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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히

by 키미~ 2014. 1. 7.

 

 

오늘도 무사히

 

 

 

                                                           김정희

 

 

 

겨울이 오면

남편은 일이 없다.

그가 돌아오는 어스름 저녁이면

강 건너 어두워진 산이 거대한 이무기처럼

휘어져 눕는다.

산처럼 길도 눕는다.

 

 

휘어져 누운 길을 등에다 지고

오늘도 공쳤네, 왼쪽 닳은 신발을 털썩거리며 그가 돌아올 때,

내려앉은 어깨 뒤로 해는 지고,

눈발에 사라지는 발자국 밟으며 겨울이 온다.

괜찮아, 괜찮아, 봄이 오면 일이 있어, 시래기로 된장 끓이며,

혼잣말 하는

눈이 오는 저녁이면,

고물상에서 얻어 온 선술집 양철 탁자 위로

연탄 매운 냄새가 소주병을 감싸고

마당에 내려놓은 휘어진 길이

몸을 웅크린 채 슬그머니 들어와

난로 모퉁이에 젖은 발을 말릴 때,

다 닳은 지문을 가진,

손톱깎이가 필요 없는 나의 남편은

소주 한잔에 신 김치 맛있다고 구겨 넣으며

한 쪽 입술 찌그러뜨리고 웃는다.

 

 

눈은 내리고,

진절머리 나는 눈은 내리고,

강 건너 산 보다 더 높게 쌓이고,

신 김치에 계란 부침 도시락 덜컥거리며

새벽,

휘어진 길 위로

등 휘어진 남편이 인력시장에 나갈 때.

그의 가난한 등 뒤에 가만히 쓴다.

오늘도 무사히.

 

 

 

 

 

 

 

요즘은 시를 못 쓴지가 꽤 되었네요.

이 시도 오래 전에 써 놓은 겁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본 소재와 집 근처의 개울을 배경으로

쓴 시인데, 수정해서 등단을 했고, 이 시는 초고입니다.

근데, 저는 이 초고가 더 좋아서..

겨울 밤에 한번 읽어 보세요.

 

치악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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