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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중얼

모란이 피기까지는~

by 키미~ 2011. 5. 16.

 

 

 

 

친정 아버지가 병원에 들어가시기 전,

손수 전지하여 주신 목단입니다.

정신은 먼 나라에 가 계시지만 병원에 들리면,

항상 목단은 잘 크고 있냐고 물으십니다.

그 많고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신 분이 어찌 목단은 기억하냐고,

그 많은 것들 중에 하필 꽃이냐고,

우리는 하소연하지만.

 

올해도 모란이 장하게 피었으니

병원에 누워계셔도 좀 더 사시길 기도해봅니다.

 

 

치악산에서

 

 

 

아버지의 나라



                              김정희



그가 서랍 깊숙이 말(言)을 감춰 두고 한밤중 어쩌다 속모를 소리 중얼 거리며 가끔 웃으면,

악보가 없는 허공에 대고 춤추는 음표를 보는지, 혹여 그가 노래를 할 즈음,

그의 눈동자가 제일 먼저 그 나라로 들어갔다.

눈이 바라보는 그 먼 곳을 찾으려고 뒤따라 뛰어가면 문은 굳게 닫혔다.

그의 나라는 분노와 희열의 군주가 날마다 전쟁을 일으키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패배하고, 승리하고, 아무도 볼 수 없는 전선의 고지를 점령하였다.

 

밋밋한 박음질로 둘둘 말려 올라 간 옷을 입은 채, 휠체어에 묶여 있는 그는,

장롱 속 몇 벌의 때깔 나는 양복을 입던 젊은 날을 생각나게 하고,

그 화려한 날들이 어느 고지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어쩌다 지친 병사를 깨워 물어보지만,

찬란한 승보를 그에게 가져다주지는 못하고, 그저 빙 둘러 선 채, 성을 지킬 뿐이다.

 

그의 나라엔 서리가 내리고, 낙엽이 지고,  아무도 살지 않는 그의 나라엔 흐릿한 겨울이 오고,

누군가 대신하여 갈 수 없는 다리를 힘겹게 건너서 얼마나 남은 지 아무도 모르는 아버지의 나라,

서서히 가라앉는 커다랗고 화려했던 왕국의 마지막을 바라보는지,

그 바다 끝, 높은 언덕에 서서 열쇠를 심장에 꽂은 채 자신의 대문을 열려는 지,

우리는 회색 하늘 노을 속에 잠기는 아버지 그 낯선 나라의 길을 울면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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