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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엿보기

by 키미~ 2012. 9. 12.

[오정희 엿보기] 내 일관된 주제는 '고독과 죽음'


[작가탐험] "작가 오정희" vs "총장 사모님 "



<습작기의 한때 소설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 오정희의 소설은 나의 열망 속에서 도달하고 싶은, 그러나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의 모습으로 존재했었다 (…)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던 오정희 식의 문장들, 비유법들, 모티프들을 흉내내고 있었고, 그것은 곧바로 내가 지닌 재능의 한계에 대한 절망감으로 이어지곤 했다.> 한 여성 평론가의 고백이다.

<오정희의 소설들은 나에게 ‘소설이란 무엇인가’ 혹은 ‘문장론’, ‘소설작법’ 같은 교재였으며, 얼굴 없는 가혹한 선생이었다.> 이는 어느 남성 평론가의 말이다.

소설가 오정희(53)는 그런 작가다. 지난 98년 조선일보가 문학평론가 31인을 대상으로 1948년 건국 이후 가장 훌륭한 소설 20편씩 추천을 받았을 때 다수 추천 53편 중 오정희는 「유년의 뜰」「저녁의 게임」「동경」등 3작품이 꼽혀 황순원 황석영 이문열과 함께 수위였다.

●문체연습 따로 한 적 없어

지난해 초 한국일보가 70대부터 20대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인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문인 100명에게 20세기에 발표된 작품 중 ‘21세기에 남을 고전’에 해당하는 시와 소설 각각 10편씩 물은 결과, 오정희는 위의 소설에 「중국인 거리」「옛우물」등 5편을 더한 총 8편이 꼽혀 가장 많은 작품이 추천된 작가였다.

“습작 시절에도 문체 연습을 따로 한 적은 없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전후 작가들 글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문체로) 체득된 것 같아요. 아마 제가 단편에 갇혀 있는 것도 주로 읽은 게 단편 소설들이고, 그게 소설의 전형이나 틀로 내 안에 자리잡은 듯해요. 손창섭 선생의 글을 특히 좋아하긴 했지요.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어린 저의 결핍감이나 불행감에 와닿았나 봅니다.”

‘한국 단편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이라는 평가가 있는 작가인 만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글쎄요…. 객관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냉정하려 하지요. 감상적인 것은 절대 피하고 위무나 사랑, 정감 등과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둡니다. 세상이나 사물을 보는 시선이 차가워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로서는 실체나 본질에 가감없이 접근하려는 의도입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우선 쉼표를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 문장을 손쉽게 만드려는 듯한 느낌을 받는 까닭이다. 그리고 한 문장을 가능한 한 길게 잡지 않고, 늘릴 경우에는 리듬감에 주의를 기울인다. 소유격을 잇따라 사용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가령 이런 문장. <나는 스웨터의 단추를 끄르고 햇빛에 가슴을 드러내놓고 젖을 짜기 시작했다. 좁쌀처럼 두드러진 구멍마다에서 뿌연 젖이 솟아오르고 (…) 낯선 손길처럼 끈끈하고 집요하게 찾는 시선을 느끼고 흠칠 고개를 들었다. 노파의 메마른 시선이 젖 위를 더듬고 있었다. 나는 노파의 침대에 다가가 노파의 입에 젖을 갖다 대었다. 노파의 입이 힘없이 벌어지고, 그러자 맹렬한 힘으로 빨아대기 시작했다. 목줄띠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겨웁게 오르내리고 흰 젖이 입가로 흘렀다.>(「미명」)

“밀도가 떨어지면 본인이 못견뎌하는 타입이예요. 단편은 일종의 ‘섬광’이거든요. 빛이 지날 때 한순간 모든 사물이 훤히 드러나듯, 생의 단면이면서 전생일 수 있어야 합니다. 대체로 소설의 뒷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끝부분이 늘어지면 ‘쪼개지는 맛’이 없습니다.”

쪼개지는 맛이라!

사과 하나를 쪼개려도 힘의 집중이 필요하다. 완력은 정직한 것이라 사과의 저항력이 더 세면 절대 둘로 가를 수 없다. 하물며 다만 활자라는 수단 한가지로써, 각각 나름으로 견고한 틀을 갖추고 있는 사회와 인간과 세계를 대상으로 ‘여봐란 듯이’ 쪼개 독자에게 보이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갈고 닦은 내공이 필요하겠는가.

그래서일까. 그는 대표적인 과작가다. 등단 30년을 넘긴 지금까지 중ㆍ단편을 합쳐 50편 가량의 작품을 ‘생산’해왔다. 5년 동안 침묵하기도 했다(그의 최근작은 지난 98년 「작가세계」에 발표한 단편 「얼굴」인데, “저로서는 상처로 남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완벽주의의 소산임은 분명하지만, 혹 결벽증마저 있는 건 아닐까.

“전력투구해서 글을 써오지 못했다는 소리를 듣지만 후회를 하지는 않습니다. 작가로서 크게 야심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고. 그저 내게 주어진 길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걸어왔다고나 할까요. 근데, 아까 결벽증이라 했나요?(웃음) 대학 시절에 굉장히 금욕적이긴 했어요. 술자리도 딱 한번 가봤을 정도니까요. 어떤 절대성을 추구했던 것 같아요. 내 마음 속의 폭풍과도 같이 들끓는 욕구와는 별개로 뭔가 반듯하고 정결하게 살고 싶었으니까요.”

●"진정한 소설노동자이고 싶어"

-<나는 자신의 작업이나 자신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는 진정한 소설노동자가 되고 싶다>고 자서에 쓴 바 있습니다. 글쓰는 노동의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는 퇴고는 많이 하는 편입니까.

“끝없이 잘못된 부분이 나와요. 자기 작품의 구멍들은 작가 자신이 가장 잘 알잖습니까. ‘왜 이렇게 썼지?’ 하며 고치고 또 고치지요. 진저리를 치고 어떤 땐 구역질이 날 때까지 다시 씁니다. 그러다 마감 약속 때문에 ‘이런 글을 내보내다니 이제 난 죽었다’(웃음)의 심정으로 뺐기다시피 원고를 넘기게 되요. 이러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건 아마 갖은 조바심 끝에 고맙게도 의도했던 대로 문장이 나올 때의 그 쾌감, 바로 그것 때문이겠지요.”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오정희 매니아’들을 위해서라도 그 쾌감의 빈도가 하루 빨리 높아져야 하겠습니다(웃음).

“이 나이에도 그런 쾌감이 자주 온다면 얼마나 좋겠어요(폭소). 그렇지만 글은 억지로는 절대 안되잖아요. 사실 글쓰기가 너무 무서워요. 이전보다 못한 작품을 쓰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아니고 독자가 문제인 것도 아니에요. 내가 어딘가에 치열하게 닿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말해 도저히 쓰지 않고는 못배길 뭔가가 안으로부터 넘쳐 올라오지 않은 채 쓰면 결국 ‘이건 아니다’더라구요. 정작 관건은 많이 읽히는 글이 아니라 좋은 글에 대한 욕심일테니까….” 말을 흐리며 작가는 눈에 띌까말까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

만약 기자가 그 미소에서 좋은 글에의 욕구와 그 충족에의 고통이 함께 하고 있는 고요한, 창조자의 즐거움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신용관 주간조선 기자 : qq@chosun.com)



[오정희 엿보기] 내 일관된 주제는 '고독과 죽음'


1947년 서울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현 중앙대 문창과) 졸업. 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며 등단. 창작집 「불의 강」「유년의 뜰」「바람의 넋」「불꽃놀이」, 장편소설 「새」, 장편동화「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 콩트집「술꾼의 아내」, 수필집「허리 굽혀 절하는 뜻은」 등.

▲작업 시간= 집에 아무도 없거나, 모두 잠이 들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었다. 완벽히 혼자라는 느낌이 들어야만 글이 나왔다. 따라서 밤에만 썼다. 아이들이 다 성장한 지금은 낮에도 작업을 한다.

▲작업 속도= 매우 느린 편이다. 하루에 5장 이상 쓰기 힘들다.

▲메모= 밖에 나갈 때 항상 주머니에 메모장을 휴대한다. 잘 때에도 머리맡에 메모지를 둔다.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주로 적는다. 그렇지만 컴퓨터에 따로 저장하지는 않는다. 거기에 고착되기 때문이다. 메모의 8할을 결국 버리게 된다.

간질환자 곱사등이 반신불수 육손이 등 정신적ㆍ육체적 불구자가 많이 등장했었다. 평론가들이 이른바 ‘불구 모티프’라 일컫는 것인데, ‘내 청춘의 참혹한 자화상’이라 답한 적이 있다. 타인들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폐적인 스스로의 결손감이 작품에 반영되었던 때문일 것이다.

<내 자신의 가장 정직한 생의 조건이자 출발점인 여성성>이라 말한 바 있다 그렇다. 그 여성성을 찾는 게 내 작품의 근간이다. 나는 첫아이를 낳은 후 세상과의 통로를 얻은 느낌을 받았다. 작품 경향도 이후 많이 변했다. 내가 가진 모성성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반발해 보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의 몸이라는 게 무척 만족스럽다.

▲모든 작품을 하나로 묶는 통일된 주제가 있나= 고독과 죽음. (다른 작가들도) 다들 그렇지 않나.

▲묘비명= 화장할 거다. 생몰 연대만 적었으면 한다.

▲최근 고민= 글 못쓰는 것(웃음). 못쓰고 있으면 계속 불안하다. 쓰다 만 것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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