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학잡지는 대략 300여 종이다. 문학작품을 수록하는 종합지도 있지만 이 통계에는 빠져 있다. 문학잡지는 1년에 대략 1100권 이상 발행된다. 한 권에 30~40편의 작품이 실리니 1년에 4만 편이 문예지를 통해 발표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신고(납본)를 하지 않고 동인끼리 즐기고 끝내는 동인지는 빠졌다. 물론 전작으로 발표되는 작품집도 적지 않다. 전(前) 시인, 전(前) 소설가로는 부르지 않으니 현직 문인 수는 가늠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문학상은 검색을 통해 확인된 것만 400여 개다. 그 가운데 대체로 작고한 문인을 기리는, 유명 문인 이름을 단 문학상이 가장 권위를 갖는다. 이 중 ㄱ항목만 살펴봐도 가람(이병기), 고정희, 구상, 김동인, 공초(오상순), 곽재우, 교산(허균), 김달진, 김동리, 김만중, 김삿갓, 김수영, 김영일, 김유정, 김장생, 김환태 등이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문학상을 제정하다 보니 이름깨나 날린 그 지역 문인의 이름을 건 문학상은 거의 존재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제 “내 이름을 건 문학상을 만들지 마라”라는 유언이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문학상은 크게 기성 문인을 평가하는 것과 신인 발굴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기성 문인의 작품에 주는 상은 ‘문단’이라는 기형적인 권력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언론이 주관하는 상은 권언유착의 폐해가 자주 거론된다. 신인 발굴을 목적으로 한 상은 주로 출판 자본과 연결돼 있다. 그러니까 비평 권력이든, 출판 권력이든 권력의 눈에 들어야 문학상 하나는 차지할 수 있는 셈이다.
‘이상문학상’이나 ‘현대문학상’처럼 발표와 동시에 수상 작품집을 펴내는 경우와 신인에게 주는 상은 책 판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작품성보다 상업성을 더 고려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상업성에 치우치다 보니 고액 상금으로 유혹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이 범람함에 따라 고액 상금도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1억 원의 상금을 내건 문학상도 단명하곤 한다.
신인문학상이 등단을 위한 ‘통과의례’가 되다 보니 통과의 ‘법칙’이나 ‘공식’을 잘 가르쳐주는 몇몇 문예창작학과나 국문과가 인기를 누린다. 그 학과의 교수들이 등단 제도의 심사위원을 자주 맡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등단 문학작품에서 새로움을 찾아볼 수 없다는 통탄이 터져 나온다.
신춘문예나 계간지 공모, 장편 공모 등에서 약 15년에 걸쳐 30~40번은 떨어졌다가 한 청소년문학상에 당선된 작가는 “최종심까지 간 것도 많았지만 대체로 ‘상상력은 좋으나 철학이나 미학적 인식 부족, 상상 요소가 강할수록 철학적 깊이가 요구됨’ 등의 심사평과 함께 탈락했다. 판을 접으려다가 워낙에 ‘능력자’ 가 많아 나를 알아주지 않는 순문학보다 아직 토대가 불충분하고 동화작가와 겸업하는 경우가 많은 청소년문학(분야)에서는 내가 먹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비공식 소감을 밝혔다.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준 이 작가의 장편소설이 시장에서 즉각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음은 물론이다.
결국 읽을 만한 소설이 없고 문학상 수상 작품집의 인기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상상력을 가진 작가를 제대로 수혈하지 못하는 독식구조의 문단 시스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문예지나 문학상의 ‘열기’가 아무리 뜨거워도 문학 자체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문단 권력과 출판 권력의 자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수많은 문학상 수상작이 속출하고 있다. 그 작품집을 몇 권만 읽어보면 이 명명백백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입력 2011-11-14 0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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