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김정희
노인네 하나 쯤 사라진다고 세상이 뒤집어 지진 않더라고
마을 입구 백년 된 은행나무가 일러 주던데요
개울 건너 자식이 지은 기와 멋들어진 집에 고려장 사는
사시사철 털모자 쓴 할머니
돌밭 일구고, 아들 며느리 온다고 마루 반짝반짝 닦던 그니
어느 봄볕 좋던 날 굴뚝에 연기 퐁퐁 올라 닭 잡나 했더니
입던 옷 몽땅 태우고 잡초 죽이는 약을 드셨대요.
잡초나 죽이시지, 호미로 캐도 캐도 못 다 캔 잡초나 죽이시지,
굽은 등 펴지 못하고 하나 일군 아들한테 밥 한번 못 얻어먹고
스무 살에 타고 온 꽃가마 도로 타고 가셨네
자고 나도 산이고, 깨고 나도 산이고, 기왕에 지을 것이면 길 가에나 짓지
할머니, 저녁 달 둥그렇게 뜨는 날이면
소용도 없는 외국식 베란다에서 막걸리 드시며 궁시렁 하셨다고
노인네 하나 마을에서 사라져도
뼈 빠진 젊은 날 콩 팔러 간 서방 양념 삼아
십 원짜리 화투에 밤 밝히는 굳건한 심지 가진 마을 노인네들
자식 애 먹이느니 가시는 게 낫다고
똥광에 핏대 세우며 소주 내기 하는 노인네만 사는
늙은
우리 마을.
온 동네가 공사중이다.
밭은 흙으로 메꾸고,
개울은 둑 공사중이고,
집을 짓고,
먼지는 날리고,
하늘은 뿌옇고,
햇빛은 불투명하다.
벚꽃도 뿌옇고,
조팝도 뿌옇고,
성황림 속 피나물만 온전하게 노란색이다.
세상으로부터 담을 쌓고
닫힌 숲만 안전하게 연록색이다.
치악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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