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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성부

by 키미~ 2012. 3. 2.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그 추위를 이기고

다시 돌아온 사람아.

 

[부음] 이성부 (李盛夫) 시인, 2월 28일 별세

 

 

   1942년 1월 22일 광주에서 태어난 이성부 시인이 간암으로 지난 28일 아침 세상을 떠났다. 향년 70세.

   그는 광주고등학교 재학시절 전국 고교생 백일장대회에서 태풍〈사라호〉를 써서 장원을 한 바 있었고 민중들의 어렵고 고통 받는 삶을 작품 속에서 여러 형태로 그려낸 시인으로, 개인의 행복이나 불행이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 아래 소외된 존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민중시를 썼다. 1980년대 말 이후에는 산(山)과 산행(山行)을 소재로 한 시를 주로 써 왔다. 1960년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9년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해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에서 홍보부, 생활부, 사회부, 문화부 부장 및 편집국 부국장을 지내고 1997년 사직했다.

   1962년 〈현대문학〉에 〈열차〉 등으로 추천 완료되어 등단했고,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들의 양식〉이 당선되었다. 〈이성부 시집〉(1969), 〈우리들의 양식〉(1974), 〈백제행〉(1976), 〈전야〉(1981)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과 서민의 정한을 담아내는 사실주의 시로서, 민중적 차원의 보편성을 획득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며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산행에 나서, 사회구조의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절망, 자기학대와 죄의식이 역사의 상처와 만나면서 어떻게 제자리를 찾는가를 성찰하였고, 이후 산에 얽힌 역사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살이를 온전히 담아내는 시를 썼다. 〈빈산 뒤에 두고〉(1989), 〈야간산행〉(1996), 〈지리산〉(2001),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2005), 〈도둑산길〉(2010) 등은 그 결과물이다. 그에게 있어서 '산'은 한국인의 삶과 역사, 문화의 중요한 무대이자 배경이며 삶의 터전이자 의식 형성의 원형적 상징이다. 시집 이외에 산문집 〈산길〉(2002)을 냈다.

   현대문학상(1969), 한국문학작가상(1977), 대산문학상(2001), 편운문학상(2005), 가천환경문학상(2007)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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