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김 정 희
병원에 돈 주다가 볼 일 다 본다던 뒷집 할머니
사흘 전 버스에 앉아 어딜 그리 다니냐고 인사를 건네더니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다네.
가방 가득 아들 위한 주전부리 나르시고
구순이 가까워도 메주를 쑤시더니,
김장 다 해 놓으시고 눈 감으셨다.
가는 길은 똑같다고
혼자 사나 둘이 사나 종점은 똑같다고
먼저 나나 늦게 나나 순서가 없더라고,
마을버스 요란한 아낙에게 모른 척 부조 맡기고
슬쩍 울었다.
담 너머 할머니네 배추는 초록이 풍만하다
밭둑에 햇빛은 철퍼덕 졸고
추녀 끝 메주는 익어가는데
무청 힘차게 올해도 푸르더라
겨울 초입 빈집엔 강아지 혼자
지나가는 바람보고 컹컹 짖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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