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김용택
이웃 마을에 살던 그 여자는
내가 어디 갔다가 오는 날을 어떻게 아는지
내가 그의 마을 앞을 지날 때를 어떻게 아는지
내가 그의 집 앞을 지날 때 쯤이면 용케도 발걸음을 딱 맞추어가지고는
작고 예쁜 대소쿠리를 옆에 끼고 대문을 나서서
긴 간짓대로 된 감망을 끌고
따그락따그락 자갈돌들을 차며
미리 내 앞을 걸어갑니다.
눈도 맘도 뒤에다가 두고
귀도,검은 머릿결 밖으로 나온 귀도 뒤에다가 다 열어 놓고는
감을 따러 갑니다.
커다란 느티나무 저만큼 서 있는 길
샛노란 산국이 길을 따라 피어 있는 길.
어쩌다가 시간을 잘 못 맞추는 날이면
그 여자는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를 높이높이 올라가서는 감을 땁니다.
월남치마에 빨간 스웨터를 입은 그 여자는 내가 올때까지
소쿠리 가득 감이 넘쳐도 쓸데없이 감을 마구 땁니다.
나를 좋아한 그 여자
어쩔 때 노란 산국이 핀 꽃포기 아래에다 편지를 감홍시로 눌러 놓은 그 여자
늦가을 시린 달빛을 받으며 마을을 벗어난 하얀 길을 따라가다보면
느티나무 등 뒤에다 등을 기대고 달을 보며 나를 기다리던
내가 그냥 좋아했던 이웃 마을 그 여자
들패랭이 같고
느티나무 아래 일찍 핀 구절초 같던 그 여자
가을 해가 이렇게 뉘엿뉘엿 지는 날
이 길을 걸으면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살아나와
저만큼 앞서 가다가 뒤돌아보며
단풍 물든 느티나무 잎사귀같이 살짝 낯을 붉히며 웃는
웃을 때는 쪽니가 이쁘던 그 여자
우리나라 가을 하늘같이 오래 된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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