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기대 배반한 20대 작가 열전
1980년생 영화감독 남궁선씨는 문학계간지 <문학동네> 2009년 겨울호에 기고한 20대 소설가 김사과에 대한 ‘작가 초상’에서 사회가 20대 문제를 논하는 세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세팅을 교실이라고 치고 이십대를 그 반의 왕따라고 하면, 이십대 담론이라는 것은 반장이 애들 모아놓고 심각한 얼굴로 ‘얘기가 필요합니다’라며 왕따 문제를 토의하는 것과 같다. 물론 당사자이니만큼 왕따도 꼭 교실에 같이 있어달라는 부탁을 해가면서.”
20대에게 20대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는 기성세대는 대부분 두 가지 종류의 이야기를 기대한다. 첫째, 자신의 낭만적인 청춘을 곱씹어보게끔 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순수하고 풋풋한 이야기를 기다린다. 둘째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세상을 움직이게 할 원동력이 20대에게도 있는지 확인해보려 한다. 특히 시 짓고 소설 쓰는 작가들은 세태에 민감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기대하기 좋은 직군이다.
ⓒ이우일 그림 |
애초 기대가 잘못됐다. 20대라는 카테고리 안에 작가들을 묶어서 두 종류의 이야기만 들으려 한 기성 독자들이 조금만 마음의 문을 넓히면, 20대 작가들의 글은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다.
여기 소개하는 20대 작가 다섯 명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홍대 앞에서 자주 놀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소통을 하다가 휴대전화가 꺼지면 소통도 곧 꺼져버리는 작품 속 인물들의 공통점을 빼면, 이들의 글은 공유 지점이 단 한 곳도 없다. 출발점도 지향점도 모두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래서 신춘문예 심사 때마다 “요즘 젊은이들의 응모작은 모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라는 혹평이 쏟아진다.
하지만 20대가 꼭 자기 방의 문을 열고 나와야 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방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한다면 시와 소설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젊은 작가들은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왕따의 입을 쳐다보고 있는 반장과 학급 친구들 앞에서 왕따가 굳이 그들을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
김기홍씨는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장편소설 <피리 부는 사나이>로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 |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김기홍씨(29)의 장편소설 <피리 부는 사나이>(문학동네 펴냄)는 세 가지 생각으로부터 태어났다. 한 마을 아이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뒤따라가 모두 사라졌다는 독일의 전설을, 어릴 적 김씨는 기묘한 기분으로 읽었다. 언젠가 한 잡지 인터뷰 기사에서 어느 영화배우가 던진 “낯선 곳에서 눈을 뜨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물음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신문을 펼치고 텔레비전을 켜면 세상은 24시간 내내 테러와 살인과 실종 범죄로 앓고 있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전설과 물음과 현실에 답을 내는 방향으로 김씨의 소설은 출발했다.
소설을 쓰기 전부터 김씨는 사람들의 무감각함에 자주 놀랐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때는 그렇게 겁에 질렸으면서 2004년 런던에서 일어난 테러는 왜 그렇게 금방 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홍대 앞에서 집으로 가던 여성들이 밤마다 사라지고, 그래서 뉴스는 매번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그녀들을 삼켜버린 도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느 때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실종 사건처럼, 익숙하지만 이상한 것들에 김씨는 시선을 오래 두었다. 2002년 여름, 그도 거리응원을 나가 ‘대~한민국’을 외쳤지만 학교 앞에서 거리응원 인파에 발이 묶여버린 시내버스를 보고 처음으로 애국주의가 ‘좀 이상하다’라고 느꼈다. 입학할 때는 분명 학교 앞에 파파이스(프랜차이즈 닭집)가 네 군데였는데 이제는 그것들이 몽땅 없어지고 대신 스타벅스가 네 곳 생긴 것도 신기하기 짝이 없다. “아메리카노나 라떼나 마키아또가 없던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요?” 김씨는 소설의 작은 부분들을 그런 의문들로 메웠다.
김씨는 원래 문학보다 음악을 좋아했다. 중·고등 학생 때 동네 친구들과 밴드를 꾸리고 기타를 쳤다. 중3 때 첫 통기타를 샀고 1년 뒤 설날 세뱃돈을 모아 첫 일렉(전자) 기타를 손에 쥐었다. “그때는 왠지 꼭 그런 음악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메탈과 록에 심취했다.대학생이 되어서도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 공연을 하고 기타 레슨으로 용돈을 마련했다. 문학에 관심을 붙인 것은 지하철역에서 공익근무 요원으로 지내던 시절이었다. 업무가 끝나면 학교 도서관에 가 닥치는 대로 책을 집어 읽었다. 보르헤스 작품을 접하고서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구나’라고 충격받았다.
등단을 일찍 한 편이지만 첫 시도는 아니었다. 2007년에도 문학동네작가상 공모에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중편소설을 하나 냈다가 떨어졌다. “마치 대학 과제를 벼락치기로 하듯, 마감 당일 아침에 부리나케 써서 우체국에 뛰어가 내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 1년 뒤에는 신인상 공모에 단편소설을 내 최종심까지 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공들여 쓴 <피리 부는 사나이>는 고료 5000만원과 함께 ‘소설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김씨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저력이 만만찮다”(임철우), “동화적 모티브를 현대사회의 여러 증상과 관련지어 풀어나가는 솜씨가 상당하다”(남진우)라는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쓴소리도 많이 했다. “유럽 전역에 이르는 소설 공간의 광활함에 비해 그 디테일이나 사실성이 턱없이 부족하다”(신수정)라든가 “피리 부는 사나이, 피리 소리, 수연과 여인들의 연쇄 실종사건 간의 연관성이 여전히 모호하다”(임철우)라는 식이다.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는 김씨가 ‘겁없이’ 작품 배경을 서울 신촌에서 유럽 전 대륙으로 확대해서일지도 모른다. 또 작품의 출발 지점에서 던진 질문들에 아무런 답을 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젊은 덕에 김씨는 충분히 고민하는 중이다. 테러가 왜 일어나는지, 사람들이 좇는 가치는 뭔지, 그것들 중 무엇이 맞고 틀린지,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앞으로 내 문학은 사회 속 깊숙이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 따위를 말이다. 비행기는 곧 타볼 예정이다. “주식을 해라” “펀드에 넣어라”라는 주변 친구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고료 중 일부로 배낭을 메고 필리핀 등지의 동남아시아를 돌아볼까 생각 중이다.
■ 조롱하면서 소통하는 시인 오은
“축하합니다. 등단하셨습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에, 스무 살 청년이 묻는다. “네? 등단이 뭐예요?”
대학 합격 발표 다음 날이었다. 전날 친구들과 마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청년은 자신이 쓴 시가 한 문학 월간지의 작품 공모에 당선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혼자 끼적인 그의 시를 한 살 많은 형이 몰래 타이핑해 우편으로 보낸 덕이었다. 그는 등단이 뭔지도 모르는 ‘비문학 소년’이었다. 심사위원은 스무 살 당선자에게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네가 쓴 게 맞니?”
오은씨는 198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공부했다.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
시인 오은씨(28)는 재수 시절 담배와 함께 시 쓰기를 시작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교내 백일장이 열리면 부지런히 시를 써서 냈지만 한 번도 상을 받지 못해서 스스로 시를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딱 한 번 학교 밖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케이스’라는 학습지 회사가 공모한 문학상이었는데,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에 딸린 방에서 네 식구가 살던 경험을 토대로 “‘슬픈 독백’인지 ‘슬픈 인연’인지, 아무튼 딱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하실 만한 제목과 내용으로 시를 써서 200만원을 받았다.”
등단하고 나서도 시는 많이 쓰지 않았다. 등단이란 걸 하면 으레 문학 잡지에 글도 싣고 이름도 알려야 한다는 ‘문단 상식’을 알지도 못했고, 어차피 어린 나이라 청탁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동안 오씨는 대학에서 학생회 활동을 ‘약간’ 했다. 선배를 따라 집회에 나갔다. 하지만 “모든 게 항상 똑같아서” 오씨는 이내 지쳤다. “반전 집회를 나가도, 농민 집회를 나가도, KTX 여승무원 연대 집회를 나가도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한 여자 선배가 집회 대열 맨 앞줄에 섰다가 전경의 방패에 맞아 귀가 찢어지는 사고를 목격했다. 덜컥 겁을 먹었다. 다시 집회에 나가기 힘들었다.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었다. 말장난 좋아하고 남 골려먹기 좋아하는 그여서 시가 제격이었다. “스카이가 다른 이유를/ 불가능이란 아무것도 아님을/ 열심히 일한 자들이 왜 떠나는가를/ 방과후 학습에서/ 비로소 이해”하는 아이들이 가련해 “마블링처럼 웃으며/ 고블린보다 신나게/ 더블린 한복판에서/ 텀블링, 텀블링”(<스프링> 중)이라고 말놀이판을 벌였다. “콩밥도 먹고 나이도 먹고 그러다 운 좋게 한자리 해먹으면 뇌물도 먹고 쓴소리에는 적당히 가는귀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직원들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배우자의 영혼도 야금야금 갉아먹는”(<식충이들> 중) 사람들은 그가 조롱하고 싶은 상대이다.
오씨는 “어른에게 반항하는 어린아이의 기분으로 시를 쓴다”라고 말했다. 그 핵심이 ‘조롱’인 까닭은 “꼰대들이 싫지만 그들이 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놀리면서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귀 막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 역시 그의 비판 대상이다. “우리는 모두 겁쟁이예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을 때만 미칠 수 있지요 온실효과 때문인가요? 전쟁 핑계는 대지 마세요 술과 마약은 그때가 더 독했잖아요(<세대 차이> 중).”
■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는 소설가 안보윤
어릴 적에 안보윤씨(29)는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열한 살 겨울방학 때, 학원 수업이 끝난 뒤 집에 돌아온 안씨는 엄마를 보자마자 내뱉었다. “이상한 아저씨한테 잡혀갈 뻔했어.” 열네 살 봄에는 집에서 드라마를 보다가 집에 돌아온 언니에게 말했다. “도둑이 들었어.”
안보윤씨는 1981년 인천에서 태어나 명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지금 같은 대학 대학원의 문예창작학과에 다닌다. 2005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
평론가들은 안씨 소설의 스토리 전개나 인물의 행동들이 ‘만화적’이라고 평한다. 악어 문신이 새겨진 두 살배기 아이, 그 아이를 잃고 강아지에게 집착하는 엄마, 휜 다리를 비관해 아예 잘라버리는 얼짱 소녀, 고등어 대신 술집 여자 머리를 갈라버린 생선 장수,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마약 중독자 교사 같은 ‘극단적인’ 인물들이 소설 도처에서 위험한 행동을 벌인다. 작가는 그렇게 “인간 본성의 모순,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풍자하고 조롱한다”(서영은).
배꼽 옆에 악어 문신이 새겨진 경찰청장의 아들이 실종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 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는 안씨가 처음 시도한 장편소설이다. “작지만 치명적인 고리로 연결되는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연작 소설처럼 쓰고 싶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두 번째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는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구상했다. 영상의 언어처럼, 소설의 언어로도 사람을 쥐락펴락 긴장시키고 싶었다.
안씨의 꿈은 원래 소설가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건 “적당한 대학, 안전한 학과를 들어가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법”이었다. 안씨의 첫째 인생 목표도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 졸업한 뒤 적당한 회사에서 일하며 3년 정도 적금을 붓다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 “똑같은 걸 외우고 시험치는 일만 반복하는”, 고등학생 때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이 그렇게 답답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별 생각 없이 문예창작과 수업을 하나 들었다. 다른 대학 과제와는 달리 ‘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써서 제출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교수에게 “너희 과로 돌아가라”고 악담을 들을 정도로 버벅거렸다. 그러다 학기가 끝날 때 쯤 교수가 연구실로 안씨를 불렀다. “집은 먹고살 만하냐? 부모님이 먹여줄 것 같으면 딱 1년만 소설을 써봐라.”
안씨의 작품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사회 범죄들, 이를테면 아동·청소년 유괴나 우발적인 살인 같은 것들이다. 범죄에 대한 분노가 유독 크기 때문이 아니다. “작정하고 쓰는 것이 아니라 뇌리에 박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쓴다.” 안씨를 비롯한 또래들은 어릴 때부터 범죄를 소문이나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보고 자랐다. 안씨에게 ‘경찰청 사람들’과 같은 범죄 재현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무척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사실 견딜 수 없이 끔찍하고 무서웠다.
보험금을 노리고 어린아이를 끓는 물 속에 집어넣은 실제 사건처럼, 끔찍하지만 사람들이 이내 잊어버리는 범죄 보도들을 안씨는 끝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소설에 이용한다. “스스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에 대해 쓰기 때문에” 소설을 짓는 내내 안씨는 고통스러워한다.
■ 가난한 자를 위한 시를 쓰고 싶은 시인 백삼웅
시를 쓰는 20대는 많지 않다. 더구나 나무나 꽃 같은 자연을 관찰하고 시를 쓰는 20대는 희귀하다. 시인 백상웅씨(29)는 복숭아꽃·매화나무·오동나무·굴참나무·수련·층층나무 따위를 시로 만든다. 2008년 백씨에게 창비신인시인상을 안긴 심사위원들의 평에 따르면 백씨 시의 이런 ‘식물성’은 “인간 세계의 갈등과 상처를 식물적인 상상력으로 봉합하고 치유한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이처럼 부드럽고 섬세하고 순연(純然)한 상상력이 여전히 자생하고 있다는 것은 놀랍다.” 이는 어쩌면 백씨가 대부분의 젊은 문인과 달리 서울에 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남 여수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전북 익산과 완주의 대학 두 곳을 다닐 때까지 백씨에게는 빌딩 숲보다 꽃과 나무 숲이 더 가까웠다.
백상웅씨는 1981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이다. 2006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고 2008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
백씨의 시에는 식물과 공장(혹은 철)이 자연스레 섞여 있다. “철가죽에서 기어 나와 옥상에 서면/ 부도난 공장 굴뚝을 더디게 오르다가/ (중략) /층층나무는 기름진 나사처럼 하늘에 박혀가고/ 지상의 시간도 철제 계단을 조금씩 미어내는지/ 내가 사는 옥상도 나이테처럼 퍼져나갔으면 하는 밤”을 노래한 ‘층층나무의 잠’(<열린시학> 2009년 봄호)과, “오늘은 철공소 마당에서 철목련을 매달아요/ 가지마다 목련꽃이 벌어져서 햇볕을 뿜어대죠/ 꽃 핀 철문은 허공에 경첩을 달고 식어가고 있고요”라는 ‘꽃 피는 철공소’(제5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이 대표적이다.
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백씨는 “박노해나 김지하의 시처럼 세상을 바꾸는" 시를 쓰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 국사 선생님이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노래로 불러줬을 때 느꼈던 울컥함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그래서 문예창작과로 진학했는데, 세상을 바꾸는 시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자주, 여러 가지로 열이 받아” 인터넷에 들어가 댓글을 달아보기도 하고, 정당 학생위원회에 들어가 정치 활동을 해보기도 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그래도 백씨는 여전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를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시가 아니다. 그 말은 “참으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만날 참고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되도록 다양한 시를 써보려고 하지만, 좀 더 무르익으면 시로 그런 메시지를 풀어내고 싶단다.
■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싶은 소설가 김사과
‘20대가 쓴 청소년 소설’이나 혹은 ‘청춘 연애 소설’이라는 광고 문구만 보고 소설가 김사과씨(26)의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분명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청소년 소설에서는 여고생이 친구를 죽이고, 청춘 연애 소설에서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 20대 여성이 남자친구와 함께 삶을 쓰레기진창 속으로 끌고 간다.
김사과씨는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05년 창비신인소설상에 단편소설 <영이>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김씨도 순진하게 자랄 기회를 빼앗겼다. 국어 성적순으로 뽑은 논술 경시반에서 그녀는 시간에 맞춰 설명문과 논술문을 쓰는 훈련을 받았다. 최대한 빨리 써야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하게 쓰는 습관이 성공적으로 몸에 배었다. 덕분에 소설가가 된 지금도 분량을 채우고 마감 기한을 지키는 일에는 어려움이 없다.
김씨는 “남녀 공학인 게 좋아서”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1년만 다니다 자퇴를 했다. 입시 공부만 시키는 학교가 싫어서였다. 하지만 자퇴생 김씨 역시 온 관심의 초점은 ‘대학 입학’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들어가는 일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압박을 엄청나게 받았다. 대학 합격 발표 날이 소설 당선 발표 날보다 훨씬 기뻤다. 대학에 들어가 서사창작과 수업을 들은 이후 김씨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결국 그것이 그녀를 ‘성공’시켰다.
스물한 살, 단편소설 <영이>로 제8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이래 김씨는 20대 문인 가운데에서도 문단에서 꽤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신문·잡지에 칼럼을 쓰기도 하고,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인터뷰 요청도 쏟아진다. 하지만 김씨는 요새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소설을 좀 쓰다보면 어딘가 강의도 나가고 교수도 하고, 상을 받고, 심사하고…, 그렇게 앞날이 정해진 느낌이 끔찍하다”라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소설이 자본주의 시장의 중요한 콘텐츠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는데, 내가 그 시장의 한복판에 서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김씨는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싶은 야심이 있다. 다만 이제 사람들이 소설이란 장르에 바라는 것이 ‘미학적 성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아, 차라리 사회과학 서적 같은 것이나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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