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
김 정 희
도로보다 낮은 집, 자살한 여배우 살아 웃고 있는 신문지로 발라 놓은 쪽문 거나하게 열고, 할머니 달리는 버스를 멀건이 쳐다본다. 하나, 둘, 오토바이 하나, 자전거, 트럭, 다시 버스 하나 정류장에 선다.
버스 창밖 멀건이 바라보던 나와 눈이 마주친다. 할머니, 히죽 웃는다. 이빨이 하나 둘 빠질 때마다 기둥 하나 둘 빠지고 남아 있는 하루 남지 않은 자식 하나, 둘, 할머니 입을 삐죽인다. 넌 남아 있는 게야? 넌 집보다 높은 도로 위 버스 타고 내 집을 내려다보며 아직 남아 있는 게야?
소나기 내리고, 투두둑 튀는 흙, 마당 한켠에 알 깨고 나온 젖은 병아리 몸뚱이에 젖은 비가 내리고, 버스 지나가고, 트럭 지나가고, 우편배달부 오토바이 멈춘다. 고지서 하나, 둘. 배달부 뒤로 강아지 꽁지 빠지게 쫒아가고 동그라미만 보면 환장하는 저놈의 개, 입을 실룩거리며 할머니 구부정한 허리로 구부정한 빨래를 하나, 둘, 걷는다.
젖은 빨래, 젖은 마당, 이미 다 젖어 더는 젖지 못하는 심장, 가슴, 그리고 희망. 길보다 낮은 함석 지붕위로 회색 호박잎, 버스 달릴 때마다 세상에 첨벙대고, 다시 버스 하나, 둘, 오토바이 하나, 거대한 트럭 둘, 셋,
그리고
그리고
여름,
젖지도 못하는 회색 아스팔트 위로 벌떼처럼 우르르 다섯, 여섯,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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