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고추가루를 샀다가 모자라서 혼났다.
매년 마을에서 건고추를 사서 닦아서 방앗간에 가서 빻아서 썼는데,
재작년에 2년 동안 고추를 사던 잘 아는 마을 분이 형편 없는 고추를 팔았다.
돈도 시중보다 더 드렸는데..
물건보다 마음이 괘씸해서 한동안 괴로웠다.
쌀도 그랬다. 그 해에 쌀을 사서 이제 그 집에서 늘 사야겠다, 했는데
다음 해에 한 가마니를 샀는데, 세상에 묵은 쌀을 준 거다.
남편이 이제 안 사면 되니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그냥 먹자고 했지만 한동안 맛 없는 밥을 먹는다고 혼났다.
그 집이 그 집이다.
남편은 속지 말라고 이제 거래를 끊으라고 했으나 나는 고추는 안 그러겠지 했었다.
그런데 2년 괜찮다가 재작년에 고추를 샀는데 비닐을 딱 펼치는 순간 깜짝 놀랐다.
딱 봐도 묵은 고추였다. 꼭지가 말라 비틀어지고, 고추가 완전 메말랐다.
그 해의 고추는 아무리 잘 말려도 약간 녹진한 감이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싶었다.
어떻게 3년을 넘기질 못하지...
시장을 가도 단골에게 못한 물건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새로운 손님에겐 좋은 물건을 준다.
왜 그렇게 할까..단골에게 더 친절하게 해야 하고, 더 좋은 물건을 줘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단골도 이제 그 집을 안 가게 되는데...
이상하게 남에겐 친절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매정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단골 멘트가 있다.
"어디 가서 물어봐,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
그렇겠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베풀어야 한다.
그 사람들이 내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올 사람들이다.
그냥 겉모습에 혹해서 정작 중요한 걸 놓쳐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고추는 학교 가는 길 트럭에서 샀다.
늘 그 자리에 계절마다 고추니, 마늘이니를 파는 아저씨다.
농사 지은 걸 잘 손질해서 판다. 몇 년을 보았으니 믿을만 하다.
내가 들고 가질 못하니 택배로 보내달라 했더니 집까지 가져다주셨다.
고추가 괜찮다.
10근만 우선 닦고 꼭지를 땄다.
오래 전,
친정엄마가 고추가루가 떨어질 때 쯤이면
방바닥에 고추를 펼쳐 놓고, 연신 재채기를 하시면서 꼭지를 따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그냥 사먹으면 되지 했었다.
세월이 흘러 엄마 연세보다 많아진 지금은
늘, 엄마가 옳으셨다.
고추를 다듬으며 친정 엄마 생각이 나서 조금, 아주 조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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