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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

by 키미~ 2010. 5. 28.

 

대추나무



                     김 정 희



이파리 한 잎 나는 일이 저리도 힘들어서야,

오월이 끝나가는 마당 구석에 대추나무 홀로 끙끙대누나.

눈꼴 신 초록이 지천인데, 잎사귀 하나 참새 조동이처럼 겨우 뾰족하다.

눈바람에 시달린 둥치는 쩍쩍 갈라져 메마른 가지 죽은 듯하니,

성질 급한 도끼질에 몇 번이나 가슴 졸였을까나.

늦게 피어 언제 실한 열매 갖겠냐고 회초리 시늉하며 겁주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대추나무 대꾸 없고,

해거름 깔리는 나무 끝가지에 직박구리 날아와 집을 짓는다.

늦게 피어도 반짝이는 잎사귀,

너를 보고 안 먹으면 늙는다는 대추야.

초록색 네 열매가 익기도 전에 직박구리 콕콕 너를 쪼아대어

사람은 늙고,

새들은 젊어지고,

그들의 젊은 날개는 온 천지 초록으로 물들이는데.


힘겹게 피어나 여름 한철 뜨거운 대추나무야.

새들 눈 닿지 않는 담장 구석에 조롱조롱 젊게 익어가다가,

나무보다 늙은 나를 위해서

한 주먹 적선하듯 던져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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