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에 걸려온 전화
정 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 붉힘은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가 몇이나 되나 헤아려 보는 봄날입니다.
해마다 사월이 오면, 이 시를 읽으며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저도 헤아려보다 눈물납니다.
세월은 가고,
사랑도 가고,
그저 무기력한 일상을 붙들고 무심하게 지내고 있는,
눈물나는,
봄날입니다.
치악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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