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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중얼

숲은 살아 있다

by 키미~ 2018. 4. 20.












우리 마을

 

                                          김정희



노인네 하나 쯤 사라진다고 세상이 뒤집어 지진 않더라고

마을 입구 백년 된 은행나무가 일러 주던데요

 

개울 건너 자식이 지은 기와 멋들어진 집에 고려장 사는

사시사철 털모자 쓴 할머니

돌밭 일구고, 아들 며느리 온다고 마루 반짝반짝 닦던 그니

어느 봄볕 좋던 날 굴뚝에 연기 퐁퐁 올라 닭 잡나 했더니

입던 옷 몽땅 태우고 잡초 죽이는 약을 드셨대요.

 

잡초나 죽이시지, 호미로 캐도 캐도 못 다 캔 잡초나 죽이시지,

굽은 등 펴지 못하고 하나 일군 아들한테 밥 한번 못 얻어먹고

스무 살에 타고 온 꽃가마 도로 타고 가셨네

자고 나도 산이고, 깨고 나도 산이고, 기왕에 지을 것이면 길 가에나 짓지

할머니, 저녁 달 둥그렇게 뜨는 날이면

소용도 없는 외국식 베란다에서 막걸리 드시며 궁시렁 하셨다고

 

노인네 하나 마을에서 사라져도

뼈 빠진 젊은 날 콩 팔러 간 서방 양념 삼아

십 원짜리 화투에 밤 밝히는 굳건한 심지 가진 마을 노인네들

자식 애 먹이느니 가시는 게 낫다고

똥광에 핏대 세우며 소주 내기 하는 노인네만 사는

늙은

우리 마을.



온 동네가 공사중이다.

밭은 흙으로 메꾸고,

개울은 둑 공사중이고,

집을 짓고,

먼지는 날리고,

하늘은 뿌옇고,

햇빛은 불투명하다.

벚꽃도 뿌옇고,

조팝도 뿌옇고,

성황림 속 피나물만 온전하게 노란색이다.

세상으로부터 담을 쌓고

닫힌 숲만 안전하게 연록색이다.


치악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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