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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 길, 양승준

by 키미~ 2011. 6. 25.

 

서역 길

 

                양승준

 

내 그늘진 영혼의 쉼터엔

순례자들의 빈자리를

어둠으로 채워 주는

사막 하나 있었네

아득한 일몰의 끝,

길은 보이지 않아도

밤이면 늘

물푸레나무 같은

달빛 한 자락 떠올라

늙은 낙타를 어루만져 주었네

알 알이슬람

알라께 나를 맡기고

또다시 메카를 향해

무릎 꿇는 이 시간,

사는 게 내 뜻이 아님을

이제야 알겠네

 

 

 

다시 저녁 무렵

 

 

                  양승준

 

아라베스크 무늬의 양탄자를 볼 때마다

나는 낙타의 슬픔을 엮어

아름다운 사막 하나를 짜고 싶었네

한올 한올 움직이는 내 손끝에서

낙타의 슬픔은 종려나무숲으로 피어났다가

딱따구리로 태어나 천상을 날으다가

마침내 반라의 무희가 되어

밤새도록 나를 어둠으로 출렁이게 하고 싶었네

그러다 문득

신께 머리 조아리는 기도 시간이 돌아오면

그곳에 무릎 꿇고 앉아

낙타의 슬픔을 위로해 주고도 싶었네

어쩌면 사막이란 것도

낙타 스스로 제 가슴에 쌓아올린

작은 모래언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되뇌어 보았지만

낙타의 슬픔과는 상관없이

또다시 해는 이울고 있었네

나는 결국

안누시* 한 접시를 낙타에게 갖다주며

슬픔은 네가 서역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또 다른 사막이라 말할 수밖에 없었네    

 

* 안누시 : 낙타가 가장 즐겨 먹는 벼과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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