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 부친상 후 쓴 홍명희 자필 편지엔
4통의 편지는 한국국학진흥원이 발견했다. 경북 안동시 풍산면 오미리에 거주하는 풍산김씨 집안(영감댁)에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오래된 편지류 5100여 점 안에 섞여 있었다. 한지 등에 한문으로 쓰인 홍명희의 편지들은 김순석(58) 한국국학진흥원 문학박사(근대 사상사 전공)가 번역, 전후 사정을 연구해 분석해냈다.
첫 번째 편지에서 홍명희는 ‘삼가 말씀 올립니다. 근래에 건강하신지요? 매우 그립습니다. 상주인 저는 특별히 보살펴 주신 은혜를 입어 관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제 장례를 치러 아픔의 눈물이 더욱 새롭습니다. (상주 홍명희 올림)’라고 썼다. 그의 부친 홍범식은 금산군수로 재직하다 1910년 8월 29일 나라가 망하자 자결했다. 홍범식은 자결 직전 당시 금산 재판소 통역 겸 서기였던 풍산김씨 집안의 김지섭에게 상자를 주고 집이 있는 안동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김지섭은 이후 상자를 열어보고 유서를 발견했다. 급히 홍범식에게 돌아갔지만 이미 자결한 뒤였다. 김지섭은 유서를 홍범식의 아들인 홍명희에게 전했다.
두 번째 편지에서 홍명희는 김지섭을 형으로 부른다. ‘길 위에서 곡하고 헤어진 뒤에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중략) 형께서 건강하시기를 우러러 빌고 또 빕니다. 상주인 저는 질긴 목숨을 구차하게 지탱하고 있으며 (중략) 형의 깊은 은혜를 알고 있으니 형도 나를 범상히 대하지 말고-.’라고 썼다.
홍명희는 나라를 빼앗기고 아버지를 잃은 것에 대한 속 상함도 편지에 담았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편지에서다. 그는 ‘상주인 저는 모진 목숨을 보전하여 근근이 살아갈 따름입니다’‘상주인 저는 질긴 목숨을 구차하게 부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상주인 저는 평소 경험이 천박한 것을 생각지 않고 항상 인심이 험하다고 탄식하였지만 어려움을 겪은 이래로 스스로 반성하고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등이라고 썼다.
한국국학진흥원 측은 이들 편지로 홍명희가 유학 등을 한문으로 공부한 전형적인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필체를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당시 편지에선 잘 보이지 않는 어려운 한문식 표현인 ‘고애자(양친이 모두 돌아간 상주를 지칭)’‘죄제(상을 당한 사람이 손윗사람에게 쓰는 편지)’같은 단어도 찾아냈다.
김순석 박사는 "청년 홍명희의 자필 편지는 그가 나중에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이후 평등한 세상을 구현하려는 이념을 담은 소설 『임꺽정』까지 쓰게 된 배경을 추정해볼 수 있는 귀한 자료들이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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