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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중얼

속 깊은 수세미

by 키미~ 2022. 8. 18.

올해는 수세미 모종을 구하지 못했다.

여주만 구해서 심었는데, 비가 연일 퍼붓는데도 실하게 열매를 맺었다.

작년에 여주로 여러 음식을 만들었지만 사실은 그 모양 때문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생긴 모양이 이쁘지 않아서 올해는 따지 않고 관상용으로만 두기로 했다.

가을 볕이 좋으면 좀 말려볼 생각은 하고 있다. 차를 끓이면 당뇨에 좋다고 한다.

말리는 작업이 호박도 그렇지만 만만치 않다.

한번 쪄서 말려야 하나 싶다. 묵나물처럼.

작년에 잘 따서 말린 수세미는 지금도 속을 잘 쓰고 있다.

수세미 속으로 설거지를 하면 참 좋다.

일단은 잘 닳지 않아서 오래 쓸 수 있다.

기름 등의 물질도 수세미 속은 잘 닦여지고, 기름이 묻은 화학수세미는 버려야 하는데,

수세미는 다시 잘 씻으면 된다. 볼수록 신기하고, 귀하다.

여동생이 가지고 가라니 시큰둥하다가 집에 가서 써 보더니 신세계라고 반긴다.

친환경 수업을 하는 부산에 사는 친구가 와서 그 수세미를 보고 너무 반가워하길래 반을 잘라 줬다고 한다.

귀한 물건이긴 하다.

그런데 모종을 하지 않고 씨앗을 심었는데 실패했다.

싹이 나지 않았다. 여주도 심었는데 나지 않고.내년엔 꼭 모종을 구해야하는데 그 또한 쉽지 않다.모종상에서 수세미는 별 재미가 없는 품종인가 보다.수세미가 없는 올해의 마당이 허전하다.주렁주렁 매달려 가끔 내 이마를 툭 치고 가는 소부랄처럼 축 늘어진 수세미가 그립구나.졸시를 하나 올려본다.

 

 

 

수세미/김정희

 

늦은 여름 아침

늙은 소처럼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그 놈 물건처럼 축 늘어진 수세미를 보았는데

큼지막한 게 보기는 좋다만은 개미가 길을 내어 이파리를 기어가고

거죽은 주글주글한 것이 꼭 우리 망구 닮았구나

내 심통 맞은 소리에 망구 볼살 실룩이며

그놈 두둑 따더니

햇살 먹어 늙은 망구 궁둥이만한 장독위에 푹 삭을 때까지 놔두라네

아, 이 사람아! 그걸 어따 쓸려고 한 근은 족히 보이지만 먹을 수도 없는데

 

 

망구 힐끔 내 아랫도릴 보더니

껍데기 삭고 나면 거미줄 뭉친 속으로 설거지를 멋지게 할 수 있다네

멀쩡한 물건 가진 못생긴 놈들이 많은 세상에

못 생긴 물건 가지고 멋진 최후를 맞이하는

저 늘어진 수세미로 뒤숭숭하던 내 간밤의 잠 설거지를 해 볼까나

평상에 수세미 베고 하늘 마주 누우니

늙은 황소 내 꿈 밭에서 쟁기질 하다가

큰 물건 내게로 돌린 채 히죽 웃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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