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unflower
  • sunflower

바다를 건너는 코끼리, 김안

by 키미~ 2011. 12. 25.

 

바다를 건너는 코끼리

— 유미에게

 

 

 

뱃머리를 부르던 푸른 달도 가라앉은 밤,

코끼리는 바다의 불안한 살결을 발라내

입 안에 넣습니다.

얇게 저민, 바다의 살이 퍼질 때

그 많던 배들은 이제 어디로 갔습니까.

코끼리는 홀로 남아 눈을 감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뿌우― 뿌우―

코끼리는 웁니다.

그러자 바다는 하얀 포말로 뒤덮입니다.

하얗게 어두워진 바다가 메아리칩니다.

모든 배들이 사라져도 이 고통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손발이 꽁꽁 얼어버려 나 역시도 슬픈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고,

온밤 바다가 출렁입니다.

포구의 창을 열고

코끼리는 그 어두움의 신음을 들고선 해변으로 나갑니다.

코끼리는 발을 내밀고, 바다는 파도를 내밉니다.

큰 귀를 펼쳐 들썩이는 바다를 고요히 덮어 줍니다.

긴 해안선이 코끼리의 귓속으로 흘러듭니다.

저토록 환한 바다 속에서 떠오르는

쓸쓸한 배의 기억과 뒤섞여 코끼리는 웁니다.

뿌우― 뿌우―

울며 푸른 달이 떠오릅니다.

이제 저 달을 향해 가지 않겠냐고,

세상에서 가장 긴 문장이 되어 흐르지 않겠냐고,

밤새 코끼리는 귀를 펄럭이며 울고

바다는 제 몸 깊숙이 파도를 삼키며 울렁입니다.

달은 더 이상

지지 않을 것처럼 검푸르게 일렁입니다.

 

 

 

                          —시집『오빠생각』

 

---------------

김안 / 1977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시집 『오빠생각』. 현재 월간 《현대시》 편집장.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월  (0) 2012.01.02
고독한 물고기들의 산책/강인한  (0) 2011.12.28
의심, 우대식  (0) 2011.12.25
[스크랩] [2011년 창비] 돼지들 외 3편/ 이지호  (0) 2011.12.17
노벨문학상 2011수상작,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0) 2011.11.0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