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그 시대 아버지들과 같이 우리 아버지도 서부영화를 참 좋아하셨다.
내가 6살 때쯤 아버지와 함께 대구의 오래된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딱 한 장면이 생각난다.
여자와 남자의 키스장면인데, 키스하는 모습은 모르겠고, 여자가 고개를 돌리며 뭐라고 하는 장면이다.
나는 영화가 지겨워서 극장 안을 살금살금 돌아다녔고,
아버지가 나에게 손을 내미셨다.
내가 아버지를 보고 약간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이 또렷하게 떠오른다.참 이상도 하지. 어떻게 그렇게 선명하게 생각나는 걸까.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도 온 식구가 빠짐없이 시청한 걸로 봐서 우리 아버지는 아마도 영화를 엄청 좋아하셨던 게다.아버지와 함께 본 로렌스 올리비에와 제니퍼 존스가 나온 '황혼'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제니퍼 존스가 유랑극단의 배우였는데, 로렌스 올리비에와 사랑의 도피를 하고, 결국 올리비에는 노숙자 신세가 되고
제니퍼 존스는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다.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생각나는데
올리비에가 제니퍼를 찾아와 동전을 얻는 장면이다. 제니퍼가 지갑을 가져가라고 하지만올리비에는 동전 하나만 가지고 떠난다.아버지와 영화를 보면서 슬쩍 불편해서 아버지를 보니아버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어쩐지 눈물을 닦으시는 것 같았다.우리 아버지 연세가 그 때 아마 마흔도 안 되셨을 걸...엄청 젊으셨네.
아버지는 그래도 인디언이 나오고, 쌍권총의 사나이들이 총싸움하는 서부영화를 참 좋아하셨다.나는 LP를 사는 게 중학교 때 부터였는데, 제일 먼저 샀던 것이 서부영화 모음집이었던 해적판이었다.그걸 사서 아버지께 드린 날, 퇴근하신 후,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그 LP를 전축에 올리는 순간,존 웨인 주연의 역마차 주제곡의 첫 음인 말발굽 소리가 방 안 네 군데로 연결해 놓은스피커를 통해 따그닥거리고 울리는 순간, 아버지가 웃으면서 좋아하시던 그 표정, 그 환하면서 기분이 좋은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지금도 서부영화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그 아버지의 모습, 방안 풍경, 정다웠던 우리 엄마,네 명의 작은 아이들이 복닥거리던 모습이 떠오른다.울컥하면서 그립구나.
초로의 자식이 현충일 아침에 아버지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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