

해거름만 되마

지 그렁지 붙잡아 볼라꼬

헛발질만 해 쌓는

덩더꾸이 칠복이늠

 

한 집 건너 웃집에는

맨날 헛타아다

총을 쏘아대 가주고

쥔 새는 놓치고 나는

새만 잡으로 댕기는

엉터리 포수

덩더꾸이 먹보영감

 

꽃 조코 물 조흔

우리 마실

덩더꿍!

덩더꿍!

 

덩더꾸이가 많은

우리 마실

덩더꿍!

덩더꿍!

 

 

————

* 마실 : 마을

* 덩더꾸이 : 사전적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끼어드는 사람’으로 되어 있으나 경상도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대개는 덤벙대다가 실수를 한다거나 성격이 맵짜지 못하여 매사에 양보만 하다가 2등만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반드시 바탕에는 선량함이 깔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융통성 없이 우직하기만 하다던가 천진난만하여 바보스럽다던가 하는 사람들이 실수를 하였을 때 우스꽝스러움을 동반했다면 그야말로 덩더꾸이가 하는 짓이라고 할 수 있다.

* 맨날 : 매일같이

* 알라 아부지 : 아기 아버지

* 해그름 : 해가 질 때 쯤, 이때쯤이면 대개 사람의 그림자가 길어진다.

* 지 그렁지 : 제 그림자

* 헛타아다 : 엉뚱한 곳에다

* 쥔 새는 : 손 안에 쥐고 있는 새는

* 덩더꿍 : 북이나 장구를 흥겹게 두드리는 소리, 혹은 흥이 났을 때 얼씨구 하면서 추임새를 넣는 것

 

 

 

내당주차장內唐駐車場

—대구.99

 

 

 

붐비던

시외버스 터미널이

명절 끝이라 그런지

소읍小邑인 양 한적하다

 

—화원花園, 옥포玉浦, 고령高靈,

합천陜川으로 가시는 손님은

일로 오이소

 

—창녕昌寧, 신반新反, 남원南原,

마산馬山으로 가시는 손님은

절로 가이소

 

화원, 현풍, 신반, 남원……

저 많은 고향을

머리에 인 채

변두리에 쓸쓸히 서 있는

내당주차장

 

 

————

*내당주차장 : 대구 서남부에 있던 작은 시외버스터미널. 옛날에는 작은 터미널을 주차장으로 불렀다.

*일로 : 이쪽으로

*절로 : 저쪽으로

 

 

 

                            —시집『大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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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구 / 1942년 대구 출생. 1987년 《문학정신》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시집『발해기행』『요하의 달』『숟가락』『大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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