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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정말 엉터리였을까?(펌)

by 키미~ 2018. 4. 5.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정말 엉터리였을까?

등록 :2014-04-11 19:42수정 :2014-04-1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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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 이 소설로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 이 소설로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뉴스분석 왜?
‘이방인’ 오역 논쟁
▶ 지금까지 우리가 읽었던 카뮈의 <이방인> 번역이 오역투성이라는 도발적 주장이 나왔습니다. 카뮈의 걸작이 재미없는 소설로 읽히고 뫼르소의 살인 이유를 한국 독자가 오해한 게 전적으로 오역 탓이라는 주장입니다. 새 번역본을 낸 출판사는 ‘25년을 속아’왔다고 주장합니다. 건강한 번역 논쟁일까요, 공격적인 마케팅일까요? <한겨레>가 논란이 있는 대목을 시시콜콜 비교분석해 봤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이 한 문장을 만드는 데 수십년이 걸렸다. 프랑스 소설 <이방인>(L’Etranger)의 이 첫 문장 때문에 여러 대륙의 번역가들이 수십년간 고민했다. 문학은 작가 개인의 자식이면서 그 작가가 산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다. 거기 담긴 생각과 느낌을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언어권 독자가 이해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 번역가의 일이다. 그 일은 쉽지 않다.

번역 작업의 어려움이 최근 한 출판사가 일으킨 논쟁으로 재확인된다. ‘이정서’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익명의 번역자(이하 이정서)가 지난달 24일 카뮈의 <이방인>(새움출판사)을 새로 번역해 펴냈다. 여기까지는 전혀 색다른 사건이 아니다. ‘국회도서관’ 누리집(홈페이지)을 검색하면 <이방인>의 서로 다른 한국어 번역본이 17개 넘게 검색된다. 프랑스어와 뿌리가 같은 언어인데도 영미 문학계에도 서로 다른 3개의 <이방인> 번역본이 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을 검색해보면, 일본에도 서로 다른 <이방인> 번역본이 3개 이상 존재한다. 당연하다. 원작은 그대로지만 그 작품을 소화할 독자의 언어 감수성은 세대마다 변한다. 

<이방인> 새로 번역한 이정서씨 
“김화영 교수가 멋대로 번역” 비판 
58개 항목의 오역을 지적했지만 
영역·일역본과 함께 비교해보니 
일부 대목은 관점 차이로 보여 

뫼르소의 살인 장면 번역도 
김화영-이정서 결정적 차이 없어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첫 문장 
부자연스럽다고 지적한 부분도 
캐릭터에 따른 고민 고려해야 

매슈 워드본·구보타본과 함께 비교 분석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1942년 출판돼 195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줄거리는 난해하다. 주인공 뫼르소는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 사는 회사원이다.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이튿날, 해수욕장에서 여자친구와 논다. 친구와 아랍인과의 싸움에 휘말린다. 해변에서 친구를 다치게 한 아랍인을 조우한 뒤 아랍인이 칼로 위협하자 권총으로 살해한다. 예심판사, 사제, 변호사의 조언과 속죄 요구를 거절하고 사형당한다. 필부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쿨한’ 행동 때문에, 뫼르소는 권위·제도에 저항하고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오직 현재에 충실한 실존주의 캐릭터로 설명되어 왔다. 줄거리가 난해해, 지금까지 <이방인> 번역자들의 노력은 자국의 독자들에게 카뮈의 뫼르소에 대한 묘사를 어떻게 카뮈의 의도대로 전달할 것인지에 집중됐다. 그래서 ‘오늘 엄마가 죽었다’(Aujourd’hui, maman est morte.)라는 평범한 첫 문장은 전세계 번역계에서 번역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뫼르소가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 자체가 독자에게 뫼르소의 성격에 선입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서씨의 <이방인>도 숱한 번역본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씨가 좀더 주목받는 이유는 ‘내 번역이 낫다’는 번역 논쟁에 그치지 않고 ‘권위자 김화영 교수의 번역은 엉터리다’라며 일종의 ‘문학권력 논쟁’으로 나아간 데 있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25년을 속아 온 번역의 비밀, 이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움출판사의 마케팅 띠지 문구다. 이씨가 오역의 주체로 지목한 인물은 김화영(73)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다. 카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카뮈 대표작을 모두 번역해 전집을 낸 한국의 대표적인 프랑스 문학자·번역가다. 여러 권의 산문집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이씨는 번역본 서문에 “이 자리가 김 교수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는 자리”라고 표나게 김 교수를 언급했다. 김 교수가 대표적인 권위자이고 영향력이 커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김 교수의 번역이 “엉터리”라고 썼다. 이씨는 지난 10일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추측인데, 김 교수는 정말 자신이 틀렸다는 걸 모르고 있기 때문이고, 혹시 문제점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스승인 이휘영 교수(전 서울대 불문학과 교수)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일인지라 우리 학계에선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김 교수의 <이방인> 오역이 심각해 등장인물의 행위와 성격이 왜곡됐고 그래서 <이방인>이 한국 독자에게 재미없는 소설로 오독됐다’는 게 이씨 주장의 요지다. 본업을 ‘회사 경영’으로 밝힌 이씨는 번역에 나선 계기에 대해 중학생 딸이 김화영 교수의 <이방인>을 읽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재미도 없다’고 했다 밝혔다.

이씨의 <이방인>은 모두 344쪽인데 절반이 역자노트다. ‘번역 논쟁집’을 겸하는 셈이다. 이씨가 오역이라 주장한 대목은 58개 항목에 이른다. 번역가 사이에서 ‘오역’이란 말은 가볍게 사용되지 않는다. 수학 문제의 정답은 하나지만, 번역 문제의 답은 번역자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영국 번역가 스튜어트 길버트가 번역한 첫 영역본 <이방인>의 제목은 ‘아웃사이더’(The Outsider)였다. 수십년 뒤 후배 번역가 매슈 워드가 ‘스트레인저’(The Stranger)라고 바꿔 달았다. 번역자마다 제목조차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번역상의 진짜 실수’와 ‘번역가의 다른 언어 선택’ 둘 다 쉽게 싸잡아 ‘오역’으로 비판받는다.

이씨가 제기한 58개 오역 주장의 진실성을 일일이 가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오역이라고 주장한 대목이 너무 많아 다른 프랑스어 번역가·학자에게 일일이 비교 해석을 요청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씨가 매우 격렬한 어조로 비난하는 ‘논란의 대목’ 6개와 관련해 여러 판본을 비교하는 취재를 시도했다. ‘이정서본’ 및 ‘김화영본’(민음사)과 대표적인 영어 번역본과 일어 번역본을 나란히 비교했다. 이씨가 이번 번역 작업에 카뮈의 프랑스어 원본과 “같이 두고 번역”을 했다고 밝힌 미국 시인 매슈 워드(Matthew Ward)의 영어 번역본(The Stranger·Vintage International·1988), 일본의 대표적인 카뮈 번역가인 구보타 게이사쿠(窪田啓作)의 일어 번역본(新潮社·1952) 등 서로 다른 언어권 4개의 번역본을 비교했다.

매슈 워드가 1988년 새로이 번역한 <이방인>은 현재 영미권에서 독자 감수성 변화를 반영한 대표적인 번역본으로 인정받는다. 구보타 게이사쿠는 카뮈의 거의 모든 작품을 번역한 일본의 대표적인 카뮈 번역가다. 이씨는 매슈 워드의 카뮈 해석과 번역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책에서 “<이방인>을 번역하면서 나는 영어판을 참조하고 있다…다른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프랑스어보다는 영어에 익숙하기 때문”(226~227쪽)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을 같이 두고 번역”하고 있다고도 했다.

분석 결과 몇몇 대목에서 이정서씨의 번역이 김 교수의 번역보다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취재 편의상 영어본·일어본을 ‘설득력’의 참고 기준으로 삼는다면 여러 ‘논란의 대목’에서 이정서본, 매슈 워드본, 구보타본이 비슷했고, 김화영본만 달랐다. 가령 김화영 교수는 ‘2시에 버스를 탔다’고 번역했으나 이정서씨, 매슈 워드, 구보타 게이사쿠 모두 ‘2시 버스를 탔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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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망’은 왜 ‘엄마’로 옮기기 어려웠나

그러나 일부 논란의 대목에서는 4개 번역본이 각각 다른 경우도 발견됐다. 이씨의 주장처럼 누군가의 일방적 ‘오역’이라기보다, 번역자의 관점 차이가 번역 차이를 낳았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가령 곳곳에서 구보타의 번역문이 김화영 교수의 번역문과 비슷하고 다른 2개의 번역본과는 상이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씨는 김 교수가 “멋대로 의역”을 해 레몽을 필요 이상으로 파렴치한으로 묘사했고 “오해는 작품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몽의 발언 장면에서 구보타는 김 교수처럼 ‘그놈/년’을 의미하는 일어 단어 ‘아이쓰’(あいつ)를 사용했다. 또 구보타는 레몽의 발언을 반말체로 옮겼다. 일어엔 한국어처럼 존댓말과 반말이 존재한다.

이씨가 격한 어조로 김 교수를 비난한 뫼르소의 살인 장면 번역문도 이씨의 주장만큼 김화영본의 결정적 오류가 보이지 않는다. 이씨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칼을 뽑아서 태양 안에 있는 내게 겨누었다”는 자신의 번역문장을 근거로 뫼르소의 살인은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가 잘못 번역한 탓에 한국 독자들이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오독하고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해당 살인 장면에서 김 교수는 명확히 아랍인이 칼을 꺼내든 모습을 번역하고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민음사) 매슈 워드본이 나온 뒤에도 영미권에서도 뫼르소의 살인 동기가 난해하다는 독자 평이 많다.

이씨는 <한겨레> 인터뷰에서는 “(영어본을)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영역본은) 전혀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인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카뮈의 원본만 보면 되는 것이지, 누가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우리 번역가들 역시 전부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은 앞서 이휘영, 김화영이라는 대가들의 번역이 있었기에, 그 이미지 때문에 벌어진 사태인 것입니다.”

이씨의 주장은 아직 프랑스어 번역문학판 안에서 건설적인 번역 논쟁이 되고 있지는 않다. 대신 대중의 반응이 먼저 왔다. 출간 뒤 2주 만에 4700부가 팔렸다고 새움출판사는 밝혔다. 프랑스어 번역가 사이에서는 이씨가 번역사와 번역이론에 무지해 논쟁의 방식을 잘못 택했다는 비판이 먼저 나온다. 김 교수에게 <한겨레>가 전자우편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김 교수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김 교수의 <이방인>을 펴낸 민음사가 반박에 나섰다. 민음사 홍보팀은 “김 교수가 의식적으로 오류를 저질렀다는 주장에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악의만이 느껴진다”고 밝혔다. ‘그년’ 논쟁 등 이씨가 오역이라고 주장한 대목에 대해서는 “원문의 의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잘 읽히는 우리말 표현을 선택하는 것은 역자의 자율성 문제”라고 답했다.

프랑스어 번역가 정혜용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김 교수의 번역은 20여년 전에 나온 것이고 그사이에 20년 동안 우리가 서구에 익숙해지고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감성도 넓어진 상태가 됐다”며 “김화영 교수가 당시로선 시도할 수 없는 것을 이정서씨는 지금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번역어와 문장은 20여년 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것으로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현재 독자의 감성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이정서씨는 이런 ‘자연스런 낡음’까지 죄다 오역으로 몬다는 취지다. 정씨는 “이씨가 김 교수의 번역에 대해 말하고 싶으면 이분이 번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며 “‘마망’을 번역할 때 과거에는 ‘엄마’라는 말을 쓰기 어려웠다. 시대가 바뀌면서 김화영 교수가 엄마로 바꿨다”고 말했다. 정씨는 파리3대학에서 번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번역출판 기획 네트워크 ‘사이에’ 위원이다. <에콜로지카> 등 많은 프랑스 책을 옮겼다. 2011년 국내외 번역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살피는 <번역논쟁>(열린책들)을 펴냈다.

실제로 이씨가 <이방인> 번역사에 무지한 대목도 엿보인다. 이씨는 한국어 언어 습관에 따라 첫 문장을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단어가 ‘시크’해서(세련돼서) 김 교수가 ‘죽었다’로 옮겼다고 썼다. 이어 이씨는 “김 교수가 처음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옮기고 그것이 후학들에게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추측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1950년대 이휘영 교수가 번역한 <이방인>의 첫 문장은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였다. 당시에는 성인이 ‘엄마’라는 단어를 잘 구사하지 않던 시대였고, 따라서 카뮈가 구사한 ‘마망’에 해당하는 번역어로 ‘엄마’를 쓸 수 없었다. 1980년대 이후 김 교수가 처음으로 첫 문장을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번역했다.

‘번역도 문학’임을 알린 가치있는 논쟁

영미권에서도 1946년 첫 번역 때에는 주어가 격식을 차린 ‘어머니’(마더·mother)였는데 젊은 세대 번역가 매슈 워드가 1988년에야 ‘엄마’(프랑스어 단어 maman)로 바꿨다. 그조차 고민의 산물이었다. 실제 ‘엄마’를 의미하는 영어 유아어 ‘마미’(mommy)보다 어른스럽고 ‘마더’보다 친근한 용어를 찾다가 결국 프랑스어 단어를 택했다.

번역가 김석희씨는 “50년대에 이휘영 선생이 번역할 때 카뮈의 원래 텍스트를 살린다고 그때 ‘오늘 엄마가 죽었다’고 했으면 그 번역은 당대 독자들이나 사회에 까칠하고 불순하게 읽혔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러나 80년대 권위에 저항하는 분위기에서 ‘오늘 엄마가 죽었다’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또한 뫼르소의 캐릭터를 생각해도 한국어식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쓰면 안 된다”며 “캐릭터에 맞는 번역으로도 ‘오늘 엄마가 죽었다’가 맞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익명 논쟁 방식도 논란이다. 이씨는 본명과 과거 문학가로서의 경력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이름과 권위가 아니라 문장을 보자는 취지라고 이유를 밝혔다. 정혜용씨는 “창작 비평은 작품을 얼마나 깊이 읽는지를 다루는데 번역 비평은 어떤 번역의 나쁜 점을 지적하는 걸 먼저 한다. 그런 점에서 번역자에겐 늘 자기를 옹호하고 항변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정서씨가) 이름도 밝히지 않고 김 교수를 비판하는 것이 정당한 번역 비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전자우편으로 이씨에게 재차 학벌 등을 제외하고 번역가나 작가로서의 배경을 추가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씨는 적절치 않다며 거절했다.

정혜용씨는 “이씨의 논쟁은 ‘번역도 문학’이라는 점을 독자에게 알린 점에서 재밌는 현상”이라고 긍정적 측면을 짚었다. 번역가들의 노력은 창작에 버금간다. 번역이 지식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인권’ ‘사회’ ‘국회’ 등은 모두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이 발명한 번역어였다. 그 번역어로 한국인은 사고하고 말한다. 프랑스어 번역문학계에서 이번 논쟁이 건설적인 번역 논쟁이 되기를 희망하는 이유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32347.html#csidx1be69811ddb82f2b77c88243984b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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