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승리-. 2013년 노벨문학상의 영예는 캐나다 단편작가 앨리스 먼로(82)에게 돌아갔다. 그는 10일 수상 발표 직후 캐나다 CBC TV 전화인터뷰에서 "단편이란 게 단순히 장편을 쓰기 위해 끄적거리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 먼로를 '현대 단편소설의 대가'라고 표현했다. "스토리텔링이 정교하다(finely tuned). 명료하고, 심리적인 리얼리즘을 담아냈다"고 시상 배경을 설명했다.
먼로는 캐나다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솔 벨로(1915~2005)가 76년 수상했지만, 그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 미국 작가로 분류된다. 여성 작가로는 13번 째 수상이자, 2009년 루마니아 작가 헤르타 뮐러 이후 4년 만이다.
먼로는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농부 아버지와 선생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글쓰기에 심취했다. 웨스턴 오하이오대 재학 중에 19세에 첫 단편 '그림자의 세계'를 발표했다. 당시는 영문학 강좌에 영국문학과 미국문학은 있어도 캐나다 문학이 없던 시절이다. 특히 여성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비웃음거리였다. 하지만 그는 식당 직원, 도서관 서기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글쓰기를 다져갔다.
그가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 68년 발표한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다. 15년에 걸쳐 써온 단편을 한데 엮은 것으로 당시 출판사에서 여러 번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이 책으로 그는 캐나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캐나다 총독문학상을 수상한다.
먼로의 노벨상 수상은 단편소설의 재평가로 불릴 만하다. 단편은 19~20세기 문학의 주요 장르였으나 20세기 이후 장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짧은 분량 안에 소수의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단편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먼로는 올 7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단편이 '미니 장편'(novels in miniature)으로 불리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초기 다섯 작품을 쓸 때까지는 장편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장편을 써야 작가로 여겨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고정관념에서 자유롭다. 단편이야말로 앞으로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장르"라고 말했다.
먼로의 키워드는 일상과 여성이다. 우리 주변 다양한 인간 군상을 진한 여운을 담아 그려냈다. 한림원은 "일상을 다루지만 결정적인 사건과 깨달음을 포착해내면서 존재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고 평가했다. 고향인 캐나다 온타리오주 시골마을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60년대 불어닥쳤던 사회혁명 사이의 긴장도 그의 문학적 자양분이 됐다. 그는 2003년 AP통신 인터뷰에서 "60년대는 '놀라운(wonderful)' 시대였다. 1931년생인 나는 당시 나이가 들었지만 그렇다고 늙은 것도 아니다. 나 같은 시대 여성들은 몇 년 후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껑충거리며 다녔다"고 말했었다.
먼로는 기본적으로 페미니스트 작가이지만 여성의 권리, 우월성, 남성과의 동등한 경쟁을 주장하는 전투적 페미니즘에선 벗어나있다. 권택영 경희대 영어학부 명예교수는 "그의 단편 '소년들과 소녀들(Boys & Girls)'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어린 소녀는 '믿을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 내레이터의 신뢰성을 낮게 해 오히려 독자와 관객을 유혹하는 소설 작법)'라는 독특한 문학적 기교로 여성만이 가지는 힘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80대 노(老) 작가는 올 6월 소설집 『Dear Life(인생에게)』로 캐나다에서 '더 트릴리움 북 어워즈'를 수상했을 때 캐나다 내셔널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아마도 이게 마지막 소설집이 될 것 같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은퇴를 하자마자 큰 상을 받게 됐다. 이번 수상으로 120만 달러(약 12억원)의 상금을 받는다. 시상식은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앨리스 먼로, 내게 소설이란
"작품을 쓸 때 특정한 형식을 생각하진 않습니다. (중략) 그러나 저는 '일어난 일'을 조금은 다른 형식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어떤 우회로를 거쳐, 낯선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말이죠. 저는 독자들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어나는 방식'에 놀라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단편소설이 거둘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입니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에 실린 저자 인터뷰에서.
"당신이 작가라면, 답을 찾느라 당신의 생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발견한 답을 종이에 적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읽죠. 당신은 이 일을 평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패하죠. 하지만 항상, 모든 문제에 실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일은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다룰 수 있는 것들만 손에 잡힌다는 것. 이것은 희망이 없는 이야기로 들릴 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결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버지니아 쿼털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글에 대해 넘치는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은 어리석음에서 온 것입니다. 나는 주류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습니다. 여자가 남자처럼 쉽게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것, 하류 계층이 작가가 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독자를 거의 만날 수 없는 작은 마을에 살며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은 귀한 선물입니다." -'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번역된 먼로의 단편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뿔, 2010)=아내이자 엄마인 주인공이 어느 날 불현듯 작업실을 얻어야겠다고 공표하는 이야기가 담긴 '작업실', 평온한 삶에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의 순간을 그린 '어떤 바닷가 여행' 등 캐나다 온타리오 지방을 배경으로 한 단편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웅진, 2007)=평범한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 기쁨과 절망을 다룬 단편 다섯 편.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를 요양소에 보낸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2006년 ' 어웨이 프롬 허'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현재 절판.
◆『떠남』(따뜻한 손, 2006)=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열정, 죄의식과 환상을 그린 작품. 비정한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한 주인공 칼라가 발걸음을 돌린다는 내용의 '떠남', 자의식 강한 여주인공의 젊음부터 노년까지를 그린 3편의 연작 등이 담겼다. 절판.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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