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우대식
사람은 참말로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신께서 내게 옷 한 벌 지어주셨다. 의심이라는 환한 옷,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잠을 잘 때도 벗지 않는다. 견고한 이 한 벌의 옷을 입고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신다. 나는 너를 의심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위해 의심이 내 등을 다독인다. 내가 너를 지키마. 편히 쉬어라. 어떤 평안이 광배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고 전지전능하사 나를 보호하시며 한없이 사랑하시는도다. 꿈속에서 나의 찬양은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배화교도처럼 의심의 불을 조용히 밝히고 내 아버지마저 그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한 어느 새벽, 당신도 내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고 고백했을 때 천둥과 벼락으로 인해 의심의 옷이 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시안》2011년 겨울호
----------------
우대식 / 1965년 원주 출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단검』, 산문집『죽은 시인들의 사회』가 있음.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한 물고기들의 산책/강인한 (0) | 2011.12.28 |
---|---|
바다를 건너는 코끼리, 김안 (0) | 2011.12.25 |
[스크랩] [2011년 창비] 돼지들 외 3편/ 이지호 (0) | 2011.12.17 |
노벨문학상 2011수상작,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0) | 2011.11.03 |
백로도 덥다 (0) | 2011.09.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