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미학적 고민은 없이 겉만 베껴.. '82년생 김지영' 여성문제 단순화 위험"
[동아일보]
‘한계에 도달한 근대문학 이후의 새로운 모색’이란 주제로 국내 주요 소설을 비평한 이 책은 자기 감각에 충실하다. 표절 사태를 빚었던 신경숙 작가에 대해선 “한 작가(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치열한 미학적 대결을 얽어낼 재간이 없었던” 점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성차에 대한 통념을 답습하는 인식론적 안이함”을 보인다고 평한다.
전 교수는 17일 전화 인터뷰에서 “포스트 근대로의 문턱을 넘어가는 한국 문학의 분투, 혹은 여전히 걸리고 있는 근대적 덫을 다루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 ‘덫’에 대한 평가가, 참 거침없다.
―문단 주류 작가나 유명 작품에 거침없는 비평을 하기는 쉽지 않은데….
“비평집은 보통 청탁받아 썼던 글을 묶어 낸다. 아무래도 일관성도 떨어지고 편집위원의 의도나 지면의 성격, 출판사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기 쉽다. 이 책은 나름 일관성을 갖고 따로 쓴 비평만 모았다. 부산에서 글 쓰는 ‘반주변부적’ 위치도 영향을 미쳤다. 중심부에선 안 보이는 게 여기선 보이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이 젠더정치의 복잡성을 극히 단순화하고 고루한 통념을 강화할 뿐이라고 혹평했다.
“젠더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던 사회적 흐름을 잘 탄 작품이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냐 아니냐는 다른 문제다.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여성들의 불합리한 삶을 통속적인 수준에서 다루는 데 그치고 있다. 오히려 여성 문제를 이분법적 시각에서 단순화할 위험을 갖고 있다. 그걸 지적하는 게 비평가들의 몫이다.”
―신경숙 작가가 미시마 작가의 ‘우국’에 담긴 근대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 대신 문장 스타일만 베꼈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모두 신경숙이다”라고 했다.
“표절보다 무서운 게 무분별한 인용이다. 한국 근대화 과정은 결국 서구의 근대를 받아들이고 번역, 인용하는 과정이었다. 과연 이 과정이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이뤄졌나. 개인을 비난할 게 아니라 우리의 일천한 근대화부터 반성해야 한다.”
―‘반주변부적 비평가’로 활동할 때의 고충은….
“문학 자체도 왜소화됐고 비평은 더 심각하다. 예전에는 일반 독자도 백낙청, 김현의 비평을 읽었지만 비평의 언어와 개념이 난해해지며 독자에게서 스스로 멀어졌다. 쓰기 위해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립된 데다 시스템 밖에 있다는 외로움도 더해진다.”
―어떻게 해야 비평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시대와 매체는 빠르게 변하는데 아직 비평 관행이나 유통은 예전과 같다. 상업적 출판시장 아래 대형 출판사들은 고유 특색을 잃었고 소수 작가와 비평가들만 돌고 돈다. 비평이 새롭게 읽히고 그 나름대로 의미를 갖게 되려면, 비평관행, 매체 환경이 갱신돼야 한다. 신경숙 사태가 그런 계기가 되길 기대했지만, 여전히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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