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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타, 황동규

by 키미~ 2011. 4. 16.

아득타!

 

                       황동규

 

 

예수는 33세로 어느덧 세상 떠나고

이젠 어쩔 수 없이

80세까지 겨웁게 황톳길 걸어 적멸한

불타의 뒤꿈치 좇아가는 길.

30대 초반

나무에도 다람쥐에도 성벽 여기저기 입혀지는 돌옷<地衣>데도 뛰놀던

저 지구의 핏줄

십자가에 오른 예수는 보았을까.

저 아래 뒹구는 손도끼 곁에서 막 새로 태어나는 바람을.

아득타!

이제는 시무외인(施無畏印)으로 사람들 안심시키던

오른손을 거두어

가슴의 상처 가리고

가시 면류관 쓴 채 누워 열반하는 예수.

지상의 마지막 끼니 소화하지 못하고

나무를 타고 올라

두 팔 벌려 십자가 되어

하늘 끌어당기는 불타를 꿈꾸랴.

아득타!

 

 

 

불타와 예수를 한 몸으로 받아들이는 장대한 프로그램이 오랜 그의 시력과 정신, 기법 안에 모두

녹아 있는 걸작이다. -중략-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남의 고통, 다른 모든 사람들의 고통들을

감싸안는 자의 고통이며, 그 고통에 가깝게 가고 있지 못한 시인의 뼈저린 자탄이다.

자탄으로 시작된 시인의 첫 출발이, 그 작은 욕망의 좌절에서 엄청난 크기의 인류애로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헤세는 석가모니야말로 참다운 크리스천이라고 했는데 황동규 또한 헤세 비슷한

경지로 가고 있는 것일까. 다른 이들을 위한 고통의 감내는 희생이며, 대속이다.

이 시에서 대속에 대한 인식은 아직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 아득한 거리가 인간의 능력 바깥에

있음을 받아들일 때, 대속의 현실감은 의외로 쉽게 찾아올 수도 있다.

 

김주연 비평집,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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