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에도 표정이 있다.
숟가락이 무거워 보이면 밥 먹기가 귀찮은 거다. 숟가락에 관한 여러 구절들이 있는 이유도 아마 그런 것에 기인한 것일게다.
밥 숟가락 놓는다. 숟가락 들 힘도 없다. 그 중에 제일 유머스러운 말이
"남자가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바람 피운다."이다.
어느 날, 아침 드라마 보시던 엄마의 일갈
"남자가 문지방 넘어갈 힘만 있어도 바람 피운다더니.." 하셨다.
숟가락이 문지방으로 바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의식주 문화가 많이 바뀐 탓이겠다.
사진의 숟가락은 친정 엄마가 쓰시던 숟가락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지금은 내가 쓰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친정엄마 좀 까다로우신 양반이셨다.
아버지야 워낙 불같은 성미라 그러려니 했지만 엄마도 못지 않았다고 여동생이랑 가끔 웃는다.
소고기도 살코기만, 김치는 잘 안 드시고, 밥도 두어 숟가락 정도 드시면 그만이었다.
나중에 내가 커서 생각해보니 위장이 안 좋으셨던거라.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큰 수술을 하셨는데
목 부분의 살을 찢고 동맥을 묶으셨다. 아버지가 수술 전 동의서를 열 몇장을 쓰셨다고.
12시간 수술 후 다행히 회복을 하셨다.
나중에 엄마 돌아가실 때, 사실은 40년을 덤으로 살았다고 하실만큼 큰 수술이었다.
항상 목 부분의 흉터를 가리기 위해 카라가 있는 옷을 입으시고, 그 때 후유증으로 한 쪽 눈도 약간 불편하셨다.
워낙 인물이 좋으셔서 별로 표시도 안 났지만 당신 자신은 가끔 의기소침하시기도 했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식사를 하다가 수저를 챙기는데, 자꾸 뭘 찾으시길래 왜 그러시나 했었다.
숟가락이 없다는 거다. 무슨 숟가락? 내 숟가락. 엄마 숟가락? 어떤 숟가락요?
그러더니 찾아낸 것이 사진의 저 숟가락이다.
끝이 닳아서 거의 종이처럼 얇지만 무게감이 전혀 없다.
무겁지 않아서 좋다고 하시고, 감자 긁기에도 그만이다 하셨다.
엄마 돌아가시고 몇 가지 유품을 챙겼는데, 저 숟가락, 밥그릇, 그리고 스테인레스로 된 얇은 쟁빈도 챙겼다.
동생들은 관심이 없더라. 나는 써 보니 엄마가 왜 그 물건들을 쓰셨는지 알겠는거라.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진짜 알겠더라.
엄마의 웃는 모습이 생각난다. 호탕하게 웃으시며 호박잎을 쪄 주시고, 고추찜을 맛있게 해주시고,
가지도 어찌 그리 맛있게 무치셨는지..
어제 막내 남동생이랑 통화하면서 예전에 먹지 않던 고추찜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더라.
니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 했다.
오늘 같이 햇빛이 세상으로 쏟아지는 날, 미친 듯이 땀을 흘리며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나마 서늘한 부엌 바닥에 앉아 엄마랑 먹던 미숫가루가 생각나누나.
얼음이 빙산처럼 떠 있는 큰 양푼이, 그 투박한 사랑이 이리도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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