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저녁
김정희
남의 집 살이 삼십 년 하고
텃밭 딸린 작은 집 하나 장만한 눈 오는 저녁,
한 뼘 어깨 위에 휘어진 세월 짊어지고
어머니, 백 년 된 강둑 따라 집으로 오신다.
물이 뭐라더냐? 산이 뭐라더냐?
홀로 호령하며 옆구리에 소주 차고
왼쪽만 닳은 신발을 터덜거리며,
눈 내리는 강둑에 오줌을 누신다.
오줌은 강물로 흘러가고
얼어 붙은 강둑에 안개는 피어 올라
안개 속 어머니, 눈 맞으며 우신다.
노래를 부를까, 춤을 춰 볼까
어머니 돌아오시는 강둑에 서서,
엉거주춤 끌어올려 반은 더 까발린
얼어붙은 엉덩이 감싸안으며
서른에 과부 된 어머니 등에 업는다
백 년 된 강둑도 함께 업는다.
오래 전에 지은 시 하나 눈 오는 저녁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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