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다
김정희
안개가 자욱한 새벽,
얼어붙은 배추가 지상의 색깔을 빨아먹고 있다
나는 문득 배추를 뽑으려다 무채색으로 널브러진 가을을 본다
밭둑의 고얌나무 뒤에 숨어 회색으로 쏘아보던 새벽은
배추의 초록색으로 스며들고
한 면만 빨간 목장갑 낀 나의 손도 녹색에 젖는다
지상에 떨어진 모든 잎사귀들은 안개 색으로,
디디고 선 나의 발바닥도
서서히
가라앉고,
배추밭 언저리 서성이던 겨울이 서투르게 손짓하면,
언제이든가
노엽던 여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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