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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에 관한 번역오류론(펌)

by 키미~ 2018. 4. 5.

알베르 카뮈 '이방인' 번역 논쟁

STF / AFP

한국인은 지난 25년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완벽하게 오해했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아랍인을 총으로 쏜 게 강렬한 태양빛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사형 당한다. 뫼르소의 논리 없는 항변은 그 철저한 논리없음 덕분에 오히려 20세기 문학 역사상 가장 강렬한 문구 중 하나로 남아있다. '부조리 문학'으로 불리는 카뮈의 어떤 상징이랄까. 많은 철학서와 문학서, 심지어 영화 평론서들이 저 대목을 그토록 자주 인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게 다 잘못된 번역으로 인한 오독이었다면? 혹시 뫼르소가 아랍인을 총으로 쏜 게 강렬한 태양빛이 아니라 태양빛을 반사하는 아랍인의 칼 때문이었다면? 부조리적인 살인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정당방위였다면?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새움출판사에서 새로운 '이방인' 번역본을 내놓은 이정서(필명) 씨는 한국 최고의 카뮈 권위자로 손꼽히는 김화영 교수의 잘못된 번역 때문에 한국 독자들이 수십년간 '이방인'을 오해해 왔다고 주장한다.

알베르 카뮈(1913~1960)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이방인'은 전 세계 101개 국가에서 번역돼 수천만 부가 팔린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 중 하나다.그러나 국내 독자들에게 '이방인' 만큼 난해한 소설도 드물다. 태양빛이 너무 찬란해 총을 쐈다는 주인공 뫼르소의 살해 동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최근 카뮈의 '이방인' 새 번역본을 내놓은 이정서(필명) 씨는 이에 대해 딱 잘라 말한다. 번역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것. 뫼르소는 강렬한 태양 때문이 아니라 아랍인의 칼날에 비친 햇빛이 위협적이어서 정당방위로 첫 발을 쏜 것이라고 이씨는 주장한다. "뫼르소가 총을 쏜 가장 큰 이유는 '눈을 찌르는' 칼날 때문인 것이다. 그 번쩍이는 칼을 든 사람은 앞에서 친구(레몽)을 잔인하게 찔렀던 바로 그 위험한 사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 바로 정당방위인 것이다."(208쪽) 나머지 총알 네 발은 "위장된 도덕, 종교, 권위,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무의식적인 발사"(209쪽)라고 말한다. 이씨는 급진적인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고. 그가 언급한 "지금까지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바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번역한 '이방인'을 가리킨다. (3월 28일/ 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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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움출판사에서 새로 출간한 '이방인'

이정서 씨는 국내 독자들이 알베르 카뮈를 어려워하면서도 오역의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김화영 교수의 권위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작품의 권위에 이중으로 짓눌려 있었던 탓이라고 주장한다. 김화영 교수는 지난 2009년 알베르 카뮈 전집을 완간할 정도로 국내에서는 권위를 인정받는 카뮈 연구자다.

새움출판사의 새로운 '이방인'이 출간되기 전, 번역가 이정서 씨는 출판사 블로그에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연재물을 연재했다. 이 블로그가 문학팬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 일으키자 경향신문은 이미 지난 1월 24일 [들끓고 쏠리다]김화영 교수의 카뮈 ‘이방인’ 번역에 이의 있습니다라는 기사를 통해 이정서 씨의 주장을 소개한 바 있다.

번역가 이정서씨(필명)가 김화영 교수의 권위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지난해 8월부터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쓰고 있는 블로그 연재를 통해서입니다. 지난 20일자로 29회분까지 올라온 이 연재에서 이씨는 자신의 <이방인> 번역과 김화영 교수의 번역, 그리고 원문을 동시에 올린 다음 셋을 비교해가며 김 교수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대목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그는 마송과 함께 떠났고, 나는 여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해주기 위해 남았다. 마송 부인은 울기 시작했고 마리는 매우 창백해졌다.”(이정서 역)

“그는 마송과 함께 갔고, 나는 남아서 여자들에게 사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마송 부인은 울고 있었고, 마리는 파랗게 질려 있었다.”(김화영 역)

이씨의 번역에 따르면, 나(주인공 뫼르소)는 여자들에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 남았습니다. 설명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원문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 교수의 번역은 “남아서 사건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돼 있습니다. 결국 ‘내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부인은 울고 마리는 파랗게 질렸다’는 인과관계가 설정돼 있는 것입니다. 이씨는 “김화영은 자기식으로 작문을 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2014년 1월 24일/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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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움출판사 블로그에 연재된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이정서 씨는 역자의 말을 통해 '이방인'이 "어느 한 문장 이해되지 않는 곳도 없는, 완벽한 소설"이라고 결론내린다. "이제 경험해 보면 아시겠지만 원래 카뮈의 '이방인'은 서너 시간이면 다 읽고 감탄할 소설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새움출판사의 새로운 '이방인' 번역본에 관한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사실 카뮈의 '이방인'은 기묘한 역설을 안고 있었다. 이방인의 말뜻 그대로 낯설고 이상하게 다가와서 새로운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요령부득의 작품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은, 작품에 덧씌워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권위를 털어 내면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독자의 의구심과 개연성을 봉쇄해 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자신의 독법을 문제 삼거나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운운해 온 게 사실이다.

이 땅에 '이방인'이 번역된 지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독자들은 ‘불문학계의 대가’라는 번역자의 권위에 짓눌려 번역이 잘못됐을 거라곤 생각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 탓만 하고 있었다. 이에 새롭게 번역된 '이방인'은 잘못된 번역을 실제 문장과 비교해 보이며 밝혀내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작품의 권위와 번역자의 권위에 이중으로 짓눌려 사태의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독자들에겐 가히 충격적인 주장이다. 아무튼 이 책이 국내 번역문학에 새로운 계기가 될 책임은 분명해 보인다.

새로운 번역본의 띠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25년을 속아온 번역의 비밀, 이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인은 지난 25년 동안 오역에 속아서 알베르 카뮈의 위대한 고전을 완벽하게 오독해 온 것일까? 아니면 이건 새로운 번역본을 팔기 위한 출판사와 번역가의 마케팅일까?

'이방인'의 오역에 관련한 논쟁은 이정서 씨의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듯하다. 다만 뫼르소가 아랍인을 총으로 쏜 정확한 이유만은 누군가가 좀 확실하게 지적해주길. 부조리냐 정당방위냐, 그것이 문제다.

한국 문학 번역의 역사는 오역의 역사다. 인터넷으로 화제가 됐던 오역 사례 10가지

1. 댄 브라운의 추리소설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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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밀리언셀러로 320만부가 팔린 댄 브라운(Dan Brown)의 추리소설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

1) 번역본 초판의 오역사례를 보면 문맥과 정반대로 해석했다.

* 번역본 초판

"And Sauniere was knowledgable about this?" (소니에르 씨도 이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No body more so." (아무도 모릅니다)

제대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소니에르가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는 말이지요?"

"최고전문가지요."

2) 원문에 나온 'The Book of Acts'의 경우 초판에선 단어의 뜻을 그대로 옮겨 '행동 지침서'라고 번역했지만 본뜻은 신약성서 중 하나인 '사도행전'이다.

동아일보는 “초판의 경우 번역자는 소설책 1권을 번역해 본 경험이 전부였다”고 지적했다.결국 이 같은 오역 논란 끝에 새 번역자가 수정작업을 거쳐 2008년 말 다시 책을 냈다.

2. 찰스 디킨스의 'Great Expectations'/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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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 'Great Expectations'(막대한 유산)의 제목은 '위대한 유산'으로 오역됐으나, 이제는 일반적인 제목으로 굳어졌다.

3.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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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시리즈(Harry Potter series)에도 오역이 있다. '더즐리'(Dursley)가 매는 'his most boring tie'는 '아주 희한한 넥타이'라고 번역됐는데 이는 '최고로 따분하게 생긴(싫증나는) 넥타이'로 번역돼야 한다.

'squeaky'는 '끽끽거리는, 삑삑거리는'의 뜻이지만 '아주 맑은'이라고 잘못 번역됐다.

4. 버트런트 러셀의 ‘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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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트 러셀의 '서양의 지혜'(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에 의하면 이 책 머리말에 나오는 "A great book is a great evil"을 "위대한 저서는 죄악이다"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실은 "두꺼운 책은 읽기 버겁다", "책이 두꺼우면 독자에게 고통을 준다"라는 뜻이다.

5. 헤밍웨이의 단편 'The Killers'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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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로 번역되고 있지만 '살인청부업자'가 정확하다.

6. D.H.로런스의 'Lady Chatterley's Lover'/ 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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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아니라 '레이디 채털리의 애인'이 맞다. Lady는 부인에 대한 경칭이며, lover는 '애인'이다.

7. E.M. 포스터의 'A passage to India'/ 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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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가는 길' 이 아니라 '인도로 가는 항해'로 바로잡아야 한다.

8.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작 '설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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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動の手配'

이 부분은 일본어 한자를 있는 그대로 옮기다보니 '출동수배'라는 정체불명의 표현으로 번역됐다. 사실은 '출동준비'라는 뜻이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모호한 해석은 그동안 십여 차례 개정판이 나왔지만 계속 반복되고 있다.

9. 커트 보니거트의 'Cat's Cradle'/ 아이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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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요람'이 아니라 '실뜨기 놀이'이다.

10. 버나드쇼의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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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은 아니지만 버나드쇼의 유명한 묘비도 오역되고 있다.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문장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로 번역돼 쓴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원문은 번역하면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서 머물 만큼 머물면 이런 일(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이다. 'around'라는 부사 다음에 'the tomb'이라는 명사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정정

중앙일보에 따르면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내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 생길 줄 알았다니까"가 더 적확한 것으로 보여 이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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