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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와 롯데리아를 망설이는 사이, 김경호

by 키미~ 2020. 12. 30.

맥도날드와 롯데리아를 망설이는 사이

 

 맥도날드와 롯데리아를 망설이는 사이

부산행 아홉 시 무궁화는 출발했다

빗방울 묻은 차창을 닦으며

느린 속도로 배경들이 지나갔고

강으로 창을 낸 집들과 무채색 고층빌딩들이

처음부터 나는 싫었다

잘 있거라, 시무룩한 한강의 불빛들아

맘에 들지 않던 천국의 냄비 우동들아

불 꺼진 인천행 전철은 달려와

화들짝 놀라며 다시 흘러가는데

말소된 지번으로 그들의 독촉장은 날아들었고

단식 농성자들 배고픈 텐트 위로

사수들은 물대포를 때렸다

쾌적한 여행환경을 조성을 위해

지하도에 가 누우라는데

때에 절은 배낭을 멘 그는

끝내 협조하지 않았다

악을 쓰고 버티지만 모르는 척하는

오늘도 그저 그녀인 그녀들,

검은 손톱과 긴 손가락은

스마트폰 속 다중(多衆)의 표적을 향해

고개도 들지 않고 불을 뿜었다

부산행 아홉 시 발 무궁화는 달리고

나는 읽다가 쓰다가 선잠이 들었는데

옆자리에선 자꾸, 꼭 내 아들 같다며

자리를 권하고 사양하길 반복하는 동안

캄캄한 차창 너머 어둠 속에서 불쑥

천국의 붉은 십자가와 빛나는 지붕들이

나타났다 사라졌고, 역무원은

정차하는 역마다 친절하게 환승을 권했다

맥도날드와 롯데리아를 망설이는 사이,

치워도 치워도 줄지 않는 빈 쟁반을 정리하던

서울역 햄버거집 노인의 뒷모습이 왠지 낯이 익었고

소읍의 무심한 불빛들은

언 강물 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의 인연은 멀고 먼 고등학교 시절이다.

오래 전 기억 속에서 시를 잘 쓰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김경호다.

출판기념회 사진을 보니 박기영도 있네.

스쳐가는 그림자라도 못 본 것이 삼십 년은 된 것 같으다.

미국에 있는 강남옥과 함께 시를 쓴다고 방황하던 그 시절이 아득하다.

그의 시를 하나 상재한다.

지금도 그의 시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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