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수(雨 水)
김 정 희
사흘 밤낮 내린 눈(雪)이 죽령에 자리 잡고,
소백산 절 마당엔 노루가 내려왔다.
눈이야 봄이 오면 떠난다지만,
동자승 푸성귀에 마음 들인 노루는 절집이 지 집인 양 눌러 앉았다.
대처에 두고 온 연못을 못 비우고,
새벽 예불 시간이면 조불 졸던 공양주보살,
고드름 햇살에 녹진한 봉당에 앉아,
동자승과 노루가 망울진 산수유 헤집는 꼴을 보더니,
산속의 봄은 삭신이 쑤신다고, 절집에 꽃 피면 눈물바람 난다고,
남은 세월 구겨 넣은 바랑을 집어 들고는,
눈꽃이 사태 난 죽령고개 바라보며 일주문 기둥에 한참을 서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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