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를 보는 동안 인간에게 기록본능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다양한 종류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상적 경험을 연대기식으로 꼼꼼히 적은 응모자도 있었고, 도시 재개발 문제 등 사회현상에 대해 발언하는 글도 있었다. 제주 4·3 사건 같은 역사의 상처에 대해 말하는 응모작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성공적으로 소설로 형상화된 사례는 드물었다. 소위 인생의 풍파라고 불릴 만한 내용을 전기처럼 나열한 글이 특히 많았다.
어느 정도 소설적 형상화에 성공했으나 기시감이 너무 강해 쉽게 손을 들어주지 못한 작품도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낯익은 추리서사 형식으로 풀어내거나, 사회 하층민의 분노를 복수(復讐)의 서사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그랬다.
심사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본심에 오른 작품은 일곱 편이었다. 그 중 집중적으로 논의가 된 작품은 『중앙역』 『모두에게 좋은 소년』이었다. 『미디어 팝 아티스트의 죽음』이나 『것들』은 작위적 구성이 가장 큰 결함이었고, 『수요일, 록스타의 만찬』이나 『푸른 눈의 두 번째 남편』 『의사가 필요해』는 소설 전반부에 형성된 긴장이 후반부까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아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모두에게 좋은 소년』은 영리한 소설이다. 응모자는 성경을 포함한 다양한 고전들과 『금각사』(미시마 유키오) 류의 명작을 작품 재료로 활용해 자신의 소설로 흡수하는 능력을 보여줬었다. 시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쓰이는 글 형식까지도 소설의 일부로 차용함으로써 다양한 장르의 글이 결합한 서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적으로 말하는 ‘아름다움’과 ‘혁명’의 언어들이 너무 추상적이고 때론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길 주저하게 하였다.
다수의 심사자가 당선작의 후보로 지목한 작품은 『중앙역』이었다. 『중앙역』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노숙자들 사이의 사랑이라는 소재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문장의 기품이나 공들인 서사의 여백, 그리고 인간과 사물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작품에 아름다운 기운을 감돌게 하였다. ‘쿨함’이라는 정서와 ‘냉소’를 머금은 문장이 여전히 태반을 차지하는 우리 문단에 『중앙역』의 문장들이 발산하는 ‘따스함’과 미세한 ‘희망의 기미’가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기대된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심사위원=이순원·김별아·전성태·윤성희·김태용·강유정·송종원(대표집필 송종원)
글=김효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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